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에 날개달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등록 2004.01.13 18:18수정 2004.01.1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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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에 슬그머니 책을 집어 들게 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의 단편소설집 <나무>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오전 내내 장편소설을 쓰는 데서 오는 긴장상태를 벗어나려고 매일 저녁 한 시간을 할애하여 단편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결실이 아마도 <나무>인 모양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연신 편협하고 좁은 사고에 뒤통수를 얻어맞으며, 정신이 번쩍 남을 느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상력의 무한함과 자유분방함이 그랬다. 작품마다 결말 부분에서는 꼭 허를 찔리고 만다.


첫 작품인‘내겐 너무 좋은 세상’에서는 기계인간을, 네 번째인‘냄새’라는 작품에서는 우주의 배설물인 별똥별을 등장시킨다.‘황혼의 반란’은 요즘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단편이었고,‘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는 외계인의 시선으로 애완 인간과 야생 인간을 등장시킨다.

정말로 거대한 상상력의 너비, 그의 상상력은 우주와 신화 혹은 그 너머까지로 확대된다.

‘사람을 찾습니다’에서는 이집트의 여신 누트를 차용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와 달리 이집트에는 여신이 하늘의 신이라고 한다. 마치 신화 한 편을 읽는 듯했다. ‘그 주인에 그 사자’라는 작품을 통해서는 악의를 가졌으면서 사회에서 다수 혹은 강자의 위치가 되었을 때 저질러질 수 있는 부작용들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보인다.

이 책 제목이 <나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단편은‘말없는 친구’라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한편의 영화 내용을 읽는 것 같았다. 멋진 세 미녀도둑의 활약과 배신,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조르주의 독백. 조르주는 바로 <나무>였다. 이리저리 비틀린 오래된 나무 한 그루. 나무가 느끼고 사유하고 목격하고 증언한다.


베르베르는 서문을 통해 이‘말없는 친구’가 어느 생물학자와의 토론 후에 쓰여졌으며, 여기에 언급된 과학적인 발견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라고 적고있다. 그의 상상력은 과학과 철학, 혹은 다른 지식에 기초하여 날개를 달았다.

마지막‘어느 신들의 학교’에서의 시점은 신의 시각이다. 저마다 자기 백성들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신들, 그리고 그 위에는 또 다른 신들이 있다는 시각….


허를 찌르는 18편의‘가만가만 들려주는’이야기가 한 권의 책 속에 모여있다. 과학적이고 미래 적이다. 누구나 느끼듯이 상상력의 기발함, 또한 그 속에 엿보이는 방대한 지식. 그는 ‘가능성의 나무’라는 단편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 자기들의 지식으로 가능성의 나무에 물을 주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일에서 크나큰 기쁨을 얻게 되리라."

같은 책을 읽고도 느끼는 바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게는 너무 부러운‘상상력’, 그것 하나만은 정말 놀라운 책이었다. 흔히 모든 문화발전의 바탕은 ‘상상력’이라고 한다. 상상력이 미래를 만든다.

그리고 내게 있어 개인적으로 원하고 바라면서도 언제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또한 상상력이다. 너무나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나의 일상에 가만히 다가와 일침을 가하는 책이었다.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열린책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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