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이공계 대책, 제대로 세워라

등록 2004.01.28 11:21수정 2004.01.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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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학기술부와 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 장관이 공동으로 이공계 핵심 연구인력 양성 대책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공기업 과학기술전공자 채용목표제 도입,이공계 대학 및 석·박사과정 미취업자 채용 기업에 대한 인건비 지원,10대 성장동력 산업 연구인력 1만명 양성 등이 기본 방향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부가 내놓고 있는 인건비 지원 등의 임시방편적이고 대증(對症)적 대책으로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극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식의 대학 진학을 목전에 둔 학부모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얼마나 현재의 이공계 문제가 심각하면, 채용목표제로 집어 넣어줘야 하고, 인건비를 보조해줘야 하며, 더 쓸모있는 인력으로 양성까지 해줘야 하는가 말이다.

정부는 이미 연간 수백억원을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주고 있지만 우수 학생들이 의대·한의대를 찾아 학교를 떠나는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방법으로 우수인력을 이공계로 ‘유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낸 정부 관료의 이이큐 수준이 심히 의심스럽다.

요즘 인터넷의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의대/한의대 학생들이 중고교 시절 자신이 전국 규모 수학/과학 경시대회 상위입상 이력을 내걸고 또 자신들이 의대/한의대를 갈 정도로 우수 엘리트 인재임을 자랑하며, 고액과외 시장에서 성업 중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럴 진대 푼돈 몇 푼에 미래가 뻔한 이공계로 유인될 인재가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게 우습다.

현재의 이공계 위기의 근본문제는 단지 이공계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한명이 수십만,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우수 인력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까지 정부 관료들이 내놓고 있는 방안은 근본적인 이공계 기피 문제를 해결해주기는 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아까운 혈세를 이곳 저곳에 쪼개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낭비하지 말고 현재 우수 이공계 종사자들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 한번 왜 요즘 학생들이 의대/한의대 못가서 난리인지 생각해보라. 대부분의 현업 종사자들의 입에서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우수 이공계 종사자들 입에서 '보람있다'는 소리가 나오면 우수인재들이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게 되있다. 그런데 이건 한두명의 스타 만들기로는 안된다. 적어도 수천명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도록 해야한다.


요즘 국회의원 선거철을 맞아 정치판에 ‘올인’이라는 유행어가 나돌고 있다. 유력 정치인들이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던 지역구를 과감히 탈피하여 몸소 ‘생즉사 사즉생’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 정부와 여당이 진정으로 이공계 위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바로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여당에서 나서서 과학기술계 비례 대표를 50% 배정하라.그리고 당 중앙위원에 20명정도의 과학기술계 인력을 배치하라. 정부의 경우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고위직에 과학기술인들을 대거 수혈하여 이들이 스스로 이공계 위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게 하라.


현재의 상황에서 아무리 정부와 여당이 이공계 위기라 큰일났네 뭐내하면서 호들갑을 떨며 심각한 척해도 속된 말로 ‘씨알’이 안 먹힌다. 나라야 거덜나든 말든 자신들의 밥그릇은 꽉 움켜쥔 채 거지 동냥하듯 선심 쓰는 것으로 밖에는 안 비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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