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이 정동영에게] "진보와 보수의 진검승부를 청한다"

등록 2004.04.10 15:21수정 2004.04.1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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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후보.
심상정 후보.권우성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1순위인 심상정 후보가 민주노동당 총선홈페이지(www.pangari.net)에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보내는 글을 올렸다. 민주노동당의 '진보가 보수에게'시리즈 9번째다.

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으며 민주노총의 주력인 금속노조의 사무처장을 지낸 심 후보는 현재 민주노동당의 정당명부 비례대표 지지율을 감안할 때 당선이 확정적이다.

심 후보는 이 글에서 "열린우리당이 비례대표 1번에 장향숙 후보를 공천한 것은 진심으로 말씀드리건대 아주 잘하신 일"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일이 이미지 정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열린우리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발표하던 날 광화문에서 열린 장애인집회를 10배가 넘는 수의 전경을 투입하여 짓밟은 사태에 대해서는 최소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후보는 이어 참여정부가 재벌개혁,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철폐, 노동탄압, 이라크 파병 문제를 잘못 처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 후보는 "수구를 넘어 보수로,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경쟁을 통해 마침내 진보사회로 발전해 가는 역사적 대장정의 한복판에서 민주노동당과 열린 우리당의 한판 승부는 이미 예정된 역사의 시나리오"라며 "부디,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셔서 저희 민주노동당과 진검승부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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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의 '진보가 보수에게' 시리즈 화제

다음은 심 후보의 글 전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열린우리당의 급 반등세가 의장님의 실언으로 주춤해진 탓에 총사령탑으로서 마음고생이 심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때가 때인지라 별도의 위로말씀 드리지 못함을 이해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사실 '손님' 실수로 얻은 반사이익치고는 너무 나갔다 싶었습니다. 거기다가 의장님의 탁월한 개인기로 이미지 정치를 덧씌워 고공행진을 부추길 때, 염치없이 너무 바랜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사 '과'하면 넘치게 마련인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의장님의 '실언'은 화려한 포장에 가려진 불량제품의 한 귀퉁이가 살짝 드러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혹에라도 이런 제 말씀을 정략적인 얘기로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민주노동당은 의장님의 실수로 반사이익을 얻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몸 전체를 날 것으로 드러내어 국민들의 평가를 받고 싶을 따름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진검승부를 청하는 것뿐입니다.

기왕에 이미지 정치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말씀만 덧붙이겠습니다. 열린우리당은 비례대표 1번에 장향숙 후보를 공천했더군요. 진심으로 말씀드리건대 아주 잘하신 일입니다. 며칠전 모 일간지 비례대표 토론에서 장향숙 후보를 만나 뵌 적이 있습니다. 역시 하루하루 고통을 엮어 인생을 살아온 분들에게서만 배어 나오는 진솔함과 단호한 투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장애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당을 넘어 그 분과 협력해나가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일이 이미지 정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바로 열린 우리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발표하던 날 광화문에서 열린 장애인 집회를 10배가 넘는 수의 전경을 투입하여 짓밟은 사태에 대해서는 최소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최소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노무현정부에서 오히려 사회보장예산이 삭감되고, 장애인들을 위한 저상버스도입 예산이 줄어든 이율배반에 대해 해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정 대표께서는 올해 초 국회 연설에서 '이 시대에는 일자리가 최고의 인권'이라는 참으로 공감 가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투자가 일어나도록 만드는 길 밖에 없다는 지적도 수긍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 내국인 투자 확대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노사안정과 자본에 대한 규제완화가 요구된다는 의장님의 결론은 참으로 유감스러웠습니다. 사태의 진실을 모르시고 하신 말씀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알고도 그런 결론을 내셨다면 더 걱정스럽습니다.

정녕 외국인 투자를 더 늘려야 이 나라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리나라는 이미 주식시장의 43% 이상을 외국인이 소유하여 OECD국가 중 외국인 지분율이 '영광스러운' 1위가 되었고, 이들이 작년 1년 동안 무려 30조원을 챙겨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신지요? 외국 자본이면 투기자본이라도 두 손들어 환영하고 그들이 들어와서 사람을 얼마나 자르는지, 부동산 투기에만 열을 올리지는 않는지, 단기차액만 노려 자기 이익만 챙기고 튀어버리는지는 않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까.


국가경제지도자회를 열어서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해소하고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건 임금동결하고 파업자제 하란 또 그 말씀이시지요? 작년에 1조 7천억 원을 번 굴지의 기업 현대자동차에서, 일년 열 두 달 아빠 노릇 남편 노릇 제대로 못하며 3천시간씩 일해서 연봉 3천6백 만원 받는 게 그 분들의 노동가치로 볼 때 그렇게 과다한 것입니까? 한 달에 순 월급만 3억 5천씩 받는 재벌 사장님들의 보수는 문제가 안됩니까?

이런 얘기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이야기해야 그나마 말이 통하니 OECD 기준으로 말씀드리지요. 지난 95년부터 2002년까지 OECD 국가 중 민간부문 생산성 증가율이 제일 높게 신장된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이에 비해 실질임금 인상률은 최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출부문의 기업들은 지난 2년 동안 사상 최대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돈이 없어 투자가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정 의장님! 재벌을 확실히 개혁하고 단기차액만 노리는 외국투기자본 단호하게 규제하면 지금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400조가 넘는 돈! 건전한 투자로 돌릴 수 있습니다. 국내외 자본 규제 완화하고 세금 감면해줘서 투자 확대하겠다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 물려주는 꼴입니다. 오진도 정도가 있지 정반대로 처방하면 사람 잡습니다.

또 지금 내수 없는 경제가 문제라는 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국민들이 너무 가난해서 구매력이 없어 경제가 안 돌아간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우리사회의 빈곤화를 재촉하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가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IMF보고서에서 '한국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이 사회 불안을 야기할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했겠습니까.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이 경제분야를 포함해 한국사회의 핵심 현안이 된 상황에서, 집권당 대표가 경제를 진단하고 처방할 때는 비정규직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언급은 하셔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17대 국회가 개원하면 첫 번째 맞닥뜨리게 될 노동관련법이 파견대상업종을 전 업종으로 확대하고 파업권을 제한하는 법률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청컨대 집권여당에서 크게 마음 한 번 쓰시지요. 노동자 국회의원이 50년만에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는데 초장부터 머리띠 묶고 레슬링 하도록 하는 건 너무 그림이 삭막한 거 아닙니까? 오히려 예비국회의원 후보 70∼80%가 그 필요성을 인정한 부유세 도입을 두 손 꼭 잡고 성사시켜 보는 게 의장님이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계신 경제성장에도 부합되고 서로 남는 장사가 될 것 같네요.

정 의장님, 내수를 살리고 중소기업 살리려면 비정규직 없애는 일부터 고민하셔야 합니다. 부자와 재벌들이 번 돈 좀 사회에 환원하라고 해서 사회복지 확대하고 안정된 일자리 만들어야 합니다. 재벌들이 방방 뜬다고 겁먹지 마세요. 재산목록을 보니 정 의장님도 부유세 좀 내셔야되겠더군요. 너무 아깝게 생각하지 마세요. 급진적인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의장님이 항상 강조하시는 대로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만 일단 맞추자는 거니까요. 이 정도는 동의가 되어야 그 다음 보수와 진보의 진검승부로 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얘기가 길어지긴 했지만 이제 힘있는 여당이 되실 거니까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노무현대통령께서 그렇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 이유가 뭘까 많이 고민해 봤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전공분야에서 조차 제대로 못하면 기대를 버리게되는 것 같아요. '노무현은 노동자 친구'니 어쩌니 하는 스쳐지나간 경력 같은 건 다 빼고, 그래도 전공이라고 하면 민변소속 '인권변호사' 경력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권 아래서 집시법이 버젓이 개악되고, 노동자를 1년만에 일주일에 네 명 꼴로 204명이나 구속하고, 교사 공무원 정치활동에 대해 군사정권 시절을 방불케 하는 폭력적인 탄압을 자행하는 건 노무현정권에 대한 총체적 신뢰지수를 떨어뜨리는 가늠자가 되고 있다는 점 유념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게 이라크 파병문젠 데요. 정 의장님, '이라크 파병은 이라크를 돕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은 이제 그만 하시지요.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 낫지, 낯뜨겁지 않습니까? 더구나 지금 세계의 힘은 미,영 전쟁주의자들로부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 양심세력으로 그 축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테러를 기점으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철군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아니 백 번 양보해서 미국의 눈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미국에서조차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찬반 논쟁이 분분한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만 대규모 파병을 고집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의 국제정세에 대한 근시안과 아둔함을 드러낼 뿐입니다.

얼마 전 4.15 총선 관련 TV토론에서 귀 당의 김근태 원내대표께서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는 반대한다고 말씀 하셨는데 같은 생각이신지요? 과거에 대한 부담이라면 이해가 갑니다. 노무현 대통령 1년 집권동안 민생, 경제 관련 정책들은 대부분 수구정당과 담합해서 처리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책임 있는 다수 여당이 되실 텐데 앞으로도 수구와 한편이 되어 민생을 돌보지 않으시려는 의도에서 나온 얘기라면 곤란합니다. 민주노동당과의 경쟁에 자신이 없어 기피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도한 민중의 역사발전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수구를 넘어 보수로,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경쟁을 통해 마침내 진보사회로 발전해 가는 역사적 대장정의 한복판에서 민주노동당과 열린 우리당의 한판 승부는 이미 예정된 역사의 시나리오인 것입니다. 부디,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셔서 저희 민주노동당과 진검승부를 해봅시다. 민주노동당은 손색없는 진보의 대표주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닦고 대중들의 고통과 투쟁의 현장에 언제나 함께 할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결전의 장에서 당당하게 만나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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