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타고 창산에 올라 두 제자를 얻다

운남 여행기(2)

등록 2004.02.02 09:27수정 2004.02.0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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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산 가는 길의 대리 고성 안 상점들. 눈이 행복해 지는 길이다.
창산 가는 길의 대리 고성 안 상점들. 눈이 행복해 지는 길이다.최성수
어젯밤 10시 20분쯤에 곤명역을 출발한 기차는 밤새 달리더니, 새벽 5시가 되자 멈춰 서서 좀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은 6시 반.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멈춰 선 기차에서는 제대로 된 안내 방송조차 없습니다. 그저 잠시 정차중이니 마냥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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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잠시 후 갑자기 차내 방송에서 커다란 노래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잠결에 얼핏 시계를 보고, 아직 한 시간은 더 갈 테니 한 잠 더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눈을 붙인 내게 그 음악은 노래가 아니라 소음입니다.


잘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잔뜩 찡그리고 있는데, 승무원인 아줌마가 뭐라고 소리를 꽥 지르고 지나갑니다. 그 승무원은 어제 기차를 탈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 일행 네 명의 기차표가 둘은 6호차, 둘은 13호차로 나뉘어 있어 표를 바꾸느라 두어 번 왔다 갔다 했는데, 승무원은 자리에 있지 않고 돌아다닌다고 신경질을 냈습니다.

중국 여행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의 불친절과 무관심입니다. 호텔 카운터의 아가씨조차 친절이라곤 찾아보기 힘들 정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제 곤명 기차역의 제복을 입은 남자 직원들이 새삼 떠오릅니다. 그들은 승객이 지나가거나 말거나, 대합실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목소리 높여 떠들고만 있었습니다. 업무를 본다기보다는 그저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담소하는 것 같은 그 사람들.

"우리가 너무 일을 많이 하며 살아온 것인가? 저렇게 느긋하게 놀며 놀며 살아도 살아지는 게 인생인데 말이야."

나는 그 직원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기차는 한 삼십여 분을 그냥 서 있다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십여 분 가더니 멈춰 섰습니다. 대리 역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저 차 도착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안내 방송도 없이 서 있었던가 봅니다. 또 무뚝뚝한 표정의 여승무원이 차가 서자마자 빨리 내리라고 소리를 지르며 지나갑니다.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메고 기차역을 빠져나옵니다.

나를 태우고 창산에 오른 말. 연신 방귀를 뀌어 대고, 풀숲에 들어가 풀을 뜯었지만, 나는 말에게 미안했다.
나를 태우고 창산에 오른 말. 연신 방귀를 뀌어 대고, 풀숲에 들어가 풀을 뜯었지만, 나는 말에게 미안했다.최성수
해가 늦게 뜨고 늦게 지는 운남성답게 아직 캄캄한 밤중입니다. 동틀 기색조차 없는 6시 30분. 그러나 기차역 앞에는 차와 사람들로 북새통입니다.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몇 사람들이 달려듭니다. 자기네 호텔로 가자며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택시에 올라탑니다.


우리가 내린 곳은 대리의 하관(下關)입니다. 고성 안에 있는 숙소를 대자 택시 기사는 안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택시는 대리 고성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고성 안에 들어서더니, 잘 안다고 장담하던 숙소를 모르는지, 택시 기사는 이곳저곳에 전화를 해서 다시 위치를 묻고, 겨우겨우 우리를 '넘버3' 게스트 하우스에 데려다 줍니다.

닫힌 문을 몇 번 두드리자 졸린 눈의 청년이 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 줍니다. 4인 1실의, 그러나 따뜻한 전기 담요가 있는 방에서 몸을 녹이니 조금 살 것 같습니다.


잠시 휴식 후에 아침 식사를 하고, 창산을 향합니다. 창산으로 가는 길은 숙소 앞의 좁은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됩니다. 그 좁은 길 양쪽으로 가게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습니다. 백족의 특산인 남염(藍染)한 옷가지나 책상보와 옥 반지, 귀걸이 따위를 파는 가게들입니다.

창산에서 내려다 본 대리 시내. 멀리 푸른 강이 얼하이 호수, 그 눈이 시린 푸르름이 아직도 생생하다.
창산에서 내려다 본 대리 시내. 멀리 푸른 강이 얼하이 호수, 그 눈이 시린 푸르름이 아직도 생생하다.최성수
그 다양하고 색다른 색채감에 취하며 창산으로 향하는 길은 이국적이고 아름답습니다. 골목이니 당연히 차 한 대 들어올 수 없고, 늘어선 가게들마다 내놓은 물건들이 툭툭 발길에 차이는 곳, 그래서 여행자들의 시선이 골목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길을 지나면 창산으로 가는 말을 탈 수 있습니다.

창산, 대리의 배경을 이루는 해발 약 4천m의 고산입니다. 머리 위에 희디 흰 눈을 이고 있는 창산은 나이 든 은자(隱者)의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자들은 그 창산을 케이블카를 타거나 말을 타거나 혹은 걸어서 오릅니다. 케이블카는 밋밋하고, 그렇다고 걷기에는 나이 든 다리가 마땅치 않아 말을 타기로 합니다.

나를 태운 말은 몸집이 작고 힘도 약한 놈입니다. 그래서 산길을 오르면서 자주 방귀를 뀌어대고 길을 벗어나 풀숲에서 풀을 뜯곤 합니다. 고삐를 당기며 "이랴, 이랴" 소리를 질러 보지만 제 멋대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도 말은 익숙하게 다닌 길이라는 듯, 알아서 척척 산 위로 올라갑니다.

한동안 산길을 오르다 보니, 헉헉 숨 차 하는 말이 불쌍합니다. 녀석과 내 뒤에 따라오는 송희가 탄 말이 형제라고 합니다. 두 녀석은 다른 말들에게 앞자리를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다른 말이 조금 앞서면 마구 뛰어 제 자리를 차지하곤 합니다. 덕분에 말 타는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가 닿는 곳인 중화사 부근이 말의 도착지이기도 합니다. 말에서 내려 대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오르자 바람이 거세게 불어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대리풍(大理風)이 바로 이것이구나!'하며 감탄하는 사이, 바람은 사람들 모자를 훌렁 벗겨 놓기도 합니다.

일행들이 산 위에 있다는 폭포를 찾아 간 사이, 나는 그냥 거기서 대리의 모습을 구경하며 놀기로 합니다. 내려다 보는 대리의 풍경은 지극히 아름답고 잔잔합니다. 등 뒤로는 창산의 흰 눈에 눈이 시린데, 발 아래로는 푸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리 고성이 옹기종기 시간을 머물게 하려는 듯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좌우로 길게 퍼져 있는 얼하이(洱海) 호수가 펼쳐져 있습니다. 창산에서 바라보는 대리는 잔잔하고 고요합니다. 비록 세찬 바람이 몸을 마구 흔들어 대도, 바라보는 대리의 풍경에는 바람 한점 없는 듯 느껴집니다.

창산에 올라 보면, 창산 유람의 핵심은 산을 오르는 과정이 아니라 오른 뒤의 풍경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창산 오르는 길이야, 그저 말을 타고 오른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우리 나라 강원도 뒷산만도 못합니다. 먼지 풀풀 날리는 산길에, 늘 보던 소나무들이, 그것도 우리 나라 산들보다는 듬성듬성 서 있는 그저 그런 산일뿐입니다.

창산에서 춤을 추던 이족 아가씨들. 순박한 미소가 아름답다.
창산에서 춤을 추던 이족 아가씨들. 순박한 미소가 아름답다.최성수
그러나 창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리의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 한 없이 빠져드는 것 같은 시린 하늘과 금방 물감을 풀어 붓으로 그려낸 것처럼 점점 번져가며 펼쳐지는 얼하이 호수의 어울림은 창산에 올라서야 제대로 보이는 법이니까요.

나는 한동안 바람 속에서 대리와 얼하이의 풍광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몇몇 있던 관광객들은 다 사라지고, 제법 널찍한 광장에는 방금 전까지 춤을 추며 관광객들을 호객하던 색색 옷의 소수민족 아가씨들과 피리를 불던 얼굴이 새까만 청년만이 팔짝팔짝 뛰며 춤 연습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동안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옆에 누군가가 다가와 앉는 기척이 납니다. 돌아보니 웬 서양 사내 한 명이 찻잔을 들고 나를 보며 싱긋 웃습니다.

"니 하오?"

내가 중국말로 인사를 하자 그도 웃으며 "니 하오?"하고 인사를 합니다. 한 손에 작은 캠코더를 들고, 다른 손에는 찻잔을 든 그의 모습이 익살맞습니다. 그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황홀한 표정을 짓습니다. 차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만합니다.

그는 나를 중국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을 하자 그가 반색을 합니다.

"88년 올림픽 때 한국에 간 적이 있어요."

이족 아가씨들의 춤.
이족 아가씨들의 춤.최성수
그런 말을 하는 그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는 듯, 살짝 눈을 감기도 합니다.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피터는 헝가리 출신으로 지금은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답니다. 비디오 편집자라며,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서툰 영어로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제 홍콩에서 이곳 대리로 왔다는 그는 그저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물다 다른 곳으로 가는 여행자입니다.

손짓 발짓을 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가 신기해 보이는지, 피리를 불던 소수민족 청년이 다가와 말을 붙입니다. 나는 그의 빠른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몇 번이나 되묻습니다. 역시 서툰 중국어로 겨우 겨우 통성명을 하고, 그가 이족의 청년이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이번에는 피터가 우리의 대화를 신기한 듯 지켜봅니다.

우리 셋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도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내가 들고간 수첩에 적기도 하자, 춤을 추던 이족 아가씨들이 모여 한 마디씩 이야기를 건넵니다. 먹고 있던 과자를 내게 건네주기도 하는 이족 아가씨들의 표정이 밝습니다. 피터와는 영어로, 이족 청년과는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관광객 몇이 몰려옵니다.

이족 청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피리를 불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흩어졌던 이족 아가씨들도 모여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런 모습을 피터는 또 열심히 비디오로 찍기 시작합니다.

내 제자(?)였던 피터. 헝가리 출신의 비디오 편집자인 그는 자유로운 여행자다.
내 제자(?)였던 피터. 헝가리 출신의 비디오 편집자인 그는 자유로운 여행자다.최성수
관광객들이 사라지고, 다시 광장에는 바람만 붑니다. 더운 물을 얻어다 차를 더 우려내 마시던 피터가 문득 내게 중국어를 물어옵니다. 나도 몇 마디밖에 할 줄 모르지만, 피터가 물어보는 중국어가 워낙 쉬운 것들이라 아는 데까지 대답을 해줍니다. 그의 질문과 내 대답은 이런 것들입니다.

"왓츠 유어 네임이 중국어로 뭐냐?"
"닌 꿰이 싱이다."

그런 우리를 보고 조그만 가게에서 기념품이나 음료수 따위를 팔던 아주머니가 다가옵니다. 그 아주머니는 공책을 한 권 들고 있습니다.

"한국말 좀 가르쳐 주세요."

아주머니가 내민 공책에는 가득 중국어 문장과 그에 해당하는 영어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내가 불러주는 한국말을 영어 문장 아래다 알파벳으로 적어놓습니다.

"한 개 십 오원."
"폭죽 있어요."
"싸요."

그런 문장들입니다. 앞으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아서, 한국말로 물건을 팔 연습을 미리 하는 것이라는 아주머니는 정말 열심입니다. 서툰 발음으로 내가 가르쳐 주는 우리말을 진지하게 따라 합니다. 옆에서 구경하던 피터도 덩달아 우리 말을 따라 배웁니다. 한동안 한국어 공부를 하던 아주머니가 자기 이름은 조홍방(趙紅芳)이라고 내 수첩에 적어 줍니다.

"선생님은 어느 곳에서나 선생님이에요."

피터와 매점 아줌마인 조홍방씨, 두 제자와 함께 사진을 찍다.
피터와 매점 아줌마인 조홍방씨, 두 제자와 함께 사진을 찍다.최성수
피터가 웃으면서 나를 치켜세워 줍니다. 아주머니도 내게 "니 쓰 워더 라오스(너는 나의 선생님이다)"라며 나를 선생 대접해 줍니다. 뜻하지 않게 창산에 올라 제자 두 명을 둔 셈입니다. 기념으로 두 제자와 함께 한 장, 춤추던 이족 청년과 아가씨들과 한 장, 사진을 찍고 창산을 내려옵니다. 피터는 더 있겠다며 내게 작별을 고합니다. 매점 아주머니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줍니다.

진정한 여행은 무엇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 얼굴 한 번 스치고 평생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사람이지만, 그러나 세상의 어느 한 곳에 그 사람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마음 잔잔해지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내가 가는 여행길의 모든 것, 나무나 바위나 구름이나 햇빛과 물살들에게 넓혀가는 것이 여행의 기쁨이겠지요.

돌아오는 길, 창산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흰 눈이 더 눈부십니다. 내려다보는 대리의 점점이 박힌 집들도,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푸르디푸른 얼하이 호수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아마도 대리의 이 풍광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하고 간직할 것 같습니다. 말방울 소리가 유난히 경쾌한 것은 대리의 싱그러움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스함이 내 마음에 들어온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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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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