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75

남파 간세 사건 (3)

등록 2004.01.14 13:35수정 2004.01.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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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봐! 가서 잘 확인해 봐! 빌어먹을 놈! 농담할 사람이 따로 있지… 너, 한번만 더 그런 엉터리 보고를 하면 알지…? 지금 네가 앉아 있는 자리에 다른 놈을 앉힐 거야. 알았어?”
“……!”

“에이, 한심한 놈! 가까이 있었으면 면상을 발길로 차버릴 텐데 쥐새끼 같은 게 약아 가지고 멀찌감치 서서… 퉤에! 그런데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를 들은 거야? 어디서 그따위 헛소문을 듣고… 젠장, 어떤 놈이 그런 소리를 했는지 당장 잡아와!”
“아, 알겠습니다.”


올 때와는 달린 기분이 몹시 불쾌했지만 조잡재는 고개 숙여 대답을 하고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밖으로 향하였다.

이 순간 그의 뇌리에는 한신(韓信)에 얽힌 일화가 스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온다.

한신은 본시 초나라 항우 밑에서 말단 군관을 지냈으나, 항우가 크게 써주지 않자 후일 한고조가 된 유방에게 귀순하였다.

유방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장수(將帥)에 임명하였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하자, 항우는 이십만 대군을 파견하여 제나라를 지원하며 한신의 진격을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초나라 군대를 무참하게 격파하였다.


한신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한 항우는 무섭(武涉)이라는 사람을 보내 유방의 수하에서 장수 노릇을 하지말고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하였다. 한신은 그의 말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내가 항우의 부하로 있을 때, 그는 나를 하급군관에 임명하여 하찮은 일만을 시키고, 나의 계책을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그것 때문에 나는 한나라로 귀순한 것이오. 한나라 왕 유방은 나에게 대장군의 직위를 주고 수만 대군을 통솔하도록 해주었소. 뿐만 아니라 나에게 자기의 옷을 벗어 입게 해주고, 자기의 먹을 것까지도 나에게 먹게 해주었소. 또한 왕께서는 나의 건의를 들으시고 나의 계책을 써주셨소(解衣衣我, 推食食我, 言聽計用). 이렇게 그의 덕분에 내가 장군이 되었는데, 내 어찌 스스로 왕이 되어 그를 배신할 수 있겠소? 돌아가서 나의 마음을 항우에게 전해주기 바라오.”



이렇듯 당당한 한신은 어린 시절 저잣거리에서 아이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다닌 적이 있었다. 그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찮은 일로 다투고 싶지 않음이었다.

후일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 된 그는 해하(垓下 :안휘성에 있는 지명)의 결전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공성계(攻城計)로 항우(項羽)를 무력화시켰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조잡재는 그를 존경하였다.

계략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고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두고보라지. 한신은 유방을 배반하지 못했지만 난 달라. 명분을 부르짖기는 하였지만 그까짓 게 무슨 소용이람? 흥, 방조선! 개 같은 변태자식! 너를 반드시 내 앞에 무릎을 꿇리고야 말겠어. 뿐만 아니라 선무곡을 내 손아귀에 쥐고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겠어. 흥! 두고 보라지. 더러운 변태 자식!’

나지막이 이를 가는 듯 어금니를 질끈 깨문 조잡재는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방조선의 눈에는 비릿한 조소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멍청한 놈! 네깟 놈 정도를 헤아리지 못하면서 어찌 이 자리에 앉았겠느냐? 네놈은 네놈의 간교한 두뇌를 믿는 모양인데 두고 봐라. 본좌가 머리 꼭대기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교훈을 조만간 얻게 해주지. 에이, 멍청한 놈! 쯧쯧쯧! 저런 걸 밑에다 두고 쓰려니… 젠장! 금대준이라는 놈이 얼른 와야 할텐데. 놈이 와야 수족들을 제대로 움직일 텐데… 젠장 할! 오기만 오면 작살 날 테니 그럴 수도 없고… 에이 퉤에!’

방조선은 곁에 금대준이 없는 게 아쉬웠다.

그의 말 한마디는 조잡재의 말 백 마디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녔기에 장로 백 명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하였었다. 게다가 그의 수법과 술수는 가히 조화지경이라 할만하였다. 말도 안 되는 것도 그의 입을 통하면 그럴듯하게 변하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곁에 있다면 지금과 같은 핍박과 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입맛이 쓴지 연신 혀를 차며 돌아섰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숨을 헐떡이며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헉헉! 어르신, 방주 어르신!”
“누구? 아니…? 너는 효재(淆災)가 아니더냐? 이런 빌어먹을 놈,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부를 요량이었는데 잘 왔다.”
“예에? 왜, 왜요? 허억! 어, 어르신…”

효재라 불린 사내는 무언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지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역시 방조선이 언제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르는 변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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