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증장애인의 절규, "도우미가 필요해요"

치매 걸린 엄마를 염려하는 정민씨의 사연

등록 2004.02.06 01:45수정 2004.02.0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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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픈 것보다도 마음이 답답한 것은 저를 도와주시던 엄마가 병이 들어 걱정입니다. 도우미만 있다면 좋을 텐데..."

a 엄마 생각으로 가득 찬 이정민씨, "빨리 병이 나으면 좋을텐데..."

엄마 생각으로 가득 찬 이정민씨, "빨리 병이 나으면 좋을텐데..." ⓒ 김용한

지난 4일 기자는 대구로부터 약 2시간 거리에 놓여있는 경북 문경을 찾았다. 한 장애인단체 취재원으로부터 문경에 살고있는 이정민(30세, 뇌성마비지체장애 1급)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취재원은 문경읍에 살고있는 한 중중장애인이 노모와 사는데, 중증장애인을 둔 자녀(이정민씨)를 수십년간 수발해 온 노모가 갑작스런 치매로 인해 장애를 가진 자식을 돌보지 못한다는 사실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병원 신세를 져야한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문경을 찾았고, 이정민씨가 재활교육을 받고 있다는 문경시장애인종합복지관(이수일 관장)에서 이씨에 관한 그간의 곤란한 사정을 들어볼 수 있었다.

복지관을 방문했을 때에는 이정민씨가 재활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동료 장애인들과 재활교육에 한창이었다.

이씨는 자신의 불편한 몸이 때론 원망스럽고, 갑갑하게 느껴졌지만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는 중중장애인들이 스스로 개척하며 자립생활을 하는 것을 전해 듣고는 이씨 자신도 독립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은 채 재활교육을 통해 자립의 의지를 다졌다.

a 책을 읽기위해 발로서 책을 꺼내는 광경

책을 읽기위해 발로서 책을 꺼내는 광경 ⓒ 김용한

이씨는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자신이 발로 만든 색종이 모양의 꽃과 동물, 각가지 형상들을 보여주면서 환한 미소로서 반겨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자신의 손과 같은 발을 힘겹게 움직이면서 책을 꺼내 독서를 하고, 색종이를 접을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저는 이곳에(복지관) 와서 교육을 받으니깐 좋은데…. 엄마가 몸이 자꾸만 아파서 걱정이 됩니다"고 어눌한 어투로 말을 하면서 "엄마만 치료가 잘되고 도우미만 있다면 불편함 없이 생활을 할텐데…"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답답해하였다.


a 복지관 교육중 만든 종이공작물

복지관 교육중 만든 종이공작물 ⓒ 김용한

이정민씨는 올 1월에 복지관에 다니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차량지원이 어려워 올 6월부터 복지관 프로그램(놀이치료, 집단활동, 직업적응 훈련 등)에 참여하면서 자립 의지를 다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씨의 재활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엄정숙(24세) 사회복지사는 "다른 장애인들도 많기 때문에 정민씨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고 하였다.

오전에 복지관에 와서 오후 4시까지 노모와 떨어져 생활을 하고 있는 이씨의 오직 한 가지 걱정은 노모가 3년 전에 발병한 치매 초기증상이 더 악화될까이다.

그는 기자에게 "별로 힘든 것은 없는데…. 엄마가 자꾸만 집밖을 배회하고,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기억력이 없어지는 것이 걱정스럽다"며 "엄마가 저러니(치매증상) 제가 마음놓고 교육도 못 받아요"라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a 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광경

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광경 ⓒ 김용한

이씨의 딱한 사정이 복지관에 알려진 것은 한 성당의 자원봉사자가 복지관에 이 같은 사정이 알려 온 것이다. 복지관도 이씨의 딱한 소식을 접하고 백방으로 도움을 줄 길을 찾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을 내세우지 못한 채 단지 그의 모친(김동녀. 64세)의 병원진료를 위해 차량지원, 재가장애인 복지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붕개량의 지원을 해주는 등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진료를 받고 있는 이씨의 모친은 치매병원으로부터 입원권유를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씨를 수발해 주었던 노모의 역할을 그 누가 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입원치료가 미뤄진 상태.

재가장애인복지담당자인 장은주 사회복지사는 "이정민씨가 전화를 해주어 찾아가 보았는데…. 노모는 치매에 들고, 정민씨는 중증장애인이라 대소변도 그 누군가가 도움을 줘야 하는데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하면서 "복지관 차량지원이 다소 늦어져 올 6월부터 복지관에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a 집에 가기 위해 차에 오르고 있는 광경

집에 가기 위해 차에 오르고 있는 광경 ⓒ 김용한

반나절 복지관에서 재활교육을 받은 이정민씨는 오후 4시경이 되어서 집으로 향했다. 복지관(점촌에 위치)으로부터 4∼50분 떨어진 곳에 위치(문경읍)한 이씨의 집, 그는 복지관에서 산 몇 조각의 꽈배기 빵을 자신의 엄마에게 건넨다.

이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걱정이 되었던지 역정부터 낸다. "엄마, 오늘은 어디 안나갔나?", "밥은 먹었나?"라며 세심하게 자신의 노모를 걱정하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측은한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이웃집 한 아주머니는 "참, 좋은 아주머니인데…. 정민이 엄마가 어떤 때는 가스불도 켜놓은 채 잊고 그래서 몇 번이고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불을 꺼주고 그랬다"고 설명을 해준다.

이씨의 모친은 기자를 보자마자 라면부터 싸들고 와서 "내 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요. 라면이라도 가져가요"라며 호의를 베푼다. 나중에는 '호두'를 한 주먹 움켜쥔 채 건네면서 "자, 먹어봐요"라며 치매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반겨주는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이씨의 모친은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다소나마 불편함을 잊고 사는 듯 했다.

그녀는 "늙으면 죽어 야죠, 똥오줌 다 받아내며 살았는데…"라며 자신이 치매에 걸린 줄조차도 잊고 사는 모양이었다.

이웃에 산다고 하는 한 아주머니는 "남편(광부)이 죽고 난지 10여 년이 된 후 줄곧 정민이의 수발을 혼자서 해왔다"고 말하면서 "보호를 받아야 할 정민이가 도리어 엄마를 걱정해야 하는 기구한 처지이다"고 설명을 해준다.

정민씨는 "엄마가 걱정스러워요, 밥도 제대로 해먹지 못하고…. 내가 복지관에 가면 다른 곳을 배회할까 염려되어요"라며 말문을 열자 그의 모친은 "내 걱정 말고 너 가고 싶은 데로 가라"며 금새 딸의 말이 섭섭했던지 토라진 모습이 역력했다.

a 마중나온 그의 모친(빨간색옷)이 딸을 반겨주고 있는 광경

마중나온 그의 모친(빨간색옷)이 딸을 반겨주고 있는 광경 ⓒ 김용한

이씨는 "저는 시설 같은 곳에는 전혀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중증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곳에 가서 함께 생활을 하고 싶은데…. 엄마가 마음에 걸리네요"라고 말한다.

또 "지금 조건에서 도우미만 붙여진다면 그나마 행복하게 살텐데, 마음대로 어디도 가지 못하고 복지관에 가도 마음이 편하질 않네요"라며 부모 걱정에 노심초사 한숨만 늘어가고 있다.

정민씨는 자신의 노모가 약마저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것 때문인지 집에 도착해서야 한아름 약봉지를 꺼내 노모의 약을 챙겨 준다.

무려 6개월 가량 이정민씨의 재가장애인복지 사업에 참여해 도움을 주었던 김병윤(사회복지사)씨도 "아주머니가 몸이 온전치 않아 보기에도 딱해요"라며 "정민이를 보호할 사람이 나타나면 좋으련만 어머니가 정민이를 챙겨야 하는데, 치매로 고생하니"라며 차마 말문을 잇지 못한다.

또 그동안에 힘겨운 생활이 생각났던지 기자에게 "국회의원들은 나빠요(금품문제) 우리도 힘들고 먼저 도움이 필요한데"라며 넋두리 겸의 푸념을 해본다.

정민씨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이냐?"고 되묻자 그는 거침없이 "엄마가 아픈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며 눈시울을 적시기까지 했다.

그나마 자신의 집에서 이웃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 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영세민인 두 모녀의 딱한 처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중증장애인들의 유료 생활보조인(일본은 국가에서 보조) 혹은 도우미 제도와 같은 인적지원은 한결 같은 바람일 것이다.

a 정민씨는 엄마 걱정으로 '가득', 엄마는 딸 걱정으로 '가득'

정민씨는 엄마 걱정으로 '가득', 엄마는 딸 걱정으로 '가득' ⓒ 김용한

또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농어촌 지역이나 우리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곳에는 얼마나 도움이 필요할까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우리의 장애 정책이나 복지정책, 수준은 선진국 수준에 얼마나 다다르고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진단해보고 대책을 세워나가는 자세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씨는 "제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자유롭게 운동도 해보고, 문화활동도 즐기면서 살아가고픈 마음이다"라고 자신의 바람을 전해보지만 끝내 자신의 요구가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는 막막함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치매 걸린 엄마는 오로지 자식 걱정으로 자신의 병마저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채 있는 형편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정민씨는 도리어 자신의 노모 걱정으로 또 다시 되풀이되는 하루를 맞이한다.

덧붙이는 글 | 도우미나 자원봉사자로서 도움을 주실 분들은 문경시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054) 556-0042/ 팩스 054)556-0043

덧붙이는 글 도우미나 자원봉사자로서 도움을 주실 분들은 문경시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054) 556-0042/ 팩스 054)556-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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