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어린 시절 이 정도의 열매가 되었을 때 열매들을 꺾어 손에 가득 쥐고는 편을 나누어 서로를 향해서 던지곤 했습니다. 옷에 더 많이 붙은 사람이 지는 것이죠. 때로는 여학생들을 골려준답시고 뒤에서 살짝 던지면 옷에 착 달라붙어서 개구쟁이들의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어디든지 척척 달라붙는 붙임성이 부럽습니다.
바늘처럼 따갑게 콕콕 찌르고, 그로 인해 미움을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누군가 곁에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척하고 달라붙을 수 있는 그 마음이 옹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움을 받을지언정 그래야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으니 어쩌면 처절한 생존을 위한 싸움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또 부러운 것은 남을 찌를 수 있는 가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큰 무기는 아니지만 따갑게 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럼으로써 옷이나 털에서 떼어내게 함으로 땅에 떨어져 흙을 만나는 것이니 그 찌름이 상처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가기 위한 방편인 것이죠. 간혹 두루뭉실한 나 자신에 대해 실망을 할 때에는 이처럼 가시를 품고 있는 꽃이나 식물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남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가시를 품고 있는 그들이.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을 때에도 바람을 타지 못하거나 동물이나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 모양 그대로 불꽃놀이를 하는 형상으로 퍼져서 기나긴 겨울을 보냅니다. 줄기와 뿌리는 이미 죽었고 그 비썩 마른 바늘처럼 생긴 씨앗에 생명이라고는 들어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안에도 생명이 있으니 봄이 되면 어김없이 싹이 돋는 것이겠지요.
씨앗.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지 작아서가 아니라 그 안에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