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일을 할때가 제일 행복하다

굴뚝 만들고 있는데 산새가 날아와 머리위에 앉다

등록 2004.03.27 23:13수정 2004.03.2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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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을 세우기 위해 기초작업을 하고 있다.
굴뚝을 세우기 위해 기초작업을 하고 있다.전희식
굴뚝이 좋아야 방이 따뜻한 법이다. 작년에 지붕 처마를 늘여내면서 어쩔 수 없이 굴뚝도 앞쪽으로 더 끌어내야 했는데 겨울동안에는 공사를 벌이지 못하다가 봄이 활짝 펼쳐진 날 공사를 시작했다.


더구나 새날이와 새들이가 둘 다 집에 와 있는 때에 공사를 벌이게 되서 나는 잘 됐다 싶었고 새날이와 새들이는 이게 웬 날벼락이냐 싶었을 것이다. 새벽부터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먼저 새날이가 컴퓨터 좀 하겠다고 얼굴을 빼끔 내 밀었다가 방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고 새들이는 혹시라도 자기가 일어난 게 알려질까봐 숨도 안 쉬고 이불속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틈틈이 방문을 들여다보고서는 언제쯤 아빠 일 좀 도와 줄 거냐고 물었고, 이 녀석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근 두어 시간 만에야 목장갑을 끼고 작업복 차림으로 투덜대면서 마당으로 나왔다.

물론 처음에 나는 얘들이 거절할 수 없는 아주 단순한 부탁 예컨대 물 한잔 떠 달라든가 사진 한 장만 찍어 달라든가 하는 것으로 시작하였고 뻔히 내 속셈을 안 이들은 결국 일터로 나서게 되었다.

방 창문을 가리지 않게 하면서 늘여 낸 처마를 뚫고 지붕 위쪽까지 굴뚝을 세울 것이기 때문에 구둘 개자리에서 굴뚝 위치까지 골을 파내는 일도 일이려니와 연돌을 세우고 주위로 벽돌을 수직으로 근 3미터 가량 쌓아 올리는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굴뚝 밑자리가 여간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굴뚝 끝에 여닫이 차단판을 붙여서 방 구둘 보온조절장치까지 할 계획이어서 여러 가지로 궁리를 했고 간단한 스케치까지 해 두었었다.

특히 굴뚝 밑쪽에는 목초액을 받아 낼 장치를 만들 작정이어서 보통 굴뚝하고는 여간 다르지 않은 <생태유기농자재 생산굴뚝>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특별한 굴뚝이다.


두 아이가 합세하고 부터 일이 더 신났다.
두 아이가 합세하고 부터 일이 더 신났다.전희식
두 놈은 늘 그렇듯이 일을 시작하면 어찌나 재미있게 하는지 나는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런데 안전사고가 크게 나 버렸다.

새날이가 '아빠, 아빠, 아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뭔가 위기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는 아닌듯했지만 급히 새날이를 보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새 한 마리가 새날이 머리위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삽질을 하는 새날이 머리위에 산새가 한 마리 내려와 앉았다가 눈 깜빡할 새에 날아 가 버리는 것이었다.


신기하고 기가 막혔다. 이때 나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와서 통화 중이었는데 이 말을 해 주었더니 이 친구는 '새날이가 실상사에 가서 공부하더니 지리산 산신령 다 되었군' 했다. 새가 다행히도 똥은 안 싸고 갔다. 잘하면 <내 머리에 누가 똥 쌌어>라는 동화책 주인공이 될 뻔했다.

내가 새들이한테 “어때. 일단 시작하면 일이라는 게 여간 신나지 않지?”라고 했더니 새들이는 “아뇨. 전혀 신나지 않아요.”하였지만 말투는 신명이 나 있었다. 누나랑 나누는 잡담도 아주 활발했지만 일을 하면서 나누게 되는 잡담은 싱싱하게 살아있는 얘기들이다.

새날이는 일이 몸에 잘 배어 있어서 일을 즐기는 수준이다. 기분전환에 무엇보다도 육체노동이 으뜸이라고 한 마디 해 주었다. 엔돌핀과 아드레날린 이야기도 해 주었다.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와 역할에 대한 이야기인데 애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얘기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굴뚝이 좋아야 불이 잘 들고 불이 잘 들어야 방이 따뜻한 이치를 설명해 주었는데 이건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냐면 굴뚝개자리를 파는데 시커먼 숯 검댕이가 거미줄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깜짝 놀란 새들이가 저게 뭐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궁이에다 종이를 태우지 말라는 평소 주의를 주던 얘기를 끄집어내면서 검댕이가 구둘 골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개자리를 깊게 판다고 설명도 해 주었다.

오후에는 밭을 갈았다. 곁에는 직파 한 보리와 밀이 잘 나서 자라고 있다.
오후에는 밭을 갈았다. 곁에는 직파 한 보리와 밀이 잘 나서 자라고 있다.전희식
아이들이 내가 구상하고 있는 목초액 생산에 대해서는 아주 신기해했다. 아궁이에 불 때서 감자도 구워먹고 방도 덥히고 목초액까지 만들어내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1단계 공사가 끝나고 시멘트가 굳을 때까지 한 나절 정도 틈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밭을 갈러 나갔다.
새들이가 사진을 찍고 새날이는 거름을 뿌렸다.

새날이와 새들이는 2월 중순에 헤어졌다가 이제 만났다. 새들이가 중학교 입학하러 멀리 강화도로 간 이후에 한 달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원래 이번 주에 새날이가 집에 오는 날이고 새들이는 오는 날이 아닌데 새들이가 학교에서 정학을 맞아서 1주간 집에 와 있게 돼 둘이가 극적 상봉을 하게 된 것이다.

새날이는 4월 5일이 검정고시 치는 날이라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3학년 모두에게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열흘정도 가정학습기간을 주어서 앞으로도 더 집에 있게 된다. 나는 새날이에게 시험 때까지 공부 시간표를 짜는데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아빠 일을 도와 노동을 하는 시간표를 짜 보라고 했다. 시험공부에도 좋은 효과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새날이는 그러마고 하더니 자기가 짠 시간에 만약에 아빠가 일 하고 있지 않으면 뭘 해야 하느냐고 하기에 아빠 방 청소도 하고 아빠 신발도 빨고 농기계도 깨끗이 털고 하면 될 것이라고 했더니 아빠가 일 하고 있지 않으면 놀라고 할 줄 알았는지 멋쩍게 웃는 게 실망 때문인지 계면쩍음인지 모르겠다.

굴뚝 2단계 공사 때는 나 혼자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왠지 그렇다. 아이들과 함께 일을 할 때가 나는 제일 행복하다. 그럴 날이 많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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