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도 모르잖야"와 "사람들이 너무 빨리 잊어"

[현장] 요동치는 은평을 표밭... 이재오 vs 송미화

등록 2004.04.12 11:11수정 2004.04.1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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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연신내 연서시장 앞.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지원 유세를 나왔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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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우리당의 송미화 후보와 지원유세를 나온 열린우리당 박영선 대변인과 함께 시장을 돌며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오수민

"지역구는 인물을 보고 뽑아야지, 누군지도 모르는 송미화한테 어떠게 표를 줘?"
"이재오는 한나라당을 못 벗어나. 솔직히 그간 바뀐 것도 없잖아. 이젠 바뀔 때도 됐어.”
"우리당은 서민을 위해 뭘 했나? 국민 먹여살릴 궁리는 안하고 허구한 날 탄핵뿐이지."
"사람들이 너무 빨리 잊어. 한나라가 또 차떼기 하지 않겠다는 걸 어떠게 믿나?”


17대 총선 D-3일. 한나라 현역 의원 이재오(58) 후보와 우리당 신인 송미화(42) 후보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은평을은 유권자들의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이를 감지한 듯 각당은 한나라 박근혜 대표와 우리당 박영선 대변인을 파견해 마지막 표심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양 후보 진영의 관건은 침묵하고 있는 40-50대의 부동층으로 분석하고 있다. 비교적 젊은이와 어른들의 표심이 쉬이 구별되는 것에 비해 기자가 만난 40-50대는 여전히 "이번 만큼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이라며 속내를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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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의 인지도냐, 송미화의 탄핵 심판이냐



"은평은 역시 이재오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민생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이번 선거에서 승리만을 위해 비방과 폭로를 일삼는 모습이 과연 개혁 정당의 모습입니까? 그간 지원해준 여러분의 사랑에 실용정치, 상생의 정치로 보답하겠습니다! 우리 한나라가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판단해 주십시오!”

은평구 연신내 사거리 연서시장 앞. 한나라 박근혜 대표가 등장하자 일순간 교통이 마비될 만큼 많은 유권자들이 사거리로 몰려들었다. 한나라 이재오 후보 측 유세장에는 40-50대 주부가 70%를 이뤘으며,나머지 30%는 60-70대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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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차량에 올라 유세를 하고 있는 한나라 이재오 후보 ⓒ 김진석

이재오 후보 차량에는 '은평은 역시 이재오입니다', '서울 1등 은평, 살고 싶은 은평'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 후보는 "누가 과연 은평 구민을 위해 최고 적합한 인물입니까?"라는 질문을 연신 유권자에게 던지며 자신이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어려운데, 그런 것도 모르고 여당은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만 일삼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무슨 방법으로 경제를 살리겠습니까?"
"맞습니다!”, "옳소!”, “거대 여당을 견제해야 한다!”, “우리당은 절대 안돼!"

박근혜 대표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를 보기 위해 상가 간판 위에 올라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을 붙잡고 감격에 겨워 말을 못 잇는 유권자도 있었다. 유세장에 모인 청중들은 박근혜 대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 호응과 박수로 화답하며 장미꽃과 음료수 등을 전했다.

매일 4시간 정도를 자며 선거 운동을 하는 이재오 후보는 피곤한지 양 눈이 빨개져있었다.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지자 곁에 있던 한 유권자가 "우리 후보님 피곤해요, 말 걸지 말아요. 쉬셔야 되요"라며 기자를 만류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11일 오전 여당이 가진 기자회견(거대야당 출현 위기론)에 대해 "그런 것엔 관심도 없다. 우리가 얼마나 바쁜데 거기에 신경을 쓰겠는가?"라며, "자신이 있느냐?" 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모르겠는가!"라고 답했다.

“손잡아 봤어? 응, 세 번! 잘했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잘 만들어 주십시오!”

박근혜 대표가 떠나도 이재호 후보 유세장에 모인 어른들은 한나라 로고송 ‘조국찬가’ 에 맞춰 흥겹게 어깨춤을 추며 쉬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들은 엄지손가락이 세워진 손을 어깨 위로 치켜들고 ‘이재오’ 를 연호했다.

청중들의 열렬한 호응에 이재오 후보는 “오늘 여러분의 힘으로 은평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라며 “4월 15일 승리의 영광을 은평 구민에게 돌리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유세장을 떠났다.

"이 아줌마가 기호 3번 바로 송미화입니다!”

“야당이 1당 된다면 대통령 탄핵은 정당한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싸움정치, 폭로정치, 탄핵정치, 차떼기정치, 방탄국회로 그들은 우리 서민을 또 다시 외면할 것입니다. 개혁과 심판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국민뿐입니다!"

연신내 사거리 물빛공원 앞. 저녁이 되자 많은 젊은이들과 가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송미화 후보 지지자들은 70%가 젊은 유권자이들. 송 후보 거리 홍보의 특징이 있다면 유독 갓난아기들과 나들이를 나온 젊은 부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점이다.

“이 아줌마가 기호 3번 바로 송미화입니다!, 여성이 깨끗합니다! 바꾸겠습니다!"
“더 열심히 분발하십시오. 이번만큼은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재오를 이겨주세요!”

한 30대 유권자가 다가오더니 송 후보의 손을 한동안 붙잡고 연신 “이번만큼은…….” 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송 후보도 “여러분과 같이 일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양 손으로 유권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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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우리당 송미화 후보. 연설을 하기전 유세 차량 뒤로 가서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다. ⓒ 김진석

송 후보의 유세차량엔 ‘한국정치 확 바꾸겠습니다, 일하고 싶습니다.’, ‘정치개혁 국민의 뜻입니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송 후보는 유세보다 거리홍보에 주안점을 두고 정치 신인인 자신의 이름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시민단체 선정 최우수의원(서울시의원)으로서 지방에서 중앙으로 올라온 풀뿌리 정치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송 후보 유세 차량 앞에 모인 자원 봉사자들이 로고송 ‘아리랑’ 에 맞춰 율동을 하자 물빛공원에 모인 사람들도 같이 장단을 맞췄다. 처음엔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율동을 주도했지만, 즉석 참여로 늘어난 주민들의 어우러짐으로 이내 곧 공원엔 흥겨운 축제가 연출됐다.

"3번을 밀어주세요!"

노란 재킷을 입은 박영선 대변인이 도착하자 공원의 축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지나가는 주민들도 ‘뉴스 앵커다, 대단하다!’, ‘박근혜처럼 대표 되세요!, 못 할 것이 뭐 있습니까!' 를 연발하며 박 대변인을 환영했다.

"3시 3끼 기호 3번 송미화입니다!”

박 대변인은 송 후보와 함께 30여 분 간 연서시장과 물빛공원을 돌며 송미화 후보를 알렸다. 시장에 모인 주민들은 ‘힘내세요’,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1당이 돼야지요., ‘일단 찍고 보겠습니다’ 라는 등의 덕담을 보탰다.

박 대변인은 "우리가 결코 잊어버려선 안 되는 일이 있다"면서, "야당에 현혹되지 말고 4월 15일은 국민들에 의해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날로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그간 차떼기로 앗아간 이 나라 서민들의 목숨이 얼마입니까? 민생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껏 힘들게 싸워오셨던 여러분들의 뜨거운 마음을 믿겠습니다!”

송 후보의 목소리는 이미 쉴 때로 다 쉬어 있었다. 그러나 잠깐 짬을 돌릴 틈도 없이 송 후보는 신인의 불리함을 ‘참신함’ 과 ‘깨끗함’ 으로 바꾸기 위해 다른 거리로 이동했다.

서로 다른 표심, 요동치는 표심

연신내 사거리는 판이하게 다른 표심으로 두 번 요동쳤다. 한 쪽에선 박근혜 대표의 손을 또 다른 한쪽에선 송 후보의 손을 붙잡고 서로 다른 유권자가 감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저녁 시간이 되자 연신내 거리는 100m도 채 안 돼 타 후보 측의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배치돼 유권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송미화 후보 측의 자원봉사자가 '탄핵무효, 부정부패', '0415 지키자, 국민심판' 이라고 쓰인 스티커 등을 겉옷으로 입은 부대자루에 붙이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때문에 은평을 선관위는 "선거법 90조에 의해, 한 후보의 자원봉사자가 타 후보 표심에 영향을 주는 문구(탄핵찬반논란)등을 붙이고 시위를 하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된다"면서, 자제를 요구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치열한 선거전, 은평을 유권자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 관련 이재오 후보와 송미화 후보 설전

▲ 지난 9일 각 당의 후보자들의 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 왼쪽부터)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 민주당 이성일 후보, 민주노동당 정태연 후보, 열린 우리당 송미화 후보, 자민련 임왕혁 후보
ⓒ김진석

지난 9일 은평을 후보들의 토론회가 은평드림시티방송국에서 생방송으로 열렸지만, 후보들은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당’ 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쟁점에서는 서로가 ‘국민을 위한 당’ 이라며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한나라 이재오 후보는 당의 과오를 사과하고 야당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며 자신이 개혁을 주도할 ‘적임자’ 라고 밝혔다.

그는 “단 돈 100만원만 훔쳐도 큰 대가를 치르는 서민들에 비해 정치인들은 수십억씩 비리를 저질러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다” 며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한 특검팀’ 같은 정치인들의 부패를 심판할 강력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탄핵안 가결에 대해 이 후보는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무슨 일을 하든 법을 어겨선 안 된다"면서, 탄핵찬성 입장을 명확히 했다. 또한 그는 은평 뉴타운 개발에 따른 원주민의 100% 재정착을 약속하며, 대학이전과 역세권개발 등을 통해 은평의 숨은 사업들을 활성화 시키겠다고 주장했다.

우리당 송미화 후보는 “자신이 ‘국민경선’ 을 통해 은평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 후보” 임을 강조하며 “탄핵반대를 외쳤던 70%의 국민을 미친 사람 취급했던 의원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에 대한 심판은 오직 유권자만이 할 수 있다” 고 이재오 의원을 겨냥했다.

송 후보는 “그간 야당이 아무런 대안 없이 오직 비판으로만 일관해 결국 민생 경제만 파탄나고 말았다” 며 “민족의 숙원인 ‘친일진상규명법’ 마저 난장으로 만들어 놓은 야당에게 어떻게 또다시 국가를 맡기겠냐?” 고 강하게 야당을 비판했다. 그는 은평과 신촌을 오가는 경전철을 도입해 은평을 베드타운이 아닌, 서울의 서부문화존으로 특화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민주당 이성일 후보는 “선거가 ‘바람몰이’ 로 진행되서는 절대 안 된다. 인물과 정책을 꼼꼼히 따져보고 뽑아야 한다” 며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뛰었던 2002년의 겨울을 기억하는가, 하지만 노 대통령은 조강지처를 버렸다” 고 일침을 가했다.

이 후보는 “정동영 의장의 장남이 미국에서도 비싸다고 유명한 사립고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우리나라 교육을 논할 자격이 있겠는가?” 라며 “어르신들의 표가 필요 없는 당 말고 표를 귀히 여기는 정통 민주당을 찍어달라" 고 호소했다. 그는 서민들에게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한 컴퓨터 무상공급을 약속하고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다.

민주노동당 정태연 후보는 “모든 당이 젊은이를 전쟁으로 내모는 이라크 파병에 동의한 ‘공범자’ 이다. 민노당이 국회에 가면 반드시 이라크 파병안을 국회에 상정하겠다” 며 “사회가 총체적인 개혁을 원하며 그 개혁을 이끌 선두는 민주노동당"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은평 주민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공공의료서비스 개선과 함께 역교부금제도 창설을 주장했다.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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