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실황중계 본 네티즌들, "←어깨동무→"

"우리 4월 15일 투표하고 광화문에서 축제해요"

등록 2004.03.28 00:19수정 2004.03.2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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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무효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이 보름째를 이어가는 가운데 지난 3월 20일, 27일 양일에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20만, 8만이라는 인파가 탄핵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 인터넷으로 실황중계를 시청하며 문화제에 동참한 네티즌도 상당수다. 인터넷방송국인 < 오마이TV > < Liveis > 등에서는 현장을 실황으로 중계했고 이 영상을 보며 네티즌들이 남긴 글을 수는 각각 2만여건, 7천여건에 이를 정도다. 네티즌들의 호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촛불문화제를 인터넷으로 시청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문화임에 틀림이 없다. 더군다나 시청자들이 의견을 남길 수 있도록 동영상 화면 옆에는 게시판이 달려 있다. 자발성과 참여라는 인터넷의 힘을 백분 활용하는 게시판이다. 그렇다면 몸은 함께 하지 못하나 마음만은 현장에 있고픈 네티즌들은 실황중계를 보면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시간 순으로 복기해 본다.

현장에서 어깨동무면, 네티즌도 "어깨동무, 어깨동무"

a 행사시작. 네티즌도 어깨동무에 동참한다

행사시작. 네티즌도 어깨동무에 동참한다 ⓒ 지용민

27일 오후 5시 30분. 뉘엿뉘엿 해가 지려는 광화문이 모니터 화면에 들어온다. 지난 토요일과 달리 27일은 세종로 방향이 아닌 보신각 방향에서 행사가 진행된다. 마음은 이미 현장에 가 있기 때문일까 괜히 '이순신 동상'이 잘 있는지 궁금하다.

행사는 오후 5시에 시작하기로 했었지만 경찰과의 이견으로 무대설치는 지체됐고 이 때문에 30분 지연됐다. 행사가 시작됐다. 광화문 현장에 있는 시민들이 낯을 가리지 않고 옆에 앉은 사람과 어깨동무를 한다. 모니터를 통해 현장을 지켜보던 '나홀로' 네티즌 역시 어깨동무를 하고 싶다. 게시판을 통해 마음을 전한다. 모두 "어깨동무, 어깨동무". 순식간 함께 시청하던 모두는 "어깨동무"를 글로 남김으로써 서로의 어깨에 어깨를 건다.

이미 한번 해본 솜씨가 있기 때문일까. 사전에 약속이나 한 듯 네티즌들의 어깨동무는 제법 통일돼 있다. <←어깨동무→←어깨동무→←어깨동무→>. 그러나 이번에 처음 시청하는 네티즌 중에는 어깨동무 대신 '탄핵무효, 민주수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 어디서나 초보는 티가 나는 법.

광화문에 울려 퍼진 '탄핵무효', 게시판에도 '탄핵무효'


a 촛불문화제 시민들의 외침에 따라 네티즌도 탄핵무효!

촛불문화제 시민들의 외침에 따라 네티즌도 탄핵무효! ⓒ 지용민

27일 촛불문화제는 시민들의 자유발언과 민중가요를 함께 부르며 진행됐다. 바위처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너흰 아니야, 광야에서 등등 80년 광화문에 울러 퍼졌던 노래들이 다시 한번 거리를 장악했다. 간주가 흘러나올 때, 문화제 사회를 맡은 인기배우 권해효와 인기진행자 최광기씨가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탄핵무효, 민주수호'를 외친다.

직장 사무실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모니터를 통해 현장의 노래에 취해 있던 네티즌들도 갑자기 외치고 싶다. 탄핵무효, 민주수호! 그러나 모니터를 보면서 외치는 것은 네티즌의 도리가 아니다. 갑자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른 솜씨다. 역시 한번 해봤기 때문일까. <↖^.^↗탄핵무효! 민주수호!↖^.^↗>로 네티즌들의 손놀림은 통일된 상태. <탄핵무효~ 민주수호~> 맘은 간절하지만 역시 초보자임이 쉽게 눈에 띤다.


네티즌만의 강점, 뉴스 속보를 보고 의견교환

a 뉴스 속보를 접하고 잠시 선거얘기에 집중하기도 한다

뉴스 속보를 접하고 잠시 선거얘기에 집중하기도 한다 ⓒ 지용민

문화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나비' '바위처럼'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네티즌들은 동영상을 보면서 뉴스 속보도 접한다. 27일 에서는 대구경북 지역구에 대해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이 지역은 노 대통령을 탄핵시킨 한나라당의 강세지역. 여전히 모니터에서는 광화문 촛불문화제가 진행 중이지만 네티즌들의 관심은 여론조사에 쏠려 있다.

이미 같은 방송국의 여론조사에서 서울, 경기, 호남, 충청, 부산, 경남 등지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70%를 훌쩍 넘는 탄핵반대 여론이 그대로 반영된 수치다. 그러나 대구, 경북의 여론조사 결과는 생각보다 '접전 지역'이 많다. 탄핵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감히 넘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3월 12일 이후,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 네티즌들은 갑자기 이 지역에 관한 아쉬움과 기대감을 모니터를 통해 표출했다.

이별의 시간, "우리 4월 15일 투표 후에 광화문에서 축제해요"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광화문 문화제가 끝나는 시간과 맞춰 '모니터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마지막 노래로 '불나비'를 불렀다. 광화문에 모인 8만의 시민들은 모두 일어나 춤을 추는 모습이다. 아이를 무등 태운 아빠가 흥에 겨운지 몸을 흔든다. 괜히 보는 네티즌 맘 졸인다. 노래가 끝났다. 진행 관계자인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여러분, 조용히 사라집시다". 괜히 얄밉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외친다. 한번 더! 한번 더! 모니터를 보던 네티즌도 외친다. 한번 더! 한번 더!

사전에 경찰과의 약속 때문일까? 마이크를 잡은 진행 관계자는 어렵다는 혼잣말을 한다. 이 때, 사회자 최광기씨가 마이크를 다시 잡는다. 한곡 더 하고 평화롭게 해산하잖다. 광화문은 흥분의 도가니. 우리 '모니터족'도 괜히 흥분의 도가니. 마지막 앵콜곡은 '바위처럼'이다.

바위처럼 살아가자며 약속하는 와중에 게시판이 현란해진다. 글이 쇄도한다. 오늘은 비록 모니터를 통해 행사에 참여했지만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한 네티즌이 긴급제안을 내놓는다. <우리 4월15일에 투표하고 광화문에서 개표보며 축제해요>. 글을 본 다른 네티즌들 호응을 한다.

서로 알지 못하던 네티즌들은 행사를 함께 '시청'하면서 어느 덧 친해졌고 4월 15일 광화문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뒤 각자의 일과로 돌아간다. 4월 15일 광화문에서 축제하고픈 맘을 고이 간직한 채 모니터 화면을 닫는다.

a 헤어짐의 인사로 4월 15일 광화문에서 보자는 네티즌들의 인사

헤어짐의 인사로 4월 15일 광화문에서 보자는 네티즌들의 인사 ⓒ 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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