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34>공장일기<21>

등록 2004.01.28 17:57수정 2004.01.2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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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병력특례교육을 마치고

병력특례교육을 마치고 ⓒ 이종찬

'겨울언덕에 서서'라는 제목의 <마산문화> 창간호가 나가자 민중문화운동을 하는 여러 단체들과 각 지역에서 무크지를 펴내고 있던 문화예술인들의 반향은 몹시 컸다. 특히 최순임의 '수출자유지역에서의 하루'는 당시 노동현장의 열악한 현실을 잘 모르고 있던 지식인 계급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보안대의 집요한 추적과 방해도 만만치 않았다. 마산문화 편집진들은 계속해서 장소를 옮겨가며 제2호를 위한 기획과 편집을 은밀히 추진해야만 했고, 구성원들은 구성원대로 마치 비밀학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남은 과제를 남몰래 공부해야만 했다. 그리고 토론내용에 대해서도 보안을 더욱 철저히 해야 했다.

"이기 뭐꼬? 영장 아이가? 니 글 쓴다꼬 까불고 댕기쌓더마는(다니더니) 공장에서 쫓겨났뿟는 거 아이가?"
"영장은 영장인데, 그런 영장하고는 다른 깁니더. 병역특례로 받는 사람들도 1년에 한번씩 군사훈련을 시킨다 아입니꺼."
"그라모 한달 동안 군부대에서 생활하면서 훈련을 받는다 이 말이가."


그 와중에 나에게 병역특례교육이 떨어졌다. 당시 병역특례교육은 4주 동안 회사에 출퇴근하지 않고 인근 군부대에 나가 하루에 8시간씩 받는 군사훈련이었다. 그러니까 입영자가 군대에 처음 입소를 하면 신병훈련소에서 4주 동안 받아야 하는 그런 기본군사교육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병역특례기간은 5년이었다. 그러니까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면서 1년에 한번씩 군부대에 나가 4주간의 군사교육을 받으며, 5년간 근무를 하면 병역을 면제시켜주는 그런 제도였다. 하지만 입사일로부터 5년이 아니라 영장이 떨어진 날로부터 5년을 근무해야만 했다.

"체! 말이 좋아 5년이지, 우리 보고 같은 공장에서 7~8년 동안 찍 소리도 내지 말고 일해라카는 거 아이가. 그것도 병장이 아이라 이병으로 제대시켜 주는 주제에."
"그래도 그기 오데고? 그동안 돈을 버는 거로 생각을 해야지."
"차라리 군에 갔다 오는 기 낫지, 이기 창살 없는 감옥이 아이고 뭐꼬?"


그랬다. 당시 병역특례 혜택을 받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공고 3학년 때 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자마자 곧바로 실습생이란 이름으로 방위산업체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영장은 대부분 2~3년 뒤에 나왔다. 그런 까닭에 병역특례를 받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같은 공장에서 7~8년을 근무해야만 했다.

또 병역특례기간 중에 퇴사를 하게 되면 1주일 이내에 군부대에서 강제 소집영장이 떨어졌다. 게다가 병역특례기간 중에는 어떠한 이유로도 다른 방위산업체로 옮길 수도 없었다. 그 때문에 병역특례를 받는 사람들은 회사의 불편부당한 지시나 어떠한 불이익도 스스로 감수해야만 했다.


"그래도 너거들은 땡 잡은 기다."
"와예?"
"너거들부터는 5년 동안 군사훈련을 4주만 받으모 된다 카더라. 그라고 도시락도 싸들고 가야 된께네 짬밥도 안 묵고 울매나 좋노."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5년 동안 1년에 4주씩 모두 20주를 받아야 하는 군사훈련이 그해부터 4주로 줄어든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해 군사훈련을 받는, 나를 포함한 특례병들은 5년 동안 4주간의 군사교육을 꼭 한번만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것도 예비군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면서 말이다.

"근데 그렇게 애지중지 기르던 머리는 아까바서(아까워서) 우째 빡빡 깎것노?"
"앞머리는 0.5센티까지는 괜찮타 카던데예?"
"그라다가 애매하게 고문관 짓 하지 말고 고마 빡빡 깎아뿌라. 글마들이 특례병만 보모 눈에 불로 켜고 잡아묵을 듯이 설친다카이."


그랬다. 당시에는 장발이 유행이었다. 특히 이십대 초반의 노동자들은 누구나 머리를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길렀다. 간혹 이발을 할 때에도 이발사에게 귀가 보이지 않게 잘라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남자들도 멋을 내기 위해 옆 가르마보다는 중간 가르마를 많이 타고 다녔다.

나 또한 머리를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할 때까지 길게 길렀다. 지금 그때 찍은 사진들을 바라보면 절로 웃음이 쿡쿡 삐져 나오기도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귀가 보이게 머리를 자른다거나 스포츠형으로 귓머리를 쳐 올리는 것은 중늙은이들이나 하는 머리 스타일에 속했다.

그런데 그 애지중지하던 머리카락을 특례병 군사훈련 때문에 스님처럼 빡빡 밀어야만 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었겠는가. 게다가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일반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으니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내게로 쏠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너 나와!"
"저 말입니꺼?"
"야이 새꺄! 퍼뜩 못 나와!"
"네! 훈병 000"
"퍽! 퍽! 퍽!"
"이 새끼들이 사회에서 따신 밥 처묵고 있은께네 눈에 비는(보이는)기 없나? 복창한다! 나는 죽었다!"
"나는 죽었다!"

덧붙이는 글 | <계속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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