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퍽한 삶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필름'

[서평] <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등록 2004.03.24 18:42수정 2004.03.2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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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닭털 같은 나날
<1>
중국은 유사이래 정치가 사람보다 높다. 정치는 누가 만드는가? 정치는 왜 만드는가? '1942년을 돌아보다' 280쪽.

살아가는 일이 팍팍하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랴? "태어나지 마라, 죽는 게 괴롭다. 죽지 마라, 태어나는 게 괴롭다"라는 신라 시대 승려의 이야기처럼, 살아가는 일이란 그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살아가는 일이 왜 고통스러운가? 작가 류진운이 그 대답으로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위에 인용된 문장이다.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들이, 사람보다 높이 있기 때문에, 삶은 고통스럽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승려와 구분된다. 신라 시대의 승려들이 인간의 근원적인 측면에서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작가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잘못된 삶을 만들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것이 류진운의 작품들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세 편의 작품은 모두 팍팍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다루고 있다. 소시민들의 일상에 내포된 슬픔을 다루고 있는 '닭털 같은 나날', 철저하게 관료주의에 빠진 인물들 사이의 암투를 다루는 '관리들 만세', 과거 속에 묻힌 재난의 발생 이유를 찾아가는 '1942년을 돌아보다' 모두 그러하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작품의 화자는 그 고통의 원인을 모두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 보다 범위를 좁혀서 정치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논리야말로 철저한 유물론적 시각이 아닐 수 없다. 고통의 근원을 내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면에서 찾는 것. 물질을 초월하는 정신이 아니라, 정신을 지배하는 물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 그러므로 작가는 같은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변주해낼 수 있는 것이다. 정신적인 문제야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설명이 끝나버리지만, 물질적인 문제는 관점에 따라서 사항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롭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므로.

"백성들이 죽어도, 땅은 역시 중국인 것이다. 만약 군인이 굶어 죽으면, 이 나라는 일본군에게 접수되어 관리될 것이다."


이 말이 바로 장개석 위원장의 속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문제를 굶어 죽어 가는 기아 난민들에게 그대로 묻는다면, 이 문제는 ‘차라리 굶어 죽어 중국 귀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굶어 죽지 않고 매국노가 될 것인가?'라고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1942년을 돌아보다', 292쪽.

그와 같은 논리가 조금 더 확대되어 노골적으로 표현된 작품이 바로 '1942년을 돌아보다'이고, 인용된 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이르면 작가의 비판 대상은 조금 더 명확해진다. 민중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지배계급의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비판 대상을 분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현실과 역사의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 작품 속에 신문기사가 끊임없이 인용되는 것도 이러한 때문이다. 이제는 잊혀져 버린 기억, 그러나 분명히 잘못된 역사에 대한 집착과 고집이 그의 작품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유물론적 인식체계를 무기로 삼고 있는 작가의 비판대상은 유물론을 근본 개념으로 하는 국가시스템에까지 이른 것이다.

<2>

그러나 이러한 비판의식만 가지고는 작품의 가치가 분명해지지 않는다. 이런 비판의식을 보인 작가가 어디 류전운 혼자뿐이던가? 잘못된 정치시스템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수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끈질기게 다루어 오지 않았던가?

문제는 비판을 통해서 명확해진 문제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에 있다. 이는 '닭털 같은 나날'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보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문체를 통해서 잘 나타나고 있다.

작품의 시작은 "임(林)의 집에 두부 한 근이 상했다"라는 짧고 간결하면서도 감정이 전혀 실려 있지 않은 문장으로 되어있으며, 그러한 문체는 작품 전반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문체를 영화에 비유하자면 다큐멘터리 필름과도 같은 것이다.

서술자의 개입과 편들기 그리고 감정의 이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극영화가 아니라, 냉정하게 사물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그렇기 때문에 건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런 문체로 인해서, 오히려 삶의 고통이 강조되고 있다.

작품의 서술자가 처음 이야기하는 사물이 '두부'라는 사실도 주목된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부분인 음식 중에서도 서민들이 주로 먹는 음식이다. 그러나 두부는 먹기는 먹지만 먹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음식이고, 먹으면서도 스스로 가난뱅이라고 의식해야 하는 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두부를 사기 위해 기다리면서 중얼거린다.

"젠장, 세상에 가난뱅이도 더럽게 많네." '1942년을 돌아보다', 11쪽.

우리는 왜 음식을 먹으면서 스스로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가?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은 바로 이것으로 압축된다. 그만큼 작가가 파고들고 있는 문제는 일상적이면서도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다큐멘터리적 문체가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작품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주인공이 지난번에 방문했던 은사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아래의 인용과 같은 생각을 한다.

그는 그 편지를 읽고, 하루 종일 괴로웠다. 선생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지난번에 선생님이 진찰하러 오셨을 때도, 병원에 찾아가지도 못했다. 집에서 세수도 못 시켜 드렸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그가 얼음 웅덩이에 빠졌을 때, 선생님은 입고 있던 면 코트를 벗어 자기에게 입혀 주셨다.

그러나 퇴근 버스를 타고서, 집에 쌓아 둔 배추 더미를 널어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하루 종일 그를 상심하게 만들었던 선생님의 일은 기억 저편으로 던져지고 말았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생각해 봐야 소용이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은 역시 배추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는 또 생각했다. 배추를 다 정리하면, 아내가 전자렌지로 닭을 구워줄 것이고, 맥주를 내 줄 것이다. 그러면 그로서는 전혀 불만스럽지 않은 것이다.
'닭털 같은 나날', 96쪽.

이 부분에서는 분명한 서술자의 개입이 이루어진다. 선생의 죽음과 주인공의 일상을 동시에 배치하여 독자들의 반감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식 역시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이다. 극영화처럼 직접적인 감정의 토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사실을 교차해서 보여줄 뿐이다. 이것이 류진운의 작품이 가장 큰 힘이다.

그의 작품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더 큰 감정의 깊이를 만들어내고, 손쉬운 동정이나 비판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더 큰 측은함과 각성을 유도한다. 이런 서술방법이야 말로 고도로 세련된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

두 번째 작품인 '관리들 만세'의 문체는 조금 다른 색깔을 보이고 있다. 앞서의 '닭털 같은 나날'의 문체가 건조하다면, 이 작품의 문체는 조금 더 축축하다. 앞서의 작품이 현미경처럼 세밀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 작품의 시야는 보다 넓고 유연하다. 그러나 직접적인 감정의 토로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에서는 상통한다. 역시 같은 다큐멘터리 계열인 것이다.

작품의 다큐멘터리적 특징이 잘 나타나는 부분은 단연 인물의 심리를 표현할 때이다. 앞에서 인용된 '닭털 같은 나날'의 마지막 부분이 그러했듯, 이 작품에서도 한 인물의 감정이 표현되기는 하지만, 직접 제시되지 않는다.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상태를 토로하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민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심리도 사색적이기 보다 활동적인 것이 되고, 그들의 심리가 활동하면 할수록, 그들의 성격은 더욱더 극명하게 제시된다. (똥통 위로 기어오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더 빠져버리는 구더기처럼.) 이 역시 사실만을 제시하여 독자들의 평가를 유도하는 다큐멘터리 기법인 것이다.

이 작품의 시작이 "2층 화장실 변기가 고장 났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는 것도 역시 주목된다. 앞서의 작품이 음식(두부)에서 시작되었다면, 이 작품은 배설로 시작되는 것이다. 음식과 배설, 다르지만 사람들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것들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앞서의 작품에서 '두부'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소재였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의 '변기' 역시 같은 기능을 한다. '관료시스템은 결국 똥통이다!' 서술자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3>

내 관심은 다시 우리 문단으로 돌려진다. (어쩔 수 없다. 외국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그 자체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기 위해서이니까.) 류진운과 같이 세련된 리얼리즘 기법을 구사하는 작가가 우리에게는 없는가?

글쎄…. 황석영의 초기 작품 정도가 그러하지 않을까? <삼포 가는 길>이나, <객지> 같은 작품들. 그래 그 정도라면 이것과 견줄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은 70년대 작품이 아닌가? 류진운의 작품들과는 근 20년 가까운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설에서 리얼리즘 기법은 1970년대 이후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이후 우리의 소설은 리얼리즘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하지만 지금쯤 다시 한번 리얼리즘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리얼리즘만이 최고의 가치를 가진 방법론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복고 취향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것은 균형 잡힌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소나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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