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귀경길... 이 책과 함께하는 설연휴 어때요?

<그리운 이문구> <도덕경> <재즈북>

등록 2004.01.20 12:56수정 2004.01.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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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설 연휴는 막히는 고속도로의 짜증에 혹독한 추위까지 겹쳤다한다. 하지만 어쩌랴. 벌써 며칠 전부터 노심초사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귀향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 막히는 차안에서 짬짬이, 도착한 시골 안방 뜨뜻한 구들장 위에 누워서 읽기에 적당한 책 몇 권을 소개한다.

소설가 이문구가 아닌 '인간 이문구'를 발견하다
- <그리운 이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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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M&B

지난해 2월 타계한 <관촌수필>이 작가 이문구의 1주기를 즈음해 살아생전 그의 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소설가, 혹은 엄혹한 시대를 살아온 투사의 모습이 아닌 인간 이문구의 향취가 흠뻑 묻어 나오는 <그리운 이문구>(중앙M&B).

낡은 대학노트와 기업로고가 금박된 해묵은 다이어리에 꼼꼼히 적힌 이문구의 소소한 일상을 읽다보면 짙은 범눈썹과 무뚝뚝한 표정과는 달리 그가 얼마나 따스한 사람이었던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일기 속에는 '언론사 세무조사' '2002년 대통령선거' 등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관한 단상과 매서운 세태비판도 없지 않지만, 그런 뻑뻑한 글들보다 훨씬 감동스럽게 읽히는 부분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기록들이다.

위암선고를 받고도 자신이 아픈 것은 괜찮은데 '아내가 슬퍼하는 게 싫다'라고 쓴 대목, 영화연출을 지망하는 아들에게 전주국제영화제에 가보라며 '가거든 영화만 볼 게 아니라 전주의 특산음식도 즐기도록 음식점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오려주었다'는 대목, 딸이 모 홈쇼핑업체에 취직한 후 우수사원상을 받아오자 '아비된 자로 기쁘기 그지없다'라고 쓴 대목은 비단 이문구의 아내와 자식이 아닌 세상 어느 아내와 아들, 딸이 읽어도 눈물겹다.

이문구의 25년치 일기를 단독입수한 <문예중앙> 이경철 주간은 "향후 주제별로 차곡차곡 출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타계 2년전부터 씌어진 분량. 책의 뒤에는 이문구를 그리워하는 선후배 문인들(박태순, 김정환, 한창훈 등)의 회고담이 실렸다.



"문제는 제대로 된 번역이다"
- 이경숙의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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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

<노자를 웃긴 남자> 시리즈를 통해 도올 김용옥의 고전해석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해 주목받은 바 있는 이경숙이 새 책을 내놓았다.

"고전은 손으로 읽고 마음으로 뜻을 얻어야한다"고 말하는 이 씨는 완역 <도덕경>(명상)을 상재하며 "왕필 이후 모든 도덕경은 오역의 역사였다"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다시 한번 독서계와 기존 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고전 번역에 있어 "문법 따위는 몰라도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자잘한 문법이니 용례니 하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큰 그림을 보듯 접근해야 제대로 된 번역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그러면 문법 없이 어떤 잣대와 기준으로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반론을 불러올 수 있어 <노자를 웃긴 남자> 출간 당시 일었던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남 마산에서 딸 둘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고있다고 말하는 이경숙. 하지만 <도덕경>이란 책을 볼 때마다 "복수의 일념으로 장강(長江)을 거슬러 올라오는 오자서가 떠오르고, 불타서 무너지는 영성의 성곽과 아비규환의 생지옥 속에서 울부짖는 초나라 사람들의 비명이 들린다"는 그가 과연 평범한지 여러 사람이 의문을 품을만하다.


재즈, 알고 보니 어렵지 않네
- <재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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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룸

지루하게 반복되는 타악기 연주와 귀에 거슬릴 정도의 고음을 뿜어내는 소프라노색소폰, 담배연기 자욱한 어두운 카페와 페르시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묘한 미소를 짓는 벨벳드레스의 여인… 우리가 '재즈'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이제는 전문적으로 재즈를 연주하는 업소도 생기고, 누구나 여성 보컬의 재즈넘버 한 곡쯤은 분위기 잡으며 흥얼거리는 시절이 왔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재즈는 어렵고 지루한 음악'이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국어사전 혹은, 영어사전을 찾듯이 재즈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책은 없을까'를 고민해본 재즈 초심자, 혹은 입문자라면 최근 출간된 <재즈북>(이룸·한종현 역)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듯하다.

1953년 초판 발행 이후 오늘날까지 팬들은 물론 재즈 뮤지션들에게까지 사랑 받아온 <재즈북>은 스타일과 뮤지션, 재즈의 구성요소와 사용되는 악기, 빅밴드시대에서부터 퓨전시대까지 재즈의 역사, 이에 더해 재즈에 대한 정의까지 내리고 있는 그야말로 '재즈의 백과사전'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한 잔 걸치고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집 작은방에 누워 엘라 피츠제럴드의 매혹적인 목소리, 혹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현란해서 더 슬픈 트럼펫 연주를 듣는 것도 근사한 설 지내기가 아닐지.

그리운 이문구 - 이문구 문학 일기초 동료작가들이 본 인간 이문구

이문구 외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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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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