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공연전희식
논 이름만 사라진 줄 아는가. 논과 함께 불리어지던 그 많은 이름들도 다 사라지고 없다. 논의 친구들 말이다. 쓰레질, 모춤, 샛요기, 못줄, 논배미, 마지기, 한 섬 두 섬, 거울 베기….
논에서 들려오던 여러 소리들도 사라지고 없다. 소 모는 소리, 개구리 소리, 구성진 농부가도 더는 들을 수 없다.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지도 오래다. 젊은이들의 잠자리에서 아이들이 만들어지는 법. 노인네의 잠자리에서는 마른 살비듬만 소복하다.
미꾸라지도 어디론가 떠나가고 없다. 고둥도 없어졌고 메뚜기도 보이지 않는다. 장딴지를 물고 늘어져 피를 빨던 거머리가 그리워 질 지경이다.
마르지 않는 저수지
모두가 떠나 가버린 논은 '풀꽃상'을 받아도 축하해 줄 친구 하나 없다. ‘풀꽃상’에 부상으로 '벅적지근한' 술상을 받았다 한들 대작할 친구가 없는데 무슨 맛이겠는가. 반세기도 채 안 되는 짧은 세월에 누가 이 땅 이천년 역사의 논농사를 이렇게 초토화 시켰는가? 누가 논의 친구들을 '싸그리' 소탕 해 버렸는가?
바로 당신이다. 풀꽃상이라는 기막힌 행사치레로 탐욕과 파괴를 앞가림 하려는 당신이다.
우리 동네 저수지 물은 일년 내내 철철 넘친다. 아무리 가물어도 저수지 바닥을 보기 힘들다. 논에 물꼬가 틀어 막힌 지 오래여서 그렇다. 논에는 언젠가부터 벼가 자라는 게 아니라 꽃나무가 자라고 생강이 자라고 시설채소가 자라고 있다. 저수지 물을 쓰던 논들이 다 변절(?) 해 버렸다. 배신을 때렸다. 그래서 논 값은 밭 값보다도 싸졌다. 밭으로 변한 논에서는 돈벌이 작물들이 자란다. 논이 상품 씨받이로 전락했다. 오로지 팔기 위한 작물들은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논은 불량상품을 양산하고 있다.
우리 동네 입구에 한 마지기 당 쌀 네 가마니를 내던 논에는 재작년에 양계장이 들어섰다. 이장네 논에는 젖소가 수 십 마리 들어왔다. 상까지 받았는데 논의 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다.
마를 날이 없는 우리 동네 저수지는 20년 전에 만든 것이라 하는데 농사철 끝나면 몸보신 하려고 당시 돈으로 20만원어치나 물고기를 사 넣었다고도 한다. 이제는 물고기 잡을 사람마저 없다. 당신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노인네들이 방죽을 어떻게 오르랴.
눈보라치는 들판에 벌거벗은 채 또는
내가 기뻐하면 세상이 그만큼 기뻐진다고 한다. 내가 웃으면 세상에 웃음꽃 하나 더 해 진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세상에 웃음이 만발하면 나도 덩달아 웃음으로 살아가게 되겠지만 싸늘한 시골 들판은 내 마음까지 식어가게 한다. 텅 빈 겨울들판을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농부의 겨울은 더 춥다. 세찬 눈보라가 갈기고 지나가는 빈 들판에 맨 살로 떨고 있는 빈 땅들은 농부를 떨게 한다. 우리의 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