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마귀 엄마야!"

<오클랜드 하늘에 뜨는 무지개10> 딸아이가 키운 애완동물, 사마귀

등록 2004.02.26 13:25수정 2004.02.2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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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는 어린이가 제일 상전이고 그 다음이 장애인, 노인, 여성, 애완견의 순서이고 남자는 가장 하층민이다.”


약 3년 전쯤, 뉴질랜드에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들었던 우스갯소리입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더라도, 남자의 지위가 애완견보다도 낮다고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뉴질랜드인들은 그만큼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한 가족처럼 여긴다는 말이지요.

이곳에서 살면서 살펴보니 정말 개든, 고양이든 애완동물 한 두 마리씩 키우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애완동물 기르기는 아주 흔한 일이더군요. 뉴질랜드의 집들은 대부분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어서 애완동물 키우기에는 그만이지요. 여기에, 늙어서도 자식들과 함께 살기보다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주의적인 삶의 방식도 말없이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개나 고양이를 많이 키우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a 사마귀는 뉴질랜드에서 우리집 딸아이가 키운 애완동물입니다.

사마귀는 뉴질랜드에서 우리집 딸아이가 키운 애완동물입니다. ⓒ 정철용

요즈음 한국에서도 갖가지 애완동물 기르기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애완동물을 기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살 때 아파트 생활을 했던 우리 가족도 처형이 준 자라를 키웠던 것이 고작이었으니까요. 그것도 ‘자라 실종 사건’을 겪고 난 이후로는 그만두었지요.

어느 날 자라가 보이지가 않아서 온 집안을 다 뒤집으며 찾아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런데 ‘글쎄, 며칠 후에 장롱 밑에서 자라가 기어 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걸 보고, ‘아 이러다가 자라 잡겠다’ 싶어서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작은 연못에다 놓아주었지요. 그 자라가 뉴질랜드로 이민 오기 전까지 우리 가족이 기른 애완동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그렇게 살아왔으니,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이제 애완동물을 키워도 될 만한 정원이 딸린 집에 살게 되었다고 해서, 애완동물을 멀리하는 우리의 마음이 크게 변할 리가 없지요. 그러나 딸아이 동윤이는 가끔씩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올 때마다 우리를 졸라대곤 했습니다.


“엄마, 아빠, 우리도 애완동물 키우자. 나 개 키우고 싶어.”

그러나 개나 고양이를 한번도 키워 본 적이 없는 아내와 나는 딸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a 나비는 우리집 꽃나무들이 키우는 애완동물입니다.

나비는 우리집 꽃나무들이 키우는 애완동물입니다. ⓒ 정철용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피아노 선생님 집에 레슨을 받으러 다니면서부터 그 소리가 쏙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개나 고양이처럼 덩치 큰 동물은 아니지만 아주 이색적인 애완동물을 그 집에서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그게 뭐냐고요? 그건 바로 사마귀였습니다. 그 피아노 선생님의 아들인 대윤이는 자기 방에서 사마귀를 키우고 있었던 겁니다.

동윤이는 자기보다 한 살 어린 대윤이에게서 어린 사마귀 한 마리를 분양받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빈 고추장 플라스틱 통에 풀들과 작은 나뭇가지 등을 넣고, 투명한 뚜껑에는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사마귀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동윤이는 사마귀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정원의 보도블록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잡아 먹이로 넣어주고 손끝에 물방울을 묻혀 사마귀의 갈증도 풀어주는 등 갖은 정성으로 사마귀를 돌보았습니다. 정성스럽게 사마귀를 돌보는 것이 처음에는 기특하더니 나중에는 사마귀에만 너무 정신을 팔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더군요. 아내가 참지 못하고 마침내 한 마디 했습니다.

“동윤아, 너 사마귀 돌보는데 너무 시간 보내는 거 아니니? 학교 갔다 왔으면 숙제부터 해 놓고, 또 피아노 연습도 해야 되는데, 언제까지 사마귀만 쳐다보고 있을 거니? 응?”

“엄마, 난 사마귀 엄마야. 지금 이 사마귀는 너무 어려서 내가 잘 돌봐줘야 돼.”

그 말에 아내와 나는 그냥 웃고 맙니다. 애완동물 기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래 사마귀라도 실컷 길러보려무나. 우리는 ‘사마귀 엄마’가 빨리 어린 사마귀를 잘 길러내서 그 바쁜 육아의 일손(?)에서 풀려나기만을 기다렸지요.

a 풀밭에서 만난 사마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눈을 맞췄습니다

풀밭에서 만난 사마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눈을 맞췄습니다 ⓒ 정철용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사마귀 엄마’ 동윤이에게서 잘 보살핌을 받아 쑥쑥 커나가던 이 어린 사마귀가 탈피를 하게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탈피가 끝나고 나서는 허리가 꼬부라진 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윤이는 걱정이 되어 ‘사마귀 전문가’인 대윤이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더니, 그는 탈피하고 나서는 힘이 들어서 한동안 꼼짝도 않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더군요. 그런데 하루가 지났는데도, 사마귀는 그 자세 그대로였습니다. 걱정이 되어 우리집에 온 대윤이는 그걸 보더니 탈피할 때 뭔가 잘못되어서 죽었다고 하면서, 자기가 한 마리 더 갖다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동윤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죽은 사마귀를 채마밭에 묻어주고는 사마귀의 보금자리도 말끔하게 치웠습니다. 분명 뭔가 깨달은 모양입니다. 대신 요즘은 내가 잔디를 깎고 있으면 정원에 나와서 풀밭 사이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앗, 사마귀다. 아빠, 여기 사마귀가 있어요!”

그래요. 사마귀는 우리집 정원 풀밭에서 이미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굳이 집안에서 그 답답한 통 안에 가둬놓고 기를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동윤이도 아마 그것을 알아채고는 더 이상 사마귀를 통 안에 가둬놓고 애완동물로 기르는 것을 그만 둔 모양입니다.

a 한여름 뙤약볕 아래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매미 역시 우리집의 애완동물입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매미 역시 우리집의 애완동물입니다. ⓒ 정철용

그러고 보니 우리집에는 애완동물 천지입니다. 나비도 보이고 매미도 보입니다. 우리가 직접 키우지는 않지만 우리집 정원의 나무들과 풀잎들과 꽃들이 이 애완동물들을 키워줍니다. 우리집 정원에 내리쬐는 환한 햇빛이 이 애완동물을 키워줍니다.

애완동물은 이처럼 자연 속에서 자연의 힘으로 커나갈 때 더 건강하게 그리고 더 오랫동안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풀밭에서 만나 손바닥에 올려놓고 눈을 맞추어보는 사마귀와, 한여름 뙤약볕 아래 암컷을 부르기 위하여 나무 둥지에 붙어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매미. 우리집 애완동물들은 작지만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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