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왜 하필 '마가렛 대처'입니까?

[대안칼럼-48] 이 책을 권한 경제전문가는 누구일까

등록 2004.03.25 12:14수정 2004.03.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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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8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대통령 직무가 일시 정지된 노무현대통령이 ‘마가렛 대처’등의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된 바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정승일 정책위원은 집권초 영국 광산노동조합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80년대 중반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시작한 ‘마가렛 대처’를 통해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를 이룰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을 하고있습니다... 편집자 주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이후 오랜만에 쉬면서 가장 먼저 집은 책의 하나가 권오규 청와대 경제정책보좌관이 추천한 '마가렛 대처' 전기라고 한다.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적인 독서취미를 가지고 왈가불가 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점은 대통령이 마가렛 대처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언론에 공표한 386세대 청와대 대변인의 당당한 태도이다.

청와대에서 불과 걸어서 10분 떨어진 광화문 거리에서 20만 명의 이른바 '진보'가 촛불을 들고 '보수'의 의회쿠데타를 비난하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그 '진보' 세력이 도와주려 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마가렛 대처를 읽고 있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마가렛 대처가 누구인가? 집권 초기 영국의 광산 노동조합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명성을 떨쳤고 80년대 중반에는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와 함께 금융빅뱅을 통해 오늘날의 광폭한 신자유주의를 시작한 인물이다.


마가렛 대처와 피노체트

그리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1980년대에 반공주의 세계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의 80년대 민주화운동을 '빨갱이' 사냥하듯 피로 진압한 전두환 군부독재를 지원했듯이, 영국의 마가렛 대처는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지속적으로 지원했었다. 왜냐하면 피노체트 정권이야말로 세계에서 최초로 '신자유주의' 질서가 실현된 낙원이었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집권한 아옌데 정부를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군부 쿠데타로 뒤집어 엎은 피노체트 장군은 집권 이후 경제정책 전부를 미국의 '시카고 학파'에게 맡겼다.

밀턴 프리드만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아이들'(Chicago Boys)은 공기업 민영화, 대기업/은행 해외매각, 노동조합 해체 등 오늘날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모든 경제 정책들을 처음으로 실현할 수 있는 호기를 피노체트를 통해 맞았던 것이다.

마가렛 대처의 피노체트 사랑은 극진해서 은퇴한 피노체트가 1999년 유럽 여행 중 스페인에서 체포당해 1971년 당시의 대량학살에 대한 조사목적으로 구금당하자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영국정부와 국제기구들을 상대로 구명운동을 할 정도였다.

대처리즘과 인제이즘

3년 전 일이다. 대통령 후보를 꿈꾸며 경제 전문가들로부터 정책수업을 받던 이인제 국회의원이 마가렛 대처에 관해 집중적인 교육을 받고 받았던 모양이다. 언론을 향해 '대처리즘을 이은 인제이즘' 만들겠노라고 기염을 토했던 것이다.

대통령은 바뀌어도 경제전문가는 그대로다. 후보경선에서 이인제를 물리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여전히 동일한 경제전문가들이 국정을 주무르며 대통령에게 마가렛 대처를 권유한다.

대처리즘의 신봉자들은 관료사회와 학계, 재계, 경제연구소들에 널리, 그리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개혁'과 '진보'를 말할 때마다 그것을 마가렛 대처의 의미로 해석하며 환호한다. 과연 노무현 정부는 마가렛 대처의 이념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루려 하는 것일까?

참된 경제 민주화란 무엇인가?

정치적 민주주의가 보통선거권 등을 통해 빈자와 부자간의 정치적 평등권을 의미한다면, 경제적 민주주의는 사회복지권과 노동권 확립, 나아가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이룩되는 빈자와 부자간의 경제적 평등권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난 6년간의 '시장개혁'은 시장논리, '무한경쟁'의 논리, 즉 약육강식의 논리를 마음껏 자유롭게 함으로써 빈부격차를 지난 1960년대 공업화 개시 이래 사상 유례없이 심각하게 만들었다.

정승일 정책위원
정승일 정책위원
즉 지난 6년간의 IMF-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왔고 또한 노무현 정부 역시 대체로 동의하고 있는 이른바 '시장개혁'이 만들어내는 '시장의 독재'(이른바 '시장규율')는 경제민주화의 대의를 근본적으로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시장은, 더구나 고삐 풀린 글로벌 금융시장은 결코 '경제민주화'를 위한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그 역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마가렛 대처'가 아닌 '세계화의 덫'을 권유하는 참된 경제민주주의자를 대통령 주변에서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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