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깨끗한 마음을 간직한 "참나리"

내게로 다가온 꽃들(18)

등록 2004.01.26 05:32수정 2004.01.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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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나리'는 자기보다 높은 상대방을 가리키는 말 '나으리'에서 온 말입니다. 그러니 산과 들에서 자라고 관상용으로 재배하기도 하는 참나리는 높임을 받는 꽃 중에서도 높임을 받을 만한 으뜸 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 이름에 '참'자가 들어가면 우리 사람들과 아주 친숙하거나 식용을 할 수 있는 종류가 많습니다. 참깨, 참외, 참꽃, 참솜나물 등등 이렇게 '참'이라는 단어가 붙은 식물은 대체로 우리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그런데 참나리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꽃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밑 부분에 있는 주아가 땅에 떨어져 발아한다고 합니다. 너무 예쁘고 단아한 모습에 신들도 시기를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김민수

사실 우리 현실에서는 '참'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오히려 '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 '참'이라는 것이 얼마나 '거짓'이었으면 '참기름'으로만 모자라 '진짜 참기름'도 있고 '진짜 순참기름'도 있을까요?

우리가 먹는 것에만 '참'과 '거짓'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민들에게 '나으리'로 불려지는 분들 중에서도 '참'이라고 우기는 '거짓'분들이 많으니 문제지요. 사회 지도층에 계시는 분들, 종교 지도자입네 하시는 분들 모두 자기만이 '참'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는 사이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말들은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예쁜 참나리에게 실례를 범한 것만 같습니다.

김민수

참나리는 여느 들꽃들처럼 생명력이 강합니다. 바닷가의 돌틈에도 자리 잡고 예쁜 꽃을 피우고, 또 그 향기가 얼마나 진동을 했으면 잠자리들도 날아와 쉬기를 청할까 싶습니다.


간혹은 우리 사람들이 맡지 못하는 냄새도 있고, 간혹은 사람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꽃향기도 있습니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누린내풀이나 쓰레기 냄새가 나서 쓰레기나물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만수국아재비가 있는데 나리꽃의 꽃향기도 그리 좋지는 않답니다.

문득 그것이 자신을 지켜가는 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꽃이 예쁜 데다가 향기까지 좋으면 수난을 많이 당할 수도 있거든요.


바다가 그리워 바다에 핀 참나리꽃. 거센 바람과 파도에 때론 흔들리고 쓰러지기도 하지만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넓은 바다를 한 품에 안고 살아갑니다.

김민수

대학 시절 여름 방학을 시작하던 날이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남한산성에 올랐습니다. 제가 올라간 곳은 미사일 기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요, 전시에 사망자들을 옮기는 성곽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칡을 캐러 다니던 곳이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한 겨울에도 겨울 등반을 한다고 동굴 같은 곳에서 친구들과 1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힘이 들 때면 차로 휙 올라가 성벽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내려오기도 하던 저의 휴식처였습니다.

그 해 여름, 나리꽃이 엄청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와, 예쁘다!"

그런데 한 송이를 꺾어 든 순간 나리꽃의 역겨운 냄새에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요, 향기까지 좋았으면 수난을 많이 당했을지도 모르죠. 그렇지 않아도 꽃이 아닌 이파리 아래에서 열매를 맺는 것도 서러운데 말입니다.

김민수

그런데 꽃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부터 그렇게 역겨운 냄새가 나는 꽃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참나리꽃의 사촌격인 나리꽃에 대한 마음 아픈 이야기 전해집니다.

옛날 한 마을에 한 아리따운 처녀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고을엔 행동거지가 아주 나쁜 고을 원님의 아들이 있었답니다. 그는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 나쁜 짓만 골라서 했습니다.

그래도 보는 눈은 있었는지 마을의 그 예쁜 처녀를 보고는 첫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처녀는 마음속에 품고 있는 총각이 따로 있었지요.

어느 날 그 못된 원님의 아들이 그녀를 강제로 희롱하려 했지만 처녀가 끝내 거부하자 그 처녀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후 원님의 아들은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녀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는데 그 무덤 위에 나리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원님의 아들이 그 예쁜 꽃에 다가가니 꽃에서 역겨운 냄새를 내면서 원님의 아들이 오는 것을 막았다고 합니다. 꽃이 되어서도 자신의 마음을 지킨 꽃, 그래서 순결을 지킨 처녀의 넋을 지닌 꽃이 나리꽃입니다.


김민수

나리꽃의 꽃말은 '깨끗한 마음', 그렇다면 참나리의 꽃말은 '참 깨끗한 마음'일까요? 이렇게 꽃말과 꽃 이야기를 정리해 보니까 '나으리'들에 대한 서민들의 마음을 담은 꽃이 아닌가 생각도 드네요.

"참 나으리가 되세요."

우리 나라의 병폐 중 한 가지가 무슨 선거만 있으면 - 그게 반장 선거라도 - '뿌리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나으리가 되면 서민들도 고달프죠. 얼마 후면 나라의 일꾼을 뽑는 선거가 있는데 그 때에는 '참나리'들만 뽑혔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수

그래요. 이렇게 자기가 뿌리를 내린 곳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참사람이 그리운 시대, 참사람에 대한 타령을 했지만 내 안에도 수없이 들어있는 사이비같은 것들 하나 둘 벗어버려야 겠습니다.

그래야 올 여름에 피어나는 참꽃과 조우를 하면서 맑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나리를 보신 모든 분들, 오늘 하루 참으로 행복한 날 되세요.

덧붙이는 글 |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 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기사까지의 기금] 340,000원

덧붙이는 글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 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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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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