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이 '이승연'에 분노했던 이유

안연선 지음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

등록 2004.04.11 22:53수정 2004.04.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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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씨의 위안부 누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한국판 누드 비즈니스에 필연적 파열구가 났구나 싶었지요. 상업적 미학의 교묘한 완성도와 만만한 사회적 이슈를 뒤섞어 대중의 이목을 끄는 외국의 누드 퍼포먼스와 비교해도 한국의 그것은 포르노 대용품 시장을 노리고 급조된 B급 이하의 수준이었으니까요. 누가 봐도 그랬습니다.


'솔직해지고 싶었다'거나 '젊었을 때 몸매를 남기고 싶었다'는 판에 박힌 여성 연예인들의 설명은 단숨에 거액을 벌겠다는 한탕주의의 욕망을 가리기에는 속이 너무 훤하게 보였지요. 성현아씨를 비롯해서 봇물을 이룬 누드 영상은 이국적 풍광과 얼굴만 교체했을 뿐 대동소이한 컨셉트를 반복하면서 일찍 밑천을 드러냈다는 것이 제 판단이었거든요.

바로 그 무렵에 이승연씨가 등장한 겁니다. 위안부 컨셉트를 들고 말이지요. 헤어 누드나 새디즘·매조키즘으로 더욱 세게 나가지 못하는 한 후발 누드 상품들은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아야 했을 겁니다. 때마침 근현대사의 비극을 건드린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는 시류를 타고 위안부 소재를 떠올린 게 아닐까, 저의 주관적 시나리오는 마구 진도를 나갔지요.

저 혼자만의 궁리는 곧 이런 의문에 이르렀답니다. 소위 누드 산업의 당사자들은 위안부라는 역사적 실체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이승연씨가 워낙에 무지하고 안일했던 것일까, 애초부터 연예인 사회는 그런 일에 관심조차 없었던 것일까, 모름지기 연예 비즈니스란 돈벌이라면 소화 못할 게 없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상업적 생리를 갖고 있어서일까. 죄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이승연씨의 기자 회견이 있자마자 인터넷과 신문과 방송이 합심해서 일대 궐기에 나섰으니 말이지요. 이승연씨는 '죽일 년'이 되었고 기획사는 '죽일 놈들'이 되었습니다. 삭발하고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고 필름을 태우고서야 사태는 가까스로 진정이 되었지요. 감히 우리라고 말한다면, 대한민국의 우리는 모처럼 성별과 나이와 계층의 차이를 뛰어넘어 다같이 분개하고 규탄했지요.

사태가 선악으로 선명하게 나뉘어 신속하게 전개된지라 저는 한동안 벙벙했답니다. 성난 목소리의 태반은 '위안부를 두 번 죽이는 짓'이라는 공분과 '국제적 망신'이라는 체면이었습니다. 분위기가 수그러들고 나서야 저는 연예인 사회의 매커니즘에 관한 제 관심을 잠시 물리치고 위안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기 시작했지요. 이 문제야말로 한국 근현대사 최악의 뇌관이구나 싶었거든요. 한국인이라면 다들 떨쳐 일어날 만큼 말이지요.


우리 모두가 명약관화한 결론을 갖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이 일사불란한 행동에 나서도록 만든 집단적 정서가 과연 무엇인지 저는 더욱 궁금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기사와 관련 자료를 뒤적이다가 이 책을 찾았지요.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는 2003년 8월에 초판이 나왔지만 읽어볼수록 오늘의 해프닝을 예비한 것처럼 집요하게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밀고 있더군요. 저 역시 가슴에 난도질을 당한 기분이 들었지요.

"단지 같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회의적이었다."


위안부 생존 할머니들과 참전 일본 군인들을 다수 인터뷰한 지은이가 서문에 밝힌 심경입니다. 조선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하고 착취한 일본 식민주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만큼 지은이는 그 일이 그토록 허망하게 이루어지도록 배태한 조선 내부의 가부장적 유교주의의 허상을 겨냥하고 있었지요. 한·일 양국의 전후 50년에 걸친 침묵의 카르텔을 벗겨내기 위해서 지은이는 조심스레 한발씩 내딛습니다.

"조선 내의 가부장적인 '정숙한' 여성성의 개념과 식민지 권력에 의해 부과된 '타락한' 여성성의 개념은 서로 중첩되어 있다."

당시 한·일 양국의 여성에 대한 실천적 담론은 어머니로서의 '순결한 여인'과 성적 대상으로서의 '더러운 창녀'라는 이분법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인식이지요. 요컨대 일본 여성을 국가의 어머니로 재생산하고 조선 여성을 성적 서비스 제공자인 창녀로 전락시키려는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에 대해 식민지 조선의 유교적 권력이 방어에 실패한 것이지요.

이런 시각에서 보면 위안부 문제는 내 아내와 내 딸을 지키지 못하고 적들에게 빼앗겨 강간당한 '쪽팔린 사건'입니다. 따라서 가부장적 남성성의 굴욕적인 상처이자 되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일본 식민주의 권력과 조선 가부장제 권력 사이에 긴장이 발생하지만, 그것은 여성의 정조를 수호한 남성과 빼앗긴 남성의 대립으로 수렴되어 여성 자신의 주체적 이야기는 깨끗이 지워지고 맙니다.

남성 여러분, 어찌 생각하시나요. 이승연씨 파문을 접하고 치솟은 감정 밑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상업적으로 악용한 일에 화가 났겠지만, 그토록 분노가 격렬했던 뿌리에는 혹시 조선 남성의 치욕을 대물림해서 내면화한 순결 이데올로기가 똬리를 틀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나요.

"여성의 몸을 민족의 정조를 보증하는 것으로 보는 이러한 민족주의적 담론은 위안부의 몸을 일본인에 의해 '더렵혀진 몸'으로 읽는다."

위안부 생존자에 대해 조선의 남성은, 그리고 한국의 남성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하지 싶네요. 국가와 민족과 가족의 권력을 유지해온 가부장적 남성의 감수성은 기껏해야 위안부 생존자를 '불쌍한 여성' 또는 '불편한 여성'으로 바라보는 데에 멈추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한국 남성은 위안부 문제를 통해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읽고 식민지 조선의 힘없음을 되새기고 짓밟힌 조선 여성의 모멸을 간직하지만, 정작 성폭력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여성을 소외시키고 있었던 셈이지요. 일본 남성이 조선 여성을 강간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남성화된 국적을 비교하지만 남성이 여성에 저지르는 성폭력에는 침묵하니까요.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성폭력을 당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뭔가 비난받을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했다고 믿을 때 훨씬 덜 고통스럽다."

이 구절은 수잔 브라이슨의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에 나오는 말입니다. 위안부 생존자의 침묵과 자학이 어떻게 내면화되는지, 그 전에 일본 남성에 의해, 고향에 돌아와 마주친 조선 남성에 의해 어떻게 외부적으로 강요되는지를 설명해주는 단서이지요. 한 번 더럽혀지면 그것은 더렵혀질만했다는 증거로 둔갑해서 감추는 일만 남게 되는 이 도착적 과정에서 한국 남성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자문할 필요는 정말 없을까요.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한국 남성은 위안부를 성폭행한 일본 남성 가해자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고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네요. 이승연씨의 누드에 분노를 일으킨 한국 남성의 감수성에 무슨 내용물이 들어있는지 낱낱이 토해놓고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실성하고 자살하고 고립의 길을 자처한 그 모든 행동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절한 생존과 저항의 한 형태라고 보는 지은이의 발언 앞에서 저는 제 남성됨의 부끄러운 초상화를 다시 보게 됩니다.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기를 원한다면,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와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책 두 권을 연달아 정독하시기를 권유하고 싶군요.

"트라우마의 기억들을 잊으라고 강요하는 문화적 억압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가 피해자들과의 공감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에 더하여, 그처럼 끔찍한 운명에 처한 사람들과 공감하게 되면, 우리 역시도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끔찍한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우리에게 생기기 때문이다."
- 수잔 브라이슨, 같은 책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

안연선 지음,
삼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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