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쿨하지 않아도 우리 엄마가 좋다!

책 속의 노년(70) : 〈엄마와 딸, 함께 나이 드는 여자〉

등록 2004.02.03 14:30수정 2004.02.0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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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어머니는 삼남매 중 막내인 나를 서른 셋에 낳으셨고, 세월이 흘러 그 막내가 서른 세 살이 되어 첫 아이를 낳았다. 그러니까 친정 어머니와 나, 나와 큰 딸아이의 나이 차이가 서른 두 살로 똑같다.

그래서 늘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내가 몇 살이지? 중학교 들어가면? 대학 들어가면?' 하는 계산을 할 때, 내가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대학 들어갔을 때의 어머니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려 보게 된다.


어머니는 올 해 일흔 일곱으로 희수(喜壽)가 되셨고, 아버지와 결혼한 지 50년이 되는 금혼식의 해를 맞으셨다. 스물 일곱에 결혼해 오십 년을 아버지와 사셨고, 슬하에 1남 2녀 삼남매에 일곱 명의 손자 손녀를 두셨다.

"엄마는 예쁘고 똑똑한 할머니야"하고 늘 말씀은 드리지만, 휘어진 다리에 걸음은 많이 느려지셨고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은 뿌옇게 보이신다. 또 총기가 많이 흐려져서 때로 이야기를 놓치기도 하시고, 때로는 엉뚱하게 듣고 잘못 이해하기도 하신다.

그래도 두 분 사시는 집을 깨끗하게 거두면서 아버지와 사이좋게 지내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언니와 나는 친정을 '비둘기 집' 같다고 말하면서 아버지, 어머니를 갑돌이, 갑순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슬퍼하는 노래 속 갑돌이와 갑순이가 아니라, 내가 어려서 오래 갖고 놀던 커다란 인형 이름인 갑돌이, 갑순이에서 따온 별명이다.

어머니는 큰 딸인 언니는 결혼 후 늘 멀리 두고 사셨고, 나와의 관계는 솔직히 표현하면 완전히 내게 매이셔서 아이 길러주고 살림 봐주느라 10년 넘는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실 정도이다.

막내인 나까지 결혼시키고 나자 어머니는 한숨 돌리면서 해방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친구분과 복지관에 등록을 하시고 재미있게 다니셨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내가 늦게 결혼해 바로 아이를 가진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만 위험 임신으로 가만히 누워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내게 매이고 말았다. 어머니의 자유시간은 정말 너무도 짧았다. '무사히 아이 낳을 때까지는 돌봐줘야지'로 시작해 몸조리나 끝나면, 아기 목욕이라도 혼자 시킬 줄 알게 되면, 대학원 입학했으니 공부 마칠 때까지만, 직장 다니니까 큰 애 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둘째 아이 학교 들어가는 거나 봐야지…로 정말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사이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 단지로 우리가 따라서 이사오게 됐고, 큰 아이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다. 어머니는 60대 중반에서 70대 후반으로 건너 뛰셨고, 나는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으로 확실한 중년의 자리에 앉게 됐다.


아직도 살림을 하면서 어머니 도움을 받고 있는 내가 죄송해하고 면구스러워하면, 어머니는 늘 같은 말씀을 하신다.

"나도 아이들 어릴 때 꼼짝없이 집에 매여 있으려면 속이 부글부글했지. 그래도 아이들 예쁜 짓 하면 금방 누그러지더라. 다른 사람 돕는다고 봉사 활동도 하는데, 나 필요하다는 자식한테 봉사 활동한다 생각했다. 나한테 갚을 생각하지 말고 너도 이 다음에 아이들한테 갚아라. 다 내리사랑이다."

패트리샤 비어드가 쓴〈엄마와 딸, 함께 나이 드는 여자〉는 책표지 맨 위쪽에 '좀더 쿨하고 아름다운 모녀 관계를 위하여'라고 적어 놓았다. 나와 친정 어머니 이야기를 죽 적다 보니 정말 쿨한 것과는 멀어도 한참 멀구나 싶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달라지는 몸과 마음은 물론 문화의 변화로 인해 생겨나는 세대간의 차이, 늙어 가는 어머니에게 좋은 딸 노릇 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어려운 이유 등등을 풀어나가고 있다.

또 모녀간에 존재하는 질투와 경쟁과 긴장 관계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어릴 때 딸을 돌봐준 엄마를 이제는 딸이 돌봐드려야 하는 역할 전환, 즉 '엄마의 엄마' 노릇이 과연 가능하며 바람직한지 살펴보고 그에 대한 대처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딸들과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았다. 어머니를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딸, 늘 자신의 규칙을 강요하는 어머니, 언어 폭력을 행사하고 자녀에게 무자비한 비판을 하는 어머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딸, 끝없이 요구하는 어머니들과 그에 맞추려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는 딸들, 지나치게 독립적이어서 '성숙한 상호의존'을 방해하는 어머니, 딸을 아직도 성인으로 대하지 않는 어머니 등등.

여기에 마지막으로 '충분히 좋은 딸'이라는 제목 아래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말년의 어머니를 편안하게 보내 드리기, 불완전한 어머니와 화해하기를 다루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진정한 친밀감을 경험하고 앞으로 올 나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문화 때문에 아버지에게는 화도 덜 나고 실망도 더 적게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묻고 있는 저자는, 나이 든 어머니에게 좋은 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책임감, 친밀한 관계, 사랑을 꼽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책임감과 친밀한 관계와 사랑이 어디 어머니를 향한 딸의 덕목이기만 하겠는가. 아들도, 아니 자식에 대해 부모도 마찬가지로 지녀야 할 덕목이리라.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우선 20대의 두 딸을 기르고 있는 언니에게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위로 어머니를 향한 마음과 태도를 살펴보면서, 나중에 늙어 딸들에게 사랑받고 존중받는 어머니가 되는 길은 무엇인지 예습해 보라고 말이다. 나는 전혀 쿨하지 못한, 끈끈하고 의존적인 모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세상의 다른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어머니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엄마와 딸, 함께 나이 드는 여자 Good Daughters / 패트리샤 비어드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서적, 2003)

덧붙이는 글 | 〈좋은 딸이 되기 위한 목표〉
· 어머니가 생의 마지막에서 의미와 편안함을 찾게 도와주기
· 모녀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성인으로서 상호존중하기
· 어릴 때처럼 어머니를 비난하지 않고 사랑하기 
   혹은 적어도 예전보다는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을 더 잘 표현하기

덧붙이는 글 〈좋은 딸이 되기 위한 목표〉
· 어머니가 생의 마지막에서 의미와 편안함을 찾게 도와주기
· 모녀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성인으로서 상호존중하기
· 어릴 때처럼 어머니를 비난하지 않고 사랑하기 
   혹은 적어도 예전보다는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을 더 잘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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