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92

화벽의 주인 (10)

등록 2004.02.27 14:02수정 2004.02.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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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얘기하자면 길어. 어쨌거나 그걸로 영단을 만들다보니 세 알을 만들게 됐어. 그래서 그걸 바치러 갔는데 거기에 무언공자도 있었어. 그래서 그 녀석에게도 한 알이 간 거지. 그나저나 이 종이는 어디서 난 거야?!”

“몰라, 어젯밤 누군가가 나한테 던진 거야. 그런데 그 종이에서 나는 냄새를 언젠가 맡아본 적이 있어서….”
“그래? 다른 냄새하고 헛갈린 모양이군.”


“아냐, 분명 어디선가 맡아봤던 냄새였어.”
“그럴 리가 없어. 환세음양단은 냄새가 아주 독특해. 그리고 이 세상에 딱 세 알밖에 없어. 그런데 색이나 밝히는 짐승 같은 구신혁이 하고 그 애비는 내가 보는 앞에서 그걸 복용했고….”

“그건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먹는 거라며?”
“그래, 심한 부상을 입어 경각지경에 달했을 때 그걸 복용하면 내상이 치유됨과 동시에 대략 반 갑자 정도 되는 내공을 얻을 수 있지. 하지만 멀쩡할 때 먹어도 돼! 그러면 정력이 무진장 세지거든. 그건 절륜음양단의 처방이 섞여 있기 때문이야.”

“흐음! 그래? 그렇다면 남은 건 무언공자가 가진 것뿐이겠군.”
“맞아. 하지만 그가 가진 걸 형이 냄새 맡아봤을 리 없잖아.”

“그건 그래. 그 사람은 선무곡에 가기 전에 본 게 마지막이었거든. 그럼 어디서 그 냄새를 맡아봤지? 분명히 맡아봤는데….”

“아마 형의 착각일 거야. 이제 환세음양단은 이 세상에 단 한 알만 남았을 테니까. 그것도 무언공자가 복용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지. 만일 그가 먹어버렸으면 이젠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어. 처방을 알아도 재료가 없어서 못 만드니까.”


“아냐. 분명 맡아봤어.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영약이란 걸 먹어보기는커녕 구경도 못해봤어. 따라서 다른 냄새와 헛갈릴 일이 없지. 흐음! 그럼 어디에서 그 냄새를 맡은 거지…?”

“흐음! 무언공자가 왜 내게 그걸 줬을까? 왜지? 으음…!”


자신의 처소로 돌아 온 이회옥은 서탁에 팔을 괸 채 골똘한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런 그의 뇌리로 스치는 영상은 화벽이 마음에 든다면서 환한 웃음을 짓던 무언공자의 모습이었다.

이회옥이 이렇듯 고심하고 있는 이유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는 상념이 있기 때문이었다.

장일정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이 세상에 더 이상의 환세음양단은 존재할 수 없다. 단 한 알 남아 있던 것을 자신이 복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회옥은 선무분타에서 무고한 소녀 둘을 마차로 깔아뭉개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던 배루난을 죽인 바 있다.

그때 불의의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한동안 열세에 몰렸고, 덕분에 전신 곳곳에 심한 상처를 입었었다.

천신만고 끝에 짐승만도 못한 그를 죽였지만 심한 실혈로 비틀거리다가 정신을 잃었고, 깨어난 곳은 의성장이었다.

외상은 다 나았지만 소화타를 만나 이마에 새겨진 삼천이십칠이라는 글자를 지우려던 그는 형당으로 압송되어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

그때 살행의 배후에 그가 있다는 무면호리가 있다는 것을 밝히라는 자백을 받아내려 얼마나 모진 고문을 가했던가!

이를 악물고 참으려 하였지만 뼈가 부러져나가는 듯한 고통은 너무도 극심하였다. 모진 고문이 끝난 뒤 규환동에 하옥되었던 그는 또 다른 고통 때문에 혼절하고야 말았다.

옥졸이 상처 부위에 바른 마늘 범벅 때문이었다. 그것은 당시 형당 당주로 새로 부임한 빙화와 부당주간의 알력으로 인한 엉뚱한 고통이었다.

어쨌거나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두 다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입에서는 은은한 약향(藥香)이 감돌고 있었다.

죄를 지은 죄수의 상처를 돌봐주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죄수에게 냄새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질 그런 영약은 먹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웬 약을 먹였는가 싶어 의아했었다.

그러다가 몸을 추스르려 운기조식을 시작하였을 때 또 한번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반 갑자 가량의 내공이 체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철마당주가 된 후 무천의방을 찾았던 이회옥은 다시 한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자신을 치료했던 의원이 자신은 금창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준 것밖에 한 것이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안에 감돌던 약향과 반 갑자 내공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 오리무중인 상태였기에 내심 답답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제 정체 모를 그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입안에 감돌던 약향과 동유지에서 나는 냄새가 같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환세음양단은 분명 희대의 영약이다. 장일정은 자신이 만든 것이지만 소림사의 자랑이라는 대환단보다도 그 효능이 뛰어나면 뛰어났지 조금의 모자람도 없을 것이라 하였다.

환세신선단과 절륜음양단의 비방은 전설의 신의인 편작이 남긴 것이다. 거기에 나름대로의 심득을 더했기에 원래의 것보다도 약효가 뛰어날 것이라면서 자랑이 대단했었다.

어투나 표정으로 미루어 거짓이거나 과장은 아닌 듯 싶었다.

그런 희대의 영약을 무언공자 본인이 복용하지 않고 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자신에게 주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여 이회옥은 머리에 쥐가 오르는 듯하였지만 어쩌겠는가?

무언공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환세음양단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철룡화존과 철기린, 그리고 무언공자와 소화타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언급하면 즉각 장일정과의 관계가 드러날 수도 있기에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다.

“으음! 그가 대체 무슨 이유로 그걸 복용시켰을까? 그때 나는 언제 참수형에 처해질지 모를 일개 죄수였는데… 으음!”

이회옥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합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그리고 무언공자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부처가 아니다.

그런 그가 환세음양단과 같이 귀한 물건을 베풀었다면 분명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할 것이 뻔하다. 물론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된다면 별 문제 없다.

그런데 환세음양단을 자신에게 복용시켰을 때 정말 별 볼일 없는 존재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언제 참수형에 처해질지 모를 죄수에게 너무도 귀한 것을 복용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아무런 요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오래 전부터 어떤 인연 같은 것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딱 한번 철기린이 비룡을 타고 담을 뛰어 넘을 때 그때 본 것이 전부였다. 따라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 이유가 전혀 없기에 이회옥의 머리가 엄청 복잡해진 것이다.

“으음! 대체 무슨 이유지? 으아아! 머리 깨지겠다. 으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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