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비 축제에서 작은 삶을 배우다

신문배달부 미친 곰의 일본생활 체험기1-고토의 꿈

등록 2004.02.01 20:56수정 2004.02.02 09:2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하늘에 불꽃들이 꿈꾸는 날. 일본의 하나비 ⓒ 안창규

벌써 일본에서 신문을 돌리며 생활을 한 지 1년하고도 10개월이 지났습니다. 2월 달이 지나고 벚꽃이 피는 3월이 오면 드디어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모처럼 일본생활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서 1년 10개월 동안의 생활을 돌아봤습니다. 우연히 작년에 찍었던 하나비(불꽃놀이) 축제 사진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특히 고토가 환하게 웃는 사진이 절 즐겁게 합니다. 북해도 출신인 고토는 가족들을 북해도에 남겨 두고 이곳까지 와서 신문배달을 하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재작년 여름 때부터 우리 신문보급소에서 신문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일의 특성상 거의 대화를 못 나누다가 하나비 축제에 보급소 사람들끼리 모여서 축제를 즐길 때 이것저것 대화를 하며 고토에 대한 것들을 알게 되었죠.

처음 나이를 알았을 때는 좀 놀랐습니다. 30대 초반이나 많아야 30대 중반으로 알고 있었는데 중학생 딸을 둔 40대 중 후반이란 것에 약간 당황스럽더군요. 그래서 젊어 보인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자 고토가 수줍은 듯 웃으며 말하더군요.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거든요.”

a

항상 밝게 웃는 고토 씨 ⓒ 안창규

그 말을 들었을 때 잠시 멍해졌습니다. 흔히 신문배달부 하면 일본에서도 밑바닥 인생이라는 편견들을 가지고 있는데, 신문배달을 하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 조금은 놀라웠습니다. 따지고 보면 나도 신문배달부인데 신문 배달하는 내 자신조차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잠시 부끄러워졌습니다.

전에는 참 인상 좋은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고토의 말 한마디에 또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날 만났던 옆 좌석의 일본인 아저씨도 생각나네요. 같이 난관에 기대어 서서 하늘로 올라가는 불꽃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전 제가 가지고 있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앞으로 30살이 좀 넘게 되면 카메라를 메고 분쟁지역을 다닐 거라고 이야기했더니 아저씨가 전쟁이 좋냐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일본이 벌였던 태평양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건 명백히 일본이 저지른 잘못이었다고 말문을 열면서 아직 많은 부분에서 일본은 반성이 부족하다며 아저씨의 딸들이 컸을 때는 전쟁이란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저에게는 그런 직업이 없어 졌으면 좋겠다고 하며 맥주를 들이키셨죠.

일본에 오기 전 까지만 해도 일본사람들 모두가 전범일 거란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죠.

전 한참 동안 그 아저씨와 맥주를 들이키며 하늘로 올라가는 불꽃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끝으로 아저씨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죠.

오늘 이렇게 나와 함께 불꽃놀이를 봤던 걸 죽는 그날 돌이켜보며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하시면서 국적은 다르지만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오늘밤에 참 행복하다고 하면서 하늘로 올라가는 불꽃을 보면 소리치시더군요. 저도 따라서 한 손에 맥주 캔을 들고 함성을 질렀죠.

그날 밤은 참 많은 것들을 배웠던 하루였습니다. 꼭 지식이 많다고 해서 배울게 있는 건 아닙니다. 무심히 일상을 같이 하는 사람에게 가끔은 삶 그 무엇인가를 배웁니다.

책에서 배우는 딱딱한 지식과는 다릅니다. 사람에게서 배우는 그 무엇은 항상 가슴속을 따뜻하게 해주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조금 무더웠던 하나비가 있었던 그날….

사람들이 쉽게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었던 한 명의 신문배달부와 어디에선가 쉽게 마주치고 지나쳐갈 수 있는 나와는 국적이 다른 아저씨에게 작지만 아주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고토의 꿈이 무엇인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죠. 그의 그 환한 웃음을 보면서 40대 중반에 한 사나이의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 건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a

하나비 축제에서의 나 ⓒ 안창규

하늘에는 불꽃들이 춤추고 그의 얼굴에는 아름다움 꿈이 스며들어 있고 난 멋진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던 밤이었습니다.

“꿈을 지닌 사람은 늙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안창규 기자는 현재 일본에서 신문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3월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슴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하는 28살의 꿈많은 청년입니다. 안창규 기자 홈페이지는 gom1997.cyworld.com입니다.

덧붙이는 글 안창규 기자는 현재 일본에서 신문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3월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슴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하는 28살의 꿈많은 청년입니다. 안창규 기자 홈페이지는 gom1997.cyworld.com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2. 2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3. 3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4. 4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5. 5 윤 대통령 한 마디에 허망하게 끝나버린 '2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