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우표 디자이너' 이기석 우정사업본부 우표디자인실장권기봉
이에 대해 우표 관련 사업을 총괄하는 우정사업본부에서는 1인당 우표 16장이 들어간 전지 1∼2장만 구입할 수 있도록 제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우체국 직원들은 구입을 유보하자는 내부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한-일간의 독도 우표 분쟁은 7명의 우표 디자이너가 근무하는 우정사업본부 디자인실에까지 미쳤다.
“언론 보도 후 전화가 많이 왔어요. 전국에서 격려 전화가 많이 왔지요. 그런데 그 중에는 지금 이 시점에 왜 갑자기 독도 우표를 내느냐, 꼭 독도 우표를 내야만 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적지 않았어요.”
우정사업본부 입사 11년차인 이기석 우표디자인실장은 “이번 한-일간 분쟁도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았다”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느낌”이라고 했다.
“어떤 우표를 발행할지는 발행 1년 전에 이미 결정되거든요. 독도 우표도 2003년 3월에 결정된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돼서 우리(우표 디자이너)들도 많이 놀랐습니다.”
“이번 우표의 주제는 독도의 자연입니다”
이 실장에 따르면 우표 발행은 매해 3월 우표발행 심의위원회를 열어 각계각층 20여명의 심의위원들이 논의, 다음 해에 발행될 우표 주제를 결정한다고 한다. 16일 발행될 독도 우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우표의 주제는 독도의 자연입니다. 4종류로 발행되는데, 지난 54년에 발행했던 것과는 달리 독도에 사는 식물과 조류를 주제로 했어요. 이유는 독도가 단순한 돌섬이 아니라 생물이 사는 ‘살아있는 섬’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그는 동·식물을 우표의 모델로 삼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실 우표를 발행하는 모든 나라는 그 나라의 전통이나 문화, 예술, 인물, 행사, 자국에서 자생하는 동·식물을 소재로 우표를 발행하거든요. 독도 우표도 그런 취지에서 기획된 것 중 하나고요. 그런 시각에서 보면 독도 우표가 특별한 것은 아니에요. 단지 독도라는 장소 때문에 일본에서 문제를 삼아 이슈화 된 게 아닐까 생각해요.”
▲1954년 발행된 독도 우표. 2환과 5환, 10환짜리 우표 3000만 장이 발행됐다.권기봉
그런데 그는 독도 우표를 둘러싼 논란이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고 했다. 이미 지난 1954년 독도 우표를 두고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는 것.
“54년 이승만 정부 시절이었다고 그래요. 그때 체신부에서 독도 전경을 담아 2환, 5환, 10환짜리 우표를 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여기에 항의하는 뜻에서 독도 우표가 붙은 한국 우편물에는 먹칠을 해서 배달을 했다고 하더군요. 이미 1954년에 우표 분쟁이 있었던 셈이지요.”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이 독도 우표를 발행한다는 정보를 입수, 54년 9월 15일부터 독도 우표 3종 총 3000만장을 발행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본 외무성에서는 독도 우표가 붙은 우편물은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만국우편연합(UPU) 규정 중 '우편물 중계의 자유보장’ 조항에 따라 '독도 우표를 붙인' 우편물도 일본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우표에 먹칠을 한 다음 배달하는 방식으로 응수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2002년 8월 발행된 독도 우표.권기봉
“54년만이 아니라 지난 2002년에도 독도 우표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때는 일본이 별 문제를 삼지 않았어요. 당연히 이슈화되지도 않았고요.”
지난 2002년 8월 1일 전국적으로 모두 32종이 발행된 ‘내 고향 특별우표’ 시리즈 중 경북편의 ‘안동 차전놀이’와 ‘독도’가 그것이다. 독도의 동도와 서도가 모두 포함된 이 우표는 모두 90만장이 발행됐지만, 당시 일본은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선배들로부터 54년의 분쟁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2002년에는 별 문제가 없었기에 논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사실 이번 논란도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해서 그런 거죠. 우리나라 안에 자생하는 동·식물 우표를 낸 건데,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 아닌가요?”
애초 일본은 독도 우표 발행을 두고 만국우편연합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었다. 즉 작년 9월 ‘외교현안을 우표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며 외무성 문서를 통해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국우편연합 규정 중에는 다른 나라의 우표 발행을 사전에 항의하지 못하게 한 규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항의를 만국우편연합이 받아들인다고 해도 만국우편연합은 189개 회원국들에게 사후에 문서로만 이를 알릴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기구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견해가 강했다.
한-일간 분쟁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독도 우표를 디자인한 실무자로서 그의 독도 우표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비록 작은 우표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과거에 우표가 발행된 예를 보면 정부가 수립 됐다던가 국제적인 행사가 있다든가 할 때였거든요. 그러니까 우표는 사람들이 꼭 기억할 만한 것을 택해 만드는 기록 매체로 보시면 돼요. 이번 독도 우표 역시 우리가 주권을 행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권기봉
“요즘 인터넷이 발달해서 우표나 편지에 대한 관심이 많이 낮아졌어요. 하지만 독도 우표를 계기로 우표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나마 생겨 다행입니다. 지금은 우표보다 독도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앞으로는 독도에 대한 관심이 우표로 연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전화나 이메일과는 달리 우표가 붙어있는 편지를 받는 것은 참 정감이 있거든요. 편지를 기다리는 그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답니다.”
“작은 우표 하나가 독도에 대한 관심을 되새김할 수 있는 역할을 한 데 대해서는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는 이 실장은 “국민들이 독도를 사랑하는 만큼 우리 우표도 사랑해줬으면 좋겠고, 독도에 대한 사랑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우표 때문에 전쟁 치르기도 | | | “우표 전쟁”의 역사 | | | | 세계 최초의 우표는 지난 1840년 5월 1일 발행된 영국의 1페니와 2페니짜리 우표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이 인쇄된 세계 최초의 우표 이후 160여년이 흐르는 동안 발행된 전 세계의 우표는 25만 가지가 넘는다.
오랜 역사를 갖는 인간의 발명품답게 그 동안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는데, 그 중 재미난 것이 ‘우표 전쟁’. 한-일간의 우표 분쟁은 그나마 얌전한 축에 들게 할 정도로 떠들썩한 분쟁들이 있었다.
먼저 1900년의 서인도제도. 당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서인도제도의 히스파뇰라섬 지도를 그린 우표를 발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이 섬에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의 국경선이 지나고 있었는데,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 국경선이 아이티쪽으로 조금 파먹고 들어가게 그려져 있었다. 이에 격분한 아이티가 무력을 행사, 미국은 이를 중재하느라 46년 동안 애를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중재안은 국경선을 ‘제대로’ 그린 우표의 재발행.
이후 1932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남아메리카에 있는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사이의 다툼이었는데, 당시 두 나라의 국경이었던 그란차코 지방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이었다. 이에 두 정부는 그란차코 지방이 서로 자기네 땅이라 우기며 앞다퉈 우표를 발행한 것인데, 결국 이 일로 말미암아 4년간 전쟁을 치렀다. 가히 우표 전쟁이다.
근래에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원자폭탄 사진이 들어간 우표를 발행하려다 일본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고, 이란에서는 이스라엘에 총칼을 겨누는 우표를 발행했다가 두 나라 사이에 말썽이 됐던 사례가 있다. / 권기봉 | | | | |
덧붙이는 글 | www.finlan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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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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