▲바간에는 논과 밭 사이에, 혹은 풀들이 자라는 벌판에 수천 개의 오래된 탑과 사원들이 흩어져 있다.김남희
대부분의 사원과 탑들이 위치한 올드 바간으로 가는 길은 제법 나이를 먹은 나무들이 그늘을 만드는 어여쁜 길이다. 자전거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푸른 초원에 붉거나 흰 탑들과 황금 지붕을 인 크고 작은 사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면적의 논과 밭들 사이에 펼쳐진 탑의 바다이다. 하지만 감동은 잠시, 하루 종일 자전거와 모질게 씨름하느라 심하게 정신적, 육체적 체력을 소모하고 만다.
두 번이나 모래에 빠져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깨지고, 바지가 찢어졌다. 또 손바닥까지 까지고 멍들었다. 자전거만 빌렸다 하면 늘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왜 자꾸 빌리는 걸까? 안장을 최대한 낮췄는데도 짧은 다리로 인해 타고 내릴 때마다 고생하고, 모래길에서는 끌고 다니느라 힘 쓰고…. 처참한 몰골로 자전거를 끌고 돌아오는 길 내내 내일은 꼭 우아하게 마차를 이용하리라 결심한다.
가와다팔린 사원 안 차가운 대리석 위에서 땀을 식히며 졸고 있는데, 누군가 “남희! 남희!”하고 부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에이미다!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온 후 잠시 같은 숙소에 머물다가 헤어졌는데 이곳에서 다시 만난 거다. 에이미 옆에는 멋지게 생긴 남자가 서 있다.셋이서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돌아왔다.
다음날은 숙소 옆 식당에서 매운 양념을 한 두부 요리로 아침을 맛있게 먹고 날렵하게 마차에 올랐다. 기분 좋게 흔들리는 마차에 앉아 이 길을 가자니 갑자기 농노에서 귀족으로 급격한 신분상승이라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좀 느리다 싶었더니 역시 뒤에서 하나둘씩 자전거들이 추월을 하기 시작한다.
자전거보다 더 느린 마차라니! 말이 늙고 힘이 빠지면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마차 끄는 일이라더니 이 마차의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 하지만 급하게 갈 일도 없는데 오히려 더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풍경을 즐기기에는 느린 속도가 제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