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임성이 좋은 '도깨비바늘'

내게로 다가온 꽃들(22)

등록 2004.02.14 21:30수정 2004.02.1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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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도깨비바늘은 국화과에 속하는 일년초 식물로서 산과 들에서 자랍니다. 8월경부터 작은 노랑꽃을 피우지만 그 꽃에 대한 기억보다는 산과 들판에서 뛰어 놀다보면 옷에 달라 붙어있던 바늘같이 생긴 씨앗이 더 기억에 남는 꽃입니다.

도깨비바늘엔 거꾸로 된 가시가 있어서 사람들 옷에만 잘 붙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털에도 잘 달라붙어서 이사를 다니며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바늘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은 씨앗의 모양이 바늘 같으니 붙인 것 같은데 '도깨비'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흔한 꽃말도 없고, 전설도 없는 귀화식물이지만 이 땅 어디에서든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볼 수 있고, 가을날 숲길을 거닐다보면 어느 사이에 달라붙어 있는 붙임성이 좋은 꽃입니다.

김민수

도깨비바늘의 다른 이름은 참귀사리, 바늘닥사리, 귀침초, 귀침재, 맹장초 등 다양하게 불립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만큼 민중들의 삶과 친숙하다는 이야긴데, 어찌 보면 옷에 달라붙어 귀찮기만 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깨비는 민속적으로 아주 친숙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설화나 옛날 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심술궂은 일도 많이 하지만 악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마음씨 착한 사람은 오히려 도깨비를 만나 횡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려운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친숙한 존재인 도깨비처럼 도깨비바늘도 귀찮은 존재인 동시에 어디에서든 싑게 볼 수 있으니 친숙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민수

어린 시절 이 정도의 열매가 되었을 때 열매들을 꺾어 손에 가득 쥐고는 편을 나누어 서로를 향해서 던지곤 했습니다. 옷에 더 많이 붙은 사람이 지는 것이죠. 때로는 여학생들을 골려준답시고 뒤에서 살짝 던지면 옷에 착 달라붙어서 개구쟁이들의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어디든지 척척 달라붙는 붙임성이 부럽습니다.


바늘처럼 따갑게 콕콕 찌르고, 그로 인해 미움을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누군가 곁에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척하고 달라붙을 수 있는 그 마음이 옹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움을 받을지언정 그래야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으니 어쩌면 처절한 생존을 위한 싸움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또 부러운 것은 남을 찌를 수 있는 가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큰 무기는 아니지만 따갑게 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럼으로써 옷이나 털에서 떼어내게 함으로 땅에 떨어져 흙을 만나는 것이니 그 찌름이 상처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가기 위한 방편인 것이죠. 간혹 두루뭉실한 나 자신에 대해 실망을 할 때에는 이처럼 가시를 품고 있는 꽃이나 식물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남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가시를 품고 있는 그들이.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을 때에도 바람을 타지 못하거나 동물이나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 모양 그대로 불꽃놀이를 하는 형상으로 퍼져서 기나긴 겨울을 보냅니다. 줄기와 뿌리는 이미 죽었고 그 비썩 마른 바늘처럼 생긴 씨앗에 생명이라고는 들어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안에도 생명이 있으니 봄이 되면 어김없이 싹이 돋는 것이겠지요.

씨앗.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지 작아서가 아니라 그 안에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민수

옷에 달라붙으면 따갑기 때문에 안데르센 동화집에 나오는 '미운 오리' 같은 '미운 잡풀' 정도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미운 오리가 백조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나는 것처럼 도깨비바늘도 그런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도깨비풀에 대한 세세한 자료를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에 대한 전설도 꽃말도 없고 그에 대한 시도 없으니 어줍잖은 솜씨라도 그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며 시 한편 지어 올려야겠습니다.

유난히도 춥던 80년대 초반의 겨울
미군부대의 철조망을 경계로 서있는 동네
강원도 원주시 태장 2동의 어느 골목길에 나는 서 있었다.
그 날은 유난히 추웠던 기억밖에는 없는데
이상하게도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가정집 한달 삼천원이면
연탄재에 쓰레기까지 모두 치워주는 그런 일로
대학시절의 첫 번째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었지.
경운기에 연탄재며 쓰레기 가득 쌓이면
태장동 외곽에 있는 쓰레기매립장으로 향했고
그 곳엔 늘 네가 있었다.
동상이 걸려 감각도 없는 발은
겨울비에 젖어 탱탱 불었는데도 이상하게도
네가 두꺼운 양말을 뚫고 들어가 찌르면 아팠다.
아프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
그래서 나는 네게 고마웠다.
너도 나를 찌른 것이 살아있다는 항변이었을지도 모르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왜 눈길 한번 주지 않고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피운 불에 왜 자기를 집어넣느냐고
그렇게 항변하는 몸짓이었을 것이다.
그런 너를 잊고 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미안한 마음으로 너를 바라보는구나.
도/깨/비/바/늘/

<도깨비바늘에 대한 추억-김민수 詩>

덧붙이는 글 |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기사까지의 기금] 420,000원

덧붙이는 글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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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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