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병에도 감사하는 이유들

등록 2004.01.15 07:37수정 2004.01.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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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와 통풍 등 평생 관리를 하며 살아야 하는 심각한 성인병들을 안고 있는 처지이다 보니 가족들에게도 폐를 많이 끼치는 것 같다.


우선은 나 스스로 병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담배는 옛날에 끊었고(글쟁이와 끽연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으로 인식한 나머지 나의 금연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어쩌다 술을 마실 경우 어느 자리 무슨 술이든 딱 한 잔으로 끝낸다.

먹고 싶은 음식, 좋은 음식도 이미 옛날에 '금기'와 '제한'으로 분류해 놓은 것을 충실히 지킨다. 어떤 때는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 고통을 느끼며 내가 이승에서 '연옥'을 미리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거의 매일같이 산에 오른다. 매일의 산행이 싫증 날 때는 광활한 몽산포 해변을 걷기도 하고, 근처 산길 들길을 걷기도 한다. 옛날의 추억이 어려 있는 길을 찾아 걷기도 하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길을 따라 걷기도 하는데, 우리 고장 안에도 아직 내가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 전혀 알지 못하는 길들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라며 신기해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 스스로 음식 절제를 하고, 거의 매일같이 운동을 하고, 웬만한 길은 차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며 내 건강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데도 가족들은 늘 염려를 한다. 그 염려는 한 솥 밥을 먹고사는 내 한 집 식구들만의 것도 아니다.

금산에 직장을 두고 사는 막내 동생은 3년 전부터 계속적으로 홍삼액을 대주고 있다. 전에 택배로 보내 준 홍삼액이 떨어질 때쯤이면 확인 전화를 할 필요도 없이 다시 보내주곤 한다. 한동안은 그걸 아껴서 하루에 한 봉지씩 아침 공복에 마시곤 했는데, 동생은 저녁에도 먹으라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봉지씩 마시다보니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도 늘지 않을 수 없다.


홍삼액도 계속적으로 장복을 하면 몸에 좋지 않다는 말도 있어서 지금 마시고 있는 분량이 다 떨어지면 중단을 했다가 한참 후에 다시 마실 생각이다. 그래서 동생이 올 설에 고향집에 오면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뒷동에 사는 가운데 동생은 청년 시절에 지압법을 익힌 사람이다. 청년 시절 잠시 서울에서 살 때 매형이 돈을 대주어 지압을 배우게 했다. 동생은 오래 전부터 어머니와 나에게 지압을 해주곤 했다. 요즘은 내게 집중적으로 거의 매일 저녁 지압을 해주고 있다.


하루종일 일터에서 작업을 하고 돌아온 고단한 몸을 일찍 쉬지도 않고 형 집에 와서 내게 지압을 해주는 동생이 나는 늘 고맙고 그만큼 미안한 마음도 크다. 지압은 한 시간 이상 걸린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누르는데 참으로 세밀하다.

지압을 받는 나야 팔자 늘어진 형국이지만, 지압을 해주는 쪽은 그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닐 터이다. 지압에 열중하는 동생의 이마를 보면 요즘 같은 겨울철에도 땀이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젠가 한번은 지압을 받으면서 동생에게는 물론이고, 안양 자형께도 고마운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자형 덕분에 동생이 지압을 배워 나도 어머니도 그 덕을 보고 있으니 자형이 더럭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동생도 그런 마음일까? 묘한 의문이 들었다. 지압을 배운 죄로 저녁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고생을 하는 셈인데, 그런 동생에게도 자형께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을까?

궁금증이 명료했지만 나는 끝내 동생에게 그 말을 묻지 못했다. 그걸 물으면 동생에게 더욱 미안해질 것만 같아서였다.

생각하면 동생에게 보통 미안한 일이 아니다. 내가 건강을 잃고 심각한 성인병을 두 가지씩이나 걸치고 산다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다. 내가 병을 얻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나도 동생도 지압 같은 건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생각도 했다. 동생이 병든 형을 불쌍히 여겨 지극 정성으로 지압을 해주는 것도 하느님의 어떤 배려가 아닐까? 내가 진정으로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면, 내 병 자체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동생은 자신이 땀을 흘리며 하는 그 지압에 어느 정도 자부심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지압이 병든 형의 건강 유지에 큰 보탬이 되리라는 확신 같은 것을 지닌 듯싶다. 그런 확신이 없다면 한 시간 이상 땀 흘리는 그 힘든 지압을 매일같이 해줄 수는 없을 터였다. 그걸 생각하면, 다시 말해 동생의 그 기대와 확신을 생각하면 나는 더욱 동생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동생이 저녁에 내게 지압을 해주러 올적마다 으레 두 조카녀석이 동행을 한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오빠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누이다.

큰 녀석은 컴퓨터 게임이 목적이다. 우리 집 거실에는 컴퓨터가 두 대 있으니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마음껏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아마 사촌형 덕분에 큰집 컴퓨터에 재미있는 게임이 더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작은 녀석은 제 친오빠보다 사촌오빠를 더 좋아한다. 사촌누이를 귀여워해 주는 건 친동생이 없는 사촌오빠도 마찬가지다. 무릎에 앉아 응석을 부려도 중학생 사촌오빠가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고, 할머니와 큰 엄마가 대접을 잘해 주니, 녀석은 제 집처럼 까불며 잘 논다. 녀석이 아빠를 재촉하는 날도 많다고 한다. 고단한 몸을 일찍 쉬려고 했다가도 딸이 조르는 바람에 동생이 몸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저 조그만 조카녀석에게도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웃음을 머금은 적도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아들녀석과 저 조카녀석들은 오늘의 이런 풍경을 먼 훗날에도 기억 속에 잘 간직하게 될까? 동생이 형의 몸에 지압을 해주는 오늘의 이런 그림이 훗날 저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어떤 작용을 낳게 될까?

섭섭한 일이지만 나는 내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함께 한 어떤 명료한 그림 같은 것을 내 기억 속에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저 명절이나 제사 때, 혹은 생신 때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단순한 그림들만 있을 뿐이다. 어떤 색다르고 특별한 질감을 안겨 주는 그림이 없다는 것은, 모두 살기가 어려웠던 그 시절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조금은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은 거의 매일 저녁 형 집에 와서 형의 몸에 지압을 해주는 동생의 모습, 이 그림은 필경 먼 훗날에까지 우리 아이들의 기억에 남아 사촌 형제들의 가슴에 흐르는 어떤 물줄기를 더욱 튼실하게 하는 작용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생에게서 지압을 받으며, 내 아들녀석과 조카녀석들을 보며 요즘은 그런 생각도 많이 한다. 또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다시 문득 내 성인병들이 더럭 고마워지기도 한다. 매사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서의 말씀을 떠올리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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