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콩아 왜 울었니?"

네살 박이 아들과 함께 본 인형극 <애기똥풀>

등록 2004.01.31 16:22수정 2004.01.3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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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둘째 아이 별명은 '돌콩'입니다. 생긴 것이 동글동글하니 단단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고집도 세고 목소리도 우렁차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골이 나면 달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인형극 시작 전에 엄마와 함께.
인형극 시작 전에 엄마와 함께.유성호
오는 5월이면 만 4살이 되는 둘째는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작습니다. 그러나 성장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작은 몸집으로 또래 집단에서 이겨내기 위해 고집이 더 세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돌콩이란 별명의 유래는 이러한 외적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녀석의 '대인 공격'(?) 형태에서 기인합니다. 눈치는 빨라서 자기 말을 하는 듯 하면 어김없이 머리를 디밀고 저 만치서 달려듭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정수리를 앞세워 달려드는 녀석의 머리에 늑골을 정통으로 맞으면 몇 대는 온전치 못할 정도로 강력합니다.

올망졸망 콩 같이 작은 녀석이 차돌 같다는 의미에서 '돌콩'이란 별명이 지어진 것입니다. 단단하기만 할 것 같은 녀석이 오늘은 흐느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와 저는 녀석의 돌연한 행동에 자못 당황했지만 너무도 대견스럽고 속 깊은 아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둘째가 소리 없이 굵은 눈물을 떨구며 흐느낀 이유는 이렇습니다. 큰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애기똥풀>이라는 어린이 성장 인형극을 보러 갔습니다. 140여석 되는 매우 작은 소극장에 들어서자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온통 어린이 관객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평일임에도 불구 객석은 어린이 관객으로 모두 찼다.
평일임에도 불구 객석은 어린이 관객으로 모두 찼다.유성호
조명이 꺼지고 전래동요 자장가가 흘러나오면서 주인공 '하늘이'의 탄생으로 인형극이 시작됐습니다. 하늘이는 다리가 불편한 홀엄마 밑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시골 마을 아이입니다. 하늘이 아빠는 집에 불이 나자 하늘이와 엄마를 구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하늘이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엿을 바꿔 먹기 위해 팔려던 아빠와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알게 됩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대신 일기장을 이어 써가고 있는 엄마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내려 가자 극장 안은 숙연해 졌습니다.

"일천구백육십칠년 팔월 일일. 여보, 오늘은 비가 옵니다. 하늘이가 비를 맞고 올텐데 걱정이에요. 우산을 가지고 마중 나가고 싶지만 하늘이가 제 다리 때문에 놀림 당할까봐 나가지도 못하네요. 당신이 없이 혼자서 하늘이를 건강하고 착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지만 아무래도 아빠 없는 아이라 사람들이 손가락질할까봐 항상 걱정이 됩니다. 그때 당신 대신 내가 하늘나라로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요. 하늘이와 나를 구하기 위해 당신이 그 불기둥이 깔리지만 않았더라도 좋았을 텐데. 여보, 당신은 하늘에서 우리 하늘이와 나를 지켜보고 있겠죠? 오늘처럼 비오는 날은 내 마음이 슬퍼지네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은데…. 우리 하늘이를 제가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엄마의 목소리가 담담히 이어지고 있는 데 옆에 앉아 있던 작은 녀석이 소매로 얼굴을 훔칩니다. 눈이 간질거리거나 졸려서 그러려니 하고 무대로 눈을 돌리는 데 녀석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연신 무엇인가를 걷어올리고 닦아내는 것이 분명 닭똥 같은 눈물이었습니다.

조금은 당황스러워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지만 녀석은 답 대신 눈물로 대답합니다. 그렁 그렁한 녀석의 눈망울을 보니 괜히 우리 부부까지 짠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근영아, 왜 그래? 슬퍼서 그러니?"

그때서야 녀석은 고개를 끄떡끄떡 거립니다. 그 순간 고집불통 돌콩 같기만 하던 녀석의 깊은 심지가 느껴졌습니다. 녀석은 그렇게 한동안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습니다. 아이의 소리 없는 흐느낌은 그 자체가 '슬픔'처럼 다가 왔습니다.

인형극이 슬펐는 지 아이들 표정이 밝지 않다.
인형극이 슬펐는 지 아이들 표정이 밝지 않다.유성호
인형극이 모두 끝날 때까지 슬픈 녀석의 표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인형을 조정한 단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순간까지 녀석의 표정이 굳어 있었습니다. 네살박이 작은 녀석이 느낀 감정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튿날 '왜 울었는 지' 되물었을 때 녀석은 배시시 웃으면서 겸연쩍어 합니다. 그러고는 마치 "아빠는 그것도 몰라?" 하는 표정으로 품에 달려와 묻힙니다. 아이가 느낀 감정은 진짜 무엇이었을까요?

덧붙이는 글 | <애기똥풀>은 어린이 성장 인형극 입니다. 그 중간에 각설이가 나와 품바 타령을 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관객이 직접 나래이터로 참여하는 재미난 인형극입니다. 극이 끝나면 인형과 단원, 그리고 어린이가 함께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공연문의 (02)980-1245/극단 아름다운세상

덧붙이는 글 <애기똥풀>은 어린이 성장 인형극 입니다. 그 중간에 각설이가 나와 품바 타령을 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관객이 직접 나래이터로 참여하는 재미난 인형극입니다. 극이 끝나면 인형과 단원, 그리고 어린이가 함께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공연문의 (02)980-1245/극단 아름다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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