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머리 보고 친구들은 뭐랄까?"

큰 아이 첫 머리 염색하던 날 풍경

등록 2004.02.03 01:23수정 2004.02.03 15:0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성호
오늘은 미루어 왔던 큰 아이 머리 염색을 위해 남성 헤어 전문점에 갔다. 큰 아이의 머리는 약간 고수머리라서 그동안 머리 염색을 주저했다. 본인 또한 머리 염색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얼마 전 지나가는 말로 머리 염색을 권유했고 큰 아이는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아이는 벌써부터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좋아하는 여자친구 이름을 물으면 몸을 배배 꼬면서 들릴 듯 말 듯 대답하는 것이 무언가를 알아가고 있는 듯했다.

유성호
염색 전 머리 손질에 들어 간 큰 아이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연신 입을 벙글거렸다. 그 웃음 속에는 여전히 쑥스러움의 흔적이 배어 있다. 그래도 큰 아이는 이용사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돌렸다 하면서도 기대감에 젖어 있는 듯했다.

이용사는 큰 아이의 주변머리(?)를 깡총하게 잘라낸 뒤 머리 윗부분은 염색을 위해 남겨 두었다. 잘린 머리카락 부스러기가 큰 아이의 목덜미며 얼굴을 간지럽힌다. 큰 아이는 목에 두른 보자기 같은 천 사이로 손을 빼내 연신 이 곳 저 곳을 긁어대느라 분주하다. 이용사의 손길도 덩달아 바빠진다.

유성호
커트를 끝낸 이용사는 염색약을 혼합한 뒤 고무 사발에 반 주먹 가량 담아 왔다. 염색약 색깔은 연한 하늘색 빛을 띠고 있었다. 이 염색약이 나중에 갈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베를 짜듯 엇갈리게 머리카락을 들어올려 염색약을 바른다. 머리에 칠한 염색약은 치약처럼 보였다.

사실 한 두군데 정도 '블리치'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용사가 머리 전체에 둘레둘레 염색약을 칠하곤 비닐로 된 모자를 씌워 버렸다. 사전에 어떻게 해 달라는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던 탓이다. 이제부터는 염색약이 제몫을 다하도록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유성호
10분 정도 후에 열선이 들어 있어 열이 발생하는 헝겊 모자를 덧씌웠다. 염색약이 빨리 말라서 제 색깔을 내도록 하는 것이란다. 잠시 후 머리 부분이 뜨거워지는 것이 불편한지 큰 아이 얼굴도 덩달아 달아 오른다.

언제 벗느냐고 연신 물어 본다. 이용사가 5분 후에 벗긴다고 답하자 큰 아이는 시간을 재기 위해 시계가 있는 나의 휴대 전화를 달라고 해서 분당 한번 꼴로 시간이 가는 것을 알려준다. "와! 시원하다." 헝겊 모자를 벗겨내자 큰 아이는 탄성을 질렀다.


유성호
큰 아이는 곧바로 머리를 감기 위해 세면실로 들어간다.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감던 큰 아이는 비눗물이 눈에 들어 갔는지 불편을 호소한다. '불편 호소'라는 말은 완곡한 표현이고 사실은 징징거리며 울었다. 비눗물이 들어 간 눈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하지만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닦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가만히 있는다. 이제는 머리 말리는 시간. 서서히 금빛에 가까운 갈색 색조가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큰 아이의 표정을 훔쳐보니 신기해 하면서 동시에 만족한 표정이었다. 이용사는 헤어 무스를 발라 멋진 '2대8' 가르마를 타 주었다.

유성호
내일이 마침 어린이집 수료식 사진을 찍는 날이니 큰 아이의 머리 염색은 날짜는 제대로 잡은 셈이다. 대신 친구와 장난치다 이마 앞에 발갛게 일어난 혹을 달고 온 것이 '옥에 티'지만.

집에 돌아 온 큰 아이는 먼저 동생 '돌콩'(별명)에게 으쓱거리며 머리 염색을 자랑했다. 그러나 연년생으로 평소 형과 앙숙이던 작은 아이가 자랑을 받아 줄리 만무하다. 작은 아이는 하던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다. 딴 일 같았으면 자기도 해달라고 조를만도 한데 반응이 없는 것이 궁금했다.

유성호
잠시 후 형이 없는 자리에서 작은 아이에게 머리 염색을 하고 싶냐고 물어 보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도 내심 하고 싶지만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 있는 동안은 형의 머리 염색만큼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머리 염색을 하면 모르긴 몰라도 형에게 반드시 대답을 듣기 위해 집요하게 물어 볼 것이다. "셩(형 발음이 잘 않된다)! 나 염땍켔는데 괜찮았쏘?"라고.

큰 아이는 내일 보게 될 어린이집 친구들 반응이 벌써 궁금한 모양이다. 친구들이 염색했다고 머리를 만지거나 놀리면 어떡하냐고 물어 본다. "그건 아빠도 궁금하단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3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4. 4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5. 5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