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의 인지도냐, 송미화의 탄핵 심판이냐

[4·15 총선 격전지② 서울 은평을] 유권자들 "솔직히 너무 헷갈려"

등록 2004.04.06 11:12수정 2004.04.0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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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총선 분위기 난다'. 은평을 각 정당의 선거 홍보물이 게시됐다. ⓒ 김진석

"은평을에선 이재오 따라갈 사람이 없어. 개인적으로 나쁜 감정도 없고 또 평소에 부지런히 지역주민 만나러 다니는 모습도 보기 좋았지. 그런데, 탄핵이 너무 엄청났다. 많이 배우지 못한 내가 봐도 그건 정말 아니야. 나라 망신이지. 솔직히 너무 헷갈려. 투표 당일 날 가봐야 알 것 같아."

은평구 불광역 부근 대조시장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유아무개씨(58)의 설명이다.

관록을 내세운 한나라당 이재오(58) 후보의 수성인가, 아니면 열린우리당 여성 정치인 송미화(42) 후보의 패기가 결실을 맺을 것인가. 뉴타운 개발로 관심을 얻고 있는 은평을 지역은 3선에 도전하는 이재오 후보에게 7명의 정치 신인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의 3월 19∼20일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2∼4.4%포인트)와 <동아일보>가 3월 27일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화설문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송미화 후보가 이재오 후보를 5%-22% 사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송 후보가 쉽게 승리를 낙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선거운동이 본격화된 지금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모두 이 곳을 접전지역으로 분류해 선거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은평을은 한나라당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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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 ⓒ 김진석

서울 서북단에 위치한 은평을은 서울시 25개지역 자치구 중 재정자립도가 29.1%(2003년 기준)로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은평을은 그린벨트 및 군사시설 보호 지역으로 오랫동안 지정돼 다른 서울 지역에 비해 지역 개발이 더딘 소외 지역으로 꼽힌다.

은평을은 15대와 16대 모두 이재오 후보를 선택했을 만큼 한나라당 색채가 강한 지역이다.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돌아다녀 '자전거 의원'으로도 불리는 이재오 후보는 '철저한 지역구 관리'로 정평이 나있다. 후보 인지도만큼은 이재오 후보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게 주민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그러나 '탄핵안 가결'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한나라의 텃밭이었던 은평을에도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우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김진애(서울용산) 후보와 함께 여성으로서 지구당 국민 경선을 통과한 송미화 후보가 이재오 후보를 바짝 따라 붙고 있다.

제5대 서울시의원으로 일하며 시민단체가 뽑은 최우수 서울시의원으로 선정된 송미화 후보는 200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상근 자문위원 등을 거쳐 환경과 여성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냈다.

한편, 탄핵 후 상승한 당지지도에 힘입은 민주노동당 정태연(37) 후보와 민선 1ㆍ2기 구청장을 지낸 이배영씨의 아들 민주당 이성일(36) 후보가 반전을 노리며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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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후보 은평을 현안에 비슷한 공약 제시"

4명의 후보는 은평을의 주 현안으로 크게 뉴타운 개발에 따른 주거환경 개선과, 교육 환경 개선, 서민 경제 회생을 뽑았다. 지난 3월 24일 서울시는 은평을 진관 내, 외동 일대의 뉴타운 개발을 시작했고, 현재는 이에 따른 보상체계를 주민들과 논의 중이다.

한나라 이재오 후보는 지역 공약과 관련 "뉴타운 개발과 연계해 청계천에 이어 불광천에도 물고기가 살 수 있는 물이 흐르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특히 "한나라당을 새롭게 제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겠냐?"며 "지역을 대표하며 소신 있는 철학을 지닌 인물이 누구인지 생각해 달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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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송미화 후보 ⓒ 김진석

열린우리당 송미화 후보는 "신촌 등지를 연결해 문화적 밸리를 형성하기 위한 '경전철' 도입을 구상 중"이라며 "서울시가 추진하는 뉴타운 개발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거주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지 않는 적합한 보상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후보는 "항상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나라를 구했던 건 결국 국민들이었다"며 "국민을 두려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 무역회사 경영인으로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민주당 이성일 후보는 '경제전문성'과 '국제감각'을 강조하며 은평을을 '장사하기 좋은 지역, 기업 활동하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문화적 도시 환경을 위해 통일로에 통일기념관을 짓고, 지역에 영화 세트장을 유치할 것"이라며 "주민과 똑같은 모습으로 가까이서 생활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주노동당 정태연 후보는 상승한 당의 인지도를 선거 운동과 연결시킬 생각이다. 그는 "당의 진보적 성격을 살려 민생을 위하는 당이 어떤 당인지 보여 줄 것"이라며 "은평구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역교부금 제도 도입"을 내걸었다.

또 그는 "출산, 육아, 교육, 주택, 의료, 노인 등의 문제는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가 공유할 공적 문제"라며 "은평을 서민의 민생 안정과 공공 사회 복지 서비스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선거 일정에 맞춰 본격적으로 홍보와 교육자료를 준비하는 은평을 선관위 한 관계자는 "선거법 개정이 늦어져 선거 운동에 대한 후보들의 질문과 또 선거법에 관련된 집시법을 묻는 유권자들의 질문이 많았다"며 "아직까지는 불법 선거 운동에 대한 적발이나 고발 건이 없었다"고 밝혔다.

정당론과 인물론 팽팽히 맞서

기자가 만난 은평을 유권자들은 이재오 후보외에 다른 후보에 대해서는 정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은평을 유권자들은 '인물론'과 '정당론'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벌어진 '탄핵안' 사태에 대해 은평을 유권자들은 할 말이 많았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탄핵'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너무했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이재오 후보의 모습을 TV를 통해 본 유권자들은 "정말 헷갈린다, 이번엔 정말 모르겠다"며 흔들리는 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솔직히 우리같이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후보들 개인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도 시간조차도 없다. 또 게다가 모름지기 정치란 제 아무리 사람이 좋다고 해도 혼자서는 잘 할 수 없는 것이라 본다. 결국 당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은평을 대조 시장에서 15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이재기(56)씨는 냉정했다. 그는 "은평을에서도 우리당과 한나라가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이라며 "어떤 세대가 얼마나 투표에 참여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지도를 바탕으로 뛰고 있는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와 풀뿌리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를 선보이겠다는 송미화 후보가 어떤 승부를 펼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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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인 5일 은평구 선관위는 홍보물 배포를 위한 마지막 작업이 한창이다. 홍보물을 분류하고 봉투에 넣고 있는 고등학생 자원봉사자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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