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바뀔까... 정형근의 긴 침묵

[현장과 분석] 한나라 "대역전" 공세속 열린우리 '불안한 1위'

등록 2004.03.31 19:15수정 2004.04.0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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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나라당의 '부산불패' 신화는 깨질 것인가? 열린우리당은 31일 여론조사에서도 40%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부산 1위를 지키고 있다. 총선이 15일 남은 현재, 열린우리당은 부동의 1위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30일 열린 부산 선대위 출범식.

한나라당의 '부산불패' 신화는 깨질 것인가? 열린우리당은 31일 여론조사에서도 40%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부산 1위를 지키고 있다. 총선이 15일 남은 현재, 열린우리당은 부동의 1위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30일 열린 부산 선대위 출범식. ⓒ 오마이뉴스 김영균


"TK에서 박근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낙동강 전선은 이상 없이 지켜내겠다."

30일 오후 부산 국제신문 4층 중강당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부산선대위 출범식에서 윤원호 비례대표 후보는 '박근혜 바람에도 부산은 꿋꿋하다'며 총선승리를 자신했다.

윤 후보의 발언은 비록 '다짐'의 형식을 빌고 있으나, 4·15 총선을 보름 앞둔 부산의 현 상황을 압축적으로 표현해내는 말이었다. 오랫동안 사실상 한나라당이 지배해 왔던 부산민심이 탄핵 후폭풍으로 흔들린 뒤 돌아설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윤 후보뿐 아니라 이날 자리를 같이한 부산지역 18개 선거구 총선 후보들도 대부분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총선 후보들이 한나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의 간판을 달고도 이처럼 자신만만한 것은 부산 지역 선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31일 여론조사 열린우리당 17곳 1위

열린우리당 소속 후보들이 자신감에 차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3·12 탄핵 가결 이후 급격하게 일어난 '반 한나라당' 민심이 보름이 넘은 3월말까지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일보>의 최근 여론조사(31일자. 부산일보-한길리서치 공동)에 따르면 부산지역에서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40.1%로 한나라당 지지율 29.4%를 무려 10.7%나 앞서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탄핵 반대 여론이 수그러들 것"이라고 내다봤던 한나라당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다.


개별후보간 여론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하다. 수치만으로 비교해 볼 때 열린우리당은 부산지역 18개 선거구 중 17곳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에 비해 앞서나가는 곳은 중·동구(열린우리당 이해성 후보 - 한나라당 정의화 후보) 단 한 곳 뿐이다. 그러나 두 후보의 차이도 불과 2.1%(정의화 28.3% - 이해성 26.2%)에 불과하다.

특히 영도(김정길), 연제(노혜경), 수영(허진호), 부산진을(박재율), 북강서갑(이철), 북강서을(정진우) 등 7개 지역구는 한나라당 후보와의 차이가 평균 10% 이상으로, 오차범위를 넘어 열린우리당이 앞서나가고 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31일 <부산일보> 여론조사 결과는 절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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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세력 분열' 가속

한나라당을 밑에서 떠받들던 핵심 당원들의 분열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무소속이었던 지역 정치인들이 대거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것도 한나라당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지난 29일에는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박언호 사상구의회 의장 등 15명, 진승록 남구 의원 외 13명 등 모두 28명이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박언호 사상구회의 의장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차떼기 정당의 한 귀퉁이를 지탱할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치로 나갈지 고민해 왔다"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한나라당을 탈당한다"고 밝혔다.

남구 소속 기초의원들도 "한나라당은 정쟁의 중심권에서 국회의원의 신분을 망각하고 극히 사소한 문제로 대통령을 탄핵했다"며 "지역 주민들의 여론 수렴 결과와 요구에 의해 한나라당을 탈당한다"는 성명과 함께 우리당에 입당했다.

30일에는 유일하게 열린우리당 후보를 앞서가고 있는 정의화 의원이 포진하고 있는 중·동구의 현직 구청장과 구의회 의장 등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물론 이들은 무소속이었으나 이들의 입당은 지역 정치의 핵심이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열린우리당 입당을 희망하는 지역 정치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홍재균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홍보팀장은 "곧 부산 서구 의회 의원들도 입당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요동치는 곳도 정치 쪽만은 아니다. 탄핵안이 가결된지 20일 가까이 지났지만, 탄핵을 규탄하는 지역사회의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탄핵 가결 이후 매일 진행돼온 촛불집회도 규모는 약간 줄었지만 계속 열리고 있다. 지난 27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약 5000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매주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고 있는 것이다.

전국 최초로 '탄핵 반대 동맹 휴업'을 선언했던 부산대가 학내 부재자투표소 설치를 요구하는 등 지역의 젊은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투표 참가 의지를 밝히고 있는 점도 한나라당에 부담을 주고 있다.

코너 몰린 한나라당 후보들, 복지안동(伏地眼動)?

한나라당 후보들이 받은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는 일선 현장의 선거운동 상황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탄핵 후폭풍으로 갑작스레 '반사이익'을 본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이지만, 한나라당 후보들은 각 지역구에서 저마다 '조심 행보'를 취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현역의원이 출마한 지역구의 열린우리당 운동원들은 "한나라당 후보들이 어떻게 선거운동을 하고있는지 조차 모른다"고 전했다.

정형근(한나라당) 의원과 이철(열린우리당) 후보가 맞붙는 부산북강서갑의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정 의원이 TV토론은 물론 언론과의 인터뷰도 일절 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탄핵을 주도한 16대 국회의원 출신이고, 언론에 나서기만 하면 '공안검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정형근 의원측 캠프의 한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모두 거부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는 먹고살기 바쁜 지역 주민 여론이 '사형수 대 공안검사'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총선에서 맞붙어 이긴 허태열 의원이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북강서을도 분위기는 마찬가지. 열린우리당 북강서을 선거운동원인 최종숙씨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복지부동이 아니라 지역구 눈치만 살피고 있는 '복지안동'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불안한 열린우리당 "겸손, 겸손, 또 겸손..."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불안하다. 열린우리당 총선 후보들은 현재의 지지율이 "열린우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선대위 출범식 등 총선 후보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줄을 잇는다.

열린우리당 부산시지부에서는 막상 선거가 가까이 오면 현재의 지지율이 5∼10% 정도 빠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조성래 열린우리당 시지부장은 "대체로 선거날이 되면 현재의 지지율에서 5∼10% 정도 지지율이 빠질 것으로 본다"며 "그 때문에 앞서고 있더라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구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10% 이상 한나라당을 앞서가고 있는 후보들도 "종국에는 박빙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영도지구당 김정길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지지율이 높게 나오더라도 인물적합도에서 뒤지는 만큼 결코 안심할 수 없다"고 전했다. 북강서을의 다른 선거운동원도 "현재는 이기고 있지만, 지고 있다는 심정으로 선거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지역에서도 현재 가장 신경 쓰는 문제는 '거여 견제론'이다. 조성래 시지부장은 물론, 다른 후보들 역시 "열린우리당이 전국에서 200석 이상 건질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 차단에 부심하고 있다.

한나라당 "어느 당에도 절반 이상 주지 않을 것"

한편 한나라당은 지지율을 역전시킬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취임 이후 대구와 울산을 방문한 박근혜 대표가 오는 1일 오후 부산을 찾는 것도 '부산 탈환'을 위해서다. 박 대표는 부산역에서부터 삼보일배로 '108배' 절을 하며 부산 민심 돌리기에 힘쓸 것으로 알려졌다.

전종민 한나라당 부산시지부 정책실장은 "현재 한나라당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고 본다"며 "박 대표 취임 이후 본격적인 선거국면으로 접어들면 적어도 지금보다 10% 이상의 지지도 반등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 실장은 또 "70년대 이후 역대 우리나라 어느 선거에서도 국민들이 절반 이상의 의석을 한 정당에 준 적이 없다"며 "시민 민주주의가 성숙한 만큼 노 대통령과 정부의 불안정성을 견제할 심리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 실장은 "박 대표가 부산을 찾아 한나라당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줄 것"이라며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영남 불패신화'가 깨질 것이라는 분석은 이미 지배적이다. 현재 유권자들과 정치권의 관심은 과연 한나라당이 부산에서 어떻게, 또 얼마나 깨질 것이냐는 결과에 쏠려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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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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