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최 부자 최준(오른쪽)과 그의 동생 최윤황금가지
"부자 3대 못간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만 해도 가까이는 1997년 IMF 사태를 겪은 뒤 대우·쌍용·동아 그룹 등 내노라 하던 재벌들이 3대를 잇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속설을 깨뜨린 집안이 있다. 경주 최부잣집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부잣집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무공 '최진립'부터 시작해 마지막 '최준'까지 12대에 걸쳐 부를 이었다.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의 9대조인 '최국선' 때 부가 정착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 때부터 계산하면 10대를 이어왔다. 그렇다면 최부잣집이 이렇게 300년간 부를 이어온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바로 이 집안 가훈에 들어 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악착같은 '재산늘리기'가 아니라 오히려 '나눔의 정신'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요즘말로 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철저했던 것이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을 하지 마라'는 것은 양반으로서의 기본적인 교양을 갖추되 벼슬길에 나아가 당쟁에 휘말리지 말라는 뜻이다. 현대적으로는 철저한 '정경분리'로도 해석된다.
정치권과 경제계가 불법대선자금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고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정경유착'이었다는 점에서 최부잣집의 가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영학박사로 대구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를 지낸 전진문씨는 최근 '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황금가지 )이라는 책을 펴냈다. 단지 최부잣집이라는 과거의 한 집안에 대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현대 경영학적 관점에서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결을 풀어 해석했다.
전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9일 출판 된 이 책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며 "아마도 최 부자의 후덕 때문인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저자 전씨는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 경제학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79년부터 2003년 8월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의 교수로 재직했다. <회계이론>을 공저로 발간했던 전 씨는 지난해에 대구에 있는 경일약품(주)의 이사로 자리를 옮겼고 아직도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저자 전씨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최부잣집이 현대 한국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를 받아봤다. 전씨는 "글로 얘기하면 되지 굳이 기사에 얼굴이 나올 필요는 없다"며 한사코 자신의 얼굴이 게재되는 것을 거부했다.
다음은 전씨와의 인터뷰 전문.
- 지난 3월9일 처음 책이 출판되었는데 독자들의 반응은?
"책이 나오자 언론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줘 나도 놀랐다. 전국의 각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책 소개를 해주고 관심을 기울였다. 최 부자의 후덕 때문에 독자들의 반응이 제법 좋은 것 같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황금가지' 관계자는 "출판된 지 20일 정도 지났는데 벌써 3쇄 1만부를 찍었다"고 밝혔다.)
- 경주 최 부자에 관한 글이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경북 교육위원회가 펴낸 '내 고장 경상북도(역사편),1981'라는 책, 최해진(1997,1998) 교수의 논문 3편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고문서집성', 조용헌 교수의 '명문가 이야기(2002)' 등에서 최부잣집에 대해 언급하기는 했지만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경주 최 부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0년 전쯤 대구에서 발간되던 계간 교양지 <나눔터>의 주간을 맡고 있을 때 한학자인 고 이수락 선생이 경주 최 부자의 가훈에 대해 기고한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아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 경주 최부잣집이 10대에 걸쳐 부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 가문에서 내려오는 독특한 철학의 표현인 가훈을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청백리의 후예로서 '청렴성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의 '도덕적 정당성'이 있었고, 이웃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사랑 정신 또는 공동체 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는 최부잣집 가훈에 대해 현대적으로 보면 '정경분리 정신'이라고 높게 평가했는데…
"조선시대 진사는 벼슬이 아니고 일종의 양반 입문 자격시험이다. 즉, 학문을 하되 벼슬을 목표로 하지 말고 양반으로서의 기본 자격만 갖추라는 것이다. 벼슬을 하게 되면 당쟁에 휘말리게 되어 그 부를 오래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농사를 가업으로 하는 사람이면 농사만 열심히 지으면 되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면 사업만 열심히 하면 될 일이지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오늘날의 정경분리와 일맥상통한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