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엄마를 찾던 시절, 기억하나요?

[태우의 뷰파인더 12] 세상 모든 엄마의 위대함

등록 2004.03.31 18:07수정 2004.04.0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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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누나만 셋이 있는데, 누나 셋이 모두 딸을 둘씩 낳았다. 누나가 셋이니 조카 여섯 그리고 어머니까지 우리 집 여자 구성원은 분대 병력 수준이다. 그야말로 2대에 걸친 ‘초강력 울트라 딸 부자집’이다. 나들이라도 나가면 가끔씩 딸이 많다고 시비를 거는 눈빛으로 우리 가족을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누나가 많아서 참 좋다.


매형이 독일에서 회사를 다니는 관계로 둘째 누나가 우리 집에 잠시 머물고 있다. 재작년 가을의 마지막 날에 태어난 윤서는 둘째 누나의 장녀인데, 유난히 낯을 가리지 않아 온 식구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게다가 성격도 순해 잠에서 깨도 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싱글벙글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아기가 해맑게 웃는데 마음이 행복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윤서는 우리집의 재롱둥이고, 귀염둥이다. 오로지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아직 “엄마”밖에 없어서, 윤서에겐 할머니도, 이모도, 삼촌도 모두 다 엄마다.

엄마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의식이 생겼는지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은 손도 못 대게 하고,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 하며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럴 땐 사탕의 유혹도 녀석에게 좀처럼 먹혀들지 않는다. 그렇다. 드디어 윤서가 낯을 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녀석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며 말을 듣지 않았고, 숨겨둔 성질을 보이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윤서는 순둥이다. 단, 엄마를 찾을 때만은 예외이다. 녀석은 거의 자지러질 듯이 울음을 터뜨리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말, “엄마, 엄마, 엄마…”만을 목청이 터져라 불러댄다.

김태우
오늘은 누나와 함께 소아과에 다녀왔다. 매형 대신 누나와 동행하면 남편으로 오해를 받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쁜 조카들과 함께 나가는 건 내게도 즐거운 일이다. 이것도 먼 훗날 사랑 받는 남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여기면 되니까.


윤서의 비강 구조상 축농증이 생기기 쉽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종종 누나와 소아과에 갈 일이 생기곤 했다. 역시나 오늘도 윤서는 콧속 깊숙이 고여있는 콧물을 빼내는 기계를 들이밀자 귀신같이 기계의 용도를 알아채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 온몸을 비틀며 울어 젖히는데, 여의사와 누나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또 다른 간호사의 손을 빌려 윤서의 얼굴을 고정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콧물을 빼낼 수 있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엄마~”를 애처롭게 불러대는 윤서를 볼 때면 나는 가끔 ‘세상의 모든 엄마의 위대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나 또한 과거에 윤서처럼 엄마를 찾았으리라. 내 자의식이 생기면서부터 엄마를 외쳤으리라. 이제 자랐다고, 이제 다 컸다고 그렇게 내 울음을 달래줬던 어머니를 소홀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누나는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윤서의 연년생 동생 혜서까지 누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유를 타고, 밥을 차리고, 방을 치우고, 새벽까지 자지 않는 혜서를 재우기 위해 씨름하고…. 휴…. 옆에서 지켜보면 남편이 멀리 있는 누나가 때때로 안쓰럽다.

김태우
윤서는 누나의 품에 안긴 후에도 한참 숨을 고른 후에야 간신히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잠시 후, 집에 오자마자 곤히 잠이 들었다.

침까지 흘리며 단잠에 빠진 윤서의 사진을 찍다가, 나는 그룹 넥스트의 노래 <아가에게>가 떠올랐다. 아가의 얼굴에 누나의 얼굴, 매형의 얼굴, 엄마의 얼굴이 다 숨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가야 너의 얼굴 하나 안엔 그렇게도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어. 서로 자길 많이 닮았다며 우기고 그래도, 온 집안 가득히 너로 인한 웃음이 가득할 뿐이야.”

윤서야, 너 나중에 크면 엄마랑, 아빠한테 효도 많이 해야 된다. 알았지? 이 울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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