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신호가 가고 전화벨이 울렸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고참의 눈치를 보며 다시 전화를 했다. 역시 신호음만 울렸다. 다른 병사들에게 순서를 양보하고 난 후, 다시 차례를 기다렸다. 마음은 저절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다시 내 차례가 되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저 거기 무사히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어머니는 가족은 모두 무사하다며 오히려 내 안부를 물으셨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와 가족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내가 있는 이 곳에서 시작된 그 전선들이 가족이 있는 곳까지 닿아있다는 걸.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전화벨 소리가 우리 집 거실에도 울려 퍼지고 있다는 걸.
군대에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등병 시절, 마치 먼 외계의 별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그 막막함을. 그날 전화는 그렇게 나와 가족을 이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가 항상 따뜻한 느낌만을 전해준 것은 아니다.
조금씩 그녀의 편지가 도착하는 횟수가 줄어들어도, 조금씩 그녀의 면회 횟수가 줄어들어도 나는 조금도 속상하지 않았다. 서로가 있는 곳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뿐이며, 지나치게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오히려 생활의 리듬을 깨뜨릴 뿐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병장을 달면서 그녀는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졌다. 아마도 졸업을 앞둔 그녀의 상황과 계속 학교를 다녀야하는 내 상황이 일으키는 불협화음 때문이리라. 하지만 불협화음도 때로는 좋은 음악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믿으면서, 불안정한 멜로디를 지나 곧 조화로운 선율이 이어질 거라고 나는 애써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말년 휴가를 정확히 1주일 앞둔 날, 그녀의 편지가 사약처럼 내게 도착했다. 투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처럼 그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았는데, 그 편지에 어떤 말이 담겨져 있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