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달 보듯 국태민안 염원하다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40) 도봉산 망월사

등록 2004.02.24 09:01수정 2004.02.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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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가 되는 어머니에게 있어 조금씩 길어지는 요즘 하루는 뉘엿뉘엿한 저녁시간에 하늘을 곱게 물들이는 노을 빛 여정과 같이 삶의 아쉬움이 서린 그런 시간일 듯하다. 살아온 날 보다는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음을 알기에 앞일을 설계하기보다는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고 각색해 보는데도 모자랄 듯하니 어머니가 느끼는 시간의 깊이를 짐작할 수는 없다.

a 돌산답게 주변이 온통 돌로 되어있다. 돌로 만들어진 가지런한 계단이 깔끔해 보인다.

돌산답게 주변이 온통 돌로 되어있다. 돌로 만들어진 가지런한 계단이 깔끔해 보인다. ⓒ 임윤수


초침이 시계 한 바퀴를 도는 똑같은 시간에서 느끼는 세월의 무게가 천양지차니 계절이 바뀔 때 느끼는 삶의 체감속도야 감히 비유조차 어려울 게 뻔하다. 살아온 만큼 사물에서 느끼는 심오함도 다를 거며 오고있는 봄에 대한 느낌도, 살아 갈 내일에 대한 각오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애절한 기다림보다는 그렇게 기다렸던 지난날이 더 그리워지는 그런 여생의 시간을 살고 계실지도 모를 어머니 마음에도 하나의 망불상(望佛象)이 간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시집을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고 한다. 60여 년이 넘게 절에 다녔음에도 그 흔한 법명(法名) 하나 없다. 어느 절이고 의식 때마다 빠트림 없이 누구나 독경하는 '반야심경'조차 온전하게 외우지 못할지도 모르는 불자가 어머니다.

a 망월사 큰법당인 낙가보전이 도봉산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망월사 큰법당인 낙가보전이 도봉산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 임윤수


많이 배워 선지식인이란 이름으로 강동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친일에 앞장서던 그런 여성들과는 달리 가난한 시골의 볼품없는 계집애로 자랐을 어머니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자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기껏 어깨너머 눈썰미로 익힌 실력이기에 정자로 또박또박 쓰여진 한글을 더듬더듬 읽을 정도니 문맹에 가깝다.

그들이 책을 펼치고 학교 책상에 앉아있을 때 어머니는 보릿고개를 맞아 허기를 면키 위해 안간힘을 쓰는 외할머니를 도와 산과 들로 초근목피(草根木被)를 얻기 위해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어머니기에 태반이 한문으로 되어있던 경전을 읽을 수 있었을 리 만무하다.

총기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요즘처럼 듣고 외울 수 있는 오디오시스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늙어가며 총기마저 어둑해지니 어머니에게 있어 염불은 부처님을 모시는 스님들이나 독경하는 심오한 천상의 말씀 정도로 생각하셨다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더더구나 고향에 있는 절에선 법문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고향에 있는 절은 법주사 말사로 할머니 동년배쯤 되었다는 두 할머니 스님이 탁발로 일구어 놓은 아주 작은 암자다. 어렸을 때 보았던 두 할머니, 태조와 팔영이라 부르던 두 스님은 빡빡 깎은 머리에 덕지덕지 기운 옷을 입고 매일 같이 바랑을 둘러메고 탁발을 하러 다니는 모습이셨다.

그렇게 탁발해 온 쌀이나 동전을 모아 초가 같던 지붕에 기와를 올리고 텃밭을 마련하며 수십 년을 조금씩 불사한 절이 고향에 있는 작은 암자다. 뚜렷한 창건사도 없고 그럴싸한 전설이나 설화도 없지만 부처님에 대한 두 할머니스님들의 땀이 일구어 낸 불심의 결정체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어머니의 정성과 기도가 구석구석 물씬하도록 배인 곳임에도 분명하다.


a 전각조차 마음을 비운 듯 허허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전각조차 마음을 비운 듯 허허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 임윤수


어머니가 60여년째 다니고 있는 고향 절은 석가모니불을 모셔놓은 아주 작은 규모의 대웅전과 한 평 정도의 크기가 전부인 산신각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겨우 밥이나 끓여 먹고 몸 하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랑채 같은 요사채가 절의 전부다.

길다란 염불도 줄줄이 외지 못하고 경전도 유창하게 읽지 못했지만 절에 갈 때는 며칠 전부터 매사를 조심했다. 혹시라도 부정이 탈까 그랬는지 며칠씩 근신하듯 말조차 삼가며 생활했지만 진작 절에 가는 날엔 마지(부처님께 올리는 밥) 올리고 연거푸 절을 하는 것으로 기도를 끝낸 듯하다.

절에 다니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기라도 하면 제일 먼저 부처님께 올릴 공양미를 따로 떠놓는다. 이어 제사지낼 쌀을 떠놓고 나서야 나머지 쌀들을 쌀통에 채운다.

a 바람에 날리는 눈발 때문에 주변이 온통 뿌연 하다.

바람에 날리는 눈발 때문에 주변이 온통 뿌연 하다. ⓒ 임윤수


어머니에게 있어 부처님은 그저 믿음의 대상이지 교리를 따지고 가르침을 논할 그런 대상이 아니다. 구성진 목청에 적당한 리듬을 실어 천수경과 금강경을 막힘 없이 독경하고, 조리 있게 교리를 설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저 절이나 열심히 하는 어머니는 초라하고 무지한 한 불자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쌈짓돈이나 작은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리니 뭉칫돈을 부담 없이 덥석 내놓는 화주들에게 있어 어머니는 도리어 보시의 대상이며 느릿한 동작으로 눈살의 대상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도 그들 못지 않은 불자라 생각한다. 비록 그들이 말하는 산스크리트(梵語)를 모르고 한문을 읽지 못해 경전을 읽지 못하지만 그들보다 불심이 얕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들이 알고있음으로 조금은 비유하고 의심하는 것만큼을 상쇄해 주고도 남을 의심 없는 믿음이란 게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빳빳한 새 돈에는 없을, 꼬깃꼬깃한 헌 돈을 인두로 다리는 정성이 담긴 돈을 어머니는 시주금으로 놓는다. 그들이 내놓는 커다란 공양물의 화려함 대신 어머니가 가져다 놓는 공양물엔 고르고 가다듬은 어머니의 부처님에 대한 경배심이 담겨있다.

a 아침저녁으로 망월사 계곡에 구제의 종소리로 울려 퍼질 범종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망월사 계곡에 구제의 종소리로 울려 퍼질 범종이 있다. ⓒ 임윤수


어머니의 믿음은 그런 조건 없는 믿음이다. 소원하던 좋은 일이 이루어지면 '다 부처님 덕'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당신의 정성이 모자란 탓'이라 생각한다. 북방불교가 어떻고 남방불교가 어떠니 하는 논리적 접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지만 신앙의 제일 조건이며 으뜸이라 할 믿음엔 손색없다고 믿어진다.

어머니가 부처님을 찾아다니며 애원하듯 기도하는 소망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자식들 건강하고 우애 있게 잘 살아달라는 정도다. 결혼을 앞둔 자식이 있으면 잔치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도고 먼길 떠날 때는 탈없이 잘 다녀오라는 바람의 기도다. 그러다 차를 몰고 다니 게 되니 사고 없이 운전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덧붙여질 정도다.

이런 것은 비록 필자의 어머니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생각된다. 무지렁이 할머니로 취급받거나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많은 어머니들의 어머니들 신앙이란 게 대부분 그랬을 거다. 그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은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결국 그 많은 한을 보듬는 한 방편이 간절한 기도와 믿음이 되었을지 모른다.

a 흰눈과 전각 그리고 바위와 청솔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고 있다.

흰눈과 전각 그리고 바위와 청솔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고 있다. ⓒ 임윤수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간교한 삶을 살 순 없기에 우직하리만큼 묵직한 믿음이 삶의 방식이며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들의 그런 믿음과 기도는 뭔가를 기다리던 한이 되고 슬픈 전설이 된 것을 많이 보게되니 망부석이 그렇고 망탑이 그렇다.

그런 바람, 뭔가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함과 애틋함이 한 개인의 차원을 넘은 국가적 염원이 송두리째 담겨진 절이 있으니 바로 도봉산 망월사(望月寺)다.

이런 봄날 망월사를 찾으려면 승용차보다는 기차를 이용하는 게 좋을 듯하다. 기차를 타고 기차에 얽힌 추억들을 더듬다 보면 산사 찾는 맛에 기차 타는 맛이 덤으로 주어질 게 분명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기차는 아주 특별한 교통수단이다. 웬만하면 자가용 한 대쯤은 소유하고 있는 요즘엔 좀 어색한 이야기지만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여행과 기차는 바늘과 실같은 그런 관계였다.

a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모셔진 문수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문을 지나야 한다.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모셔진 문수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문을 지나야 한다. ⓒ 임윤수


얼마 있지 않아 통일호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으니 지금은 볼 수 없는 비둘기호가 생각난다. 시속 300km를 상회하는 고속전철이 등장하는 시대에 좀 동떨어진 이야긴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지금처럼 통일호니 새마을호니 하기보다는 완행열차나 급행열차로 불렸다.

비둘기호는 대표적인 완행열차다. 가끔 뿌∼뿌∼거리며 기적소리를 내고 선로를 덜커덩거리며 달릴 땐 기관차도 숨을 고르는지 칙칙폭폭 거리며 연기를 뿜어내곤 했다. 아주 작은 역, 타고 내리는 사람이 서너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간이역조차 거르는 법 없이 빠짐없이 멈췄다 가는 그런 기차였다.

지금도 가끔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비둘기호는 의자조차 오늘날 기차들과는 다르다. 지금처럼 두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도록 가지런하게 된 게 아니고 객차의 유리창을 따라 길다란 벤치처럼 놓여져 있다. 가운데는 동네 골목만큼이나 넓은 통로가 있고 그 통로엔 예외 없이 손잡이를 잡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비둘기호가 사라지고 조금 더 고급스러워진 통일호가 그 역할의 일부를 대신하더니 이젠 통근용으로만 활용된다고 하니 통일호마저 사라지는 것과 진배없다.

a 출입문을 지나 가파르고 어두컴컴한 토굴길을 지나면 문수전으로 들어서게 된다.

출입문을 지나 가파르고 어두컴컴한 토굴길을 지나면 문수전으로 들어서게 된다. ⓒ 임윤수


서울역에서 의정부로 가는 국철을 타면 망월사역을 지나게 된다. 망월사역은 도봉산을 오르는 많은 등산로 중 하나다. 망월사역에서 40∼50분 산길을 오르면 그곳에 망월사가 있다.

먼발치에서라도 바라 본 사람은 알겠지만 도봉산은 암산(巖山)이다. 기암들이 승무를 추듯 너울너울 하늘로 솟았고 갖가지 나무들이 계절 따라 시간 따라 채색을 연출한다. 골짜기마다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계곡들은 하심과 자연의 이치를 보여주고 알려주는 또 다른 자연의 서당이자 도장이다.

망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 말사다. 절 이름이 망월사로 된 것은 풍수적 유래와 창건 동기와 관련된 유래가 있다. 망월사 대웅전인 낙가보전 동쪽에는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으로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다. 그러니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의 형세이기에 망월사라 이름지었다는 유래다.

망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8년(639년)에 해호스님이 여왕의 명을 받아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하였다. 창건을 하면서 당시 서라벌 월성(月城)을 향해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절이라는 뜻에서 망월사라 이름하였다는 유래도 있다.

a 문수전은 벼랑 위에 이렇게 서 있었다.

문수전은 벼랑 위에 이렇게 서 있었다. ⓒ 임윤수


창건 이후 망월사는 중창되고 전란에 의한 황폐화된다. 그러다 다시 중건되고 신축과 중수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망월사엘 가면 웬만한 절에선 다 볼 수 있던 대웅전이란 편액을 단 전각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2층 구조로 된 전각에 <洛迦寶殿(낙가보전)>이라 쓰여진 편액이 붙어있다. 낙가보전이 망월사의 큰법당이니 대웅전인 셈이다. 낙가보전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보살(bodhisattva)은 세간과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성자(聖者)이므로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러므로 세상 어느 곳에서고 위험에 처하거나 어려울 때,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힘들고 슬플 때 '관세음보살'을 반복해 부르면 언제고 구제의 손길을 내려준다는 경배의 대상이다. 어릴 때 어머니와 같은 그런 존재로 구원의 손길과 보살핌의 눈길을 멈추지 않는,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베풀고, 크게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익 되게 하는 보살을 모셔놓은 것이다.

a 멀리 의정부시내 일원이 한눈에 보인다.

멀리 의정부시내 일원이 한눈에 보인다. ⓒ 임윤수


이 외에도 망월사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모셔놓은 문수전이 있고 영산전과 칠성각, 선원,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도지정문화인 망월사혜거국사부도, 천봉 태흘의 부도, 망월사천봉선사탑비가 있다.

망월사를 찾았을 때는 온통 흰 눈 뿐이더니 어느새 찬바람 속에서도 봄기운이 느껴진다. 어머니가 그러하듯 언제고 비워진 마음에 믿음만을 가득 채워 산사 찾는 맛을 담을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망월사 찾아가는 길
서울역 - 의정부행 국철 - 망월사역 하차 - 산행보도
전화 031-873-7744

덧붙이는 글 망월사 찾아가는 길
서울역 - 의정부행 국철 - 망월사역 하차 - 산행보도
전화 031-873-7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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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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