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37

등록 2004.01.26 18:24수정 2004.01.2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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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장수가 일행을 죽 둘러본 뒤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밤도 깊어가니 형식적인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우선 우리가 모두 다 함께 정벌지로 출행한다는 것은 이제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오."

강 장수는 잠깐 말을 끊고 부하들을 내려다보았다. 모두 솜을 깔아둔 얼굴이었다. 그것은 '계속하시오, 우리는 그 모든 이야기를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소'하는 표정이었다. 강장수가 계속했다.


"출정 시각은 내일 아침 동틀 때가 되겠소이다." 그러자 그 차분하던 군사들의 얼굴들이 일시에 얼크러졌다. 은 장수의 군사들 쪽이었다.

"내일 아침이라구요?"
사정을 모르는 은 장수의 군사들은 술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곧장 출발한다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 장수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물론 오늘 도착한 사람들에겐 다소 무리란 것도 알고 있소. 하지만 타국군사들이 여기에 진을 친 것도 벌써 닷새째요. 그들도 아주 지겨워할뿐더러 우리 역시 일없이 군량만 축내고 있는 실정이오."
"......."
"생각해보시오, 말이 1천 군사이지 그들이 먹는 하루 식량이 얼마이겠소?"
하긴 타국군사를 일없이 묶어둔다면 식량 낭비도 낭비려니와 기강 또한 해이해질 것이었다. 곧 술렁거림이 가라앉았다. 강 장수는 군사들의 얼굴이 다시 흡수 판으로 돌아갈 때까지 잠깐 기다렸다가 뒤를 이었다.

"자, 그럼 모두 이해했으리라 믿고, 오늘 온 사람들을 위해 그간의 경과부터 알려드리겠소."
강 장수는 좀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애초 우리는 형제 국에서 군사 2천명을 선발하려고 했소. 그래서 세 개의 형제국을 돌았지만 결국 천명밖에 채울 수가 없었소."
"1천 명이라구요?"
이번에는 제후가 불쑥 나섰다. 그 숫자로는 턱도 없다는 뜻이었다. 강 장수가 대답했다.

"물론 형제국에서 내놓은 군사는 그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하지만 거의 오합지졸이었고 그들은 식량만 축낼 뿐이라 천명으로 추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제후의 얼굴이 뜨악하자 재상이 나섰다.
"제후께서 꼭 2천명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렇게 맞출 수도 있소이다."
제후가 바쁘게 응수했다.


"아시겠지만 정벌에는 군사가 많아야 유리합니다. 또한 적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무리들입니다. 가능하다면 천을 더 채워주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시다면 한달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한달이라구요?"
"한 형제 국에서는 지금 모든 맹장들이 원정을 나갔는데 그들이 돌아오면 규합할 수 있다고 했소이다. 어떻습니까? 여기서 한달을 더 기다리겠소이까?"

그러자 제후는 당장 고개를 저었다.
"한달은 곤란합니다. 벌써 시간을 많이 지체했고 또 사실 그 동안에도 어떤 변고가 있었는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조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실 테지요."
"그럼 우선 천명으로 떠날 테니 나머지는 모집이 되는대로 보내주십시오."
잠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제후는 서둘러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하지요."
재상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강 장수를 향해 말했다.
"강 장수 계속하시오."
강 장수가 좌중을 돌아보며 중단된 뒷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형제 국 군사가 천명이고, 우리 군사는 오늘 도착한 사람들까지 해서 백명이오."
"......"
"여기에다 쌍방 모두에게 확실한 것은 정벌지가 초행이라는 것이오. 우리는 현지의 환경도, 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지 못하오."

"그건 제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또 제후가 나섰다. 이번에 강 장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말을 이었다.
"그 모두 그곳 환경에 적응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오. 그러니까 별안간 악조건이나 악천후를 만나 발이 묶이거나 군량이 부족할 경우, 형제 국 군사들은 도주를 하거나 민가에 노략질을 할 수도 있소."
"기강이 엄하면 그런 불상사는 사전에 막을 수 있지요."
책임선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낯선 군사들이오. 우리의 기강을 익힐 시간이 없었소. 또한 언어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요. 그래서 생각해낸 편법인데…."
"편법이라면?"
"확실한 통솔에는 소단위가 적법이라 했소. 그래서 우리도 세부편대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오."
"세부 편대라면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은 장수가 물었다. 그는 전략에 관심이 있고 강 장수에게 그걸 배우고 싶었던 터라 당장 질문을 해본 것이었다. 강 장수 역시 그를 바라보며 설명을 했다.
"먼저 우리 군사 1백과 형제국 1천을 똑같은 숫자로 나누는 것이오. 그러면 우리군사 50에 형제국 군사 500명이 좌 우 군단으로 갈라지오."

"좌, 우군단은 우리가 실행해온 정법이지요."
"이 오십대 5백을 다시 10대 1로 나누면 우리 군사 한 명당 형제 군사 10명이 주어지오. 이 한명 당 10인을 1조로 한다면 50조가 되는 것이오. 그러니까 큰 단위로는 좌 우 군단이 있고 그 군단에 각각 50조로 세분화된다는 뜻이오."

"한 군단에 맞바로 50조? 하긴 군사 수가 크게 많지 않으니 그 병법도 큰 무리는 아니겠군요. 아무튼 계속해보시지요."
"각 조를 맡게 되는 우리 군사는 그 조의 아장이 되어 그에 딸린 열명을 통솔해야 하오."
"그야 어렵지 않지요."

"통솔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이반자도 없도록 늘 감시해야 하며 그 동태파악을 항상 군단의 대장에게 보고해야 하오."
"......"
"그렇게 한다면 정벌지에 도착할 때쯤엔 마치 서로가 한필에 엮인 마포 같을 것이오, 그렇게 단단히 조직되어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좌, 우 군단의 대장은 누가 됩니까?"
제후가 물었다. 강 장수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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