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만난 프랑스인 '전쟁 의사'

[현지보고] 오른쪽 검지 잃고도 전쟁터 누비는 닥터 자크

등록 2004.04.21 09:30수정 2004.04.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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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림- 조승연

그림- 조승연

2003년 4월 15일, 티그리스 강변에 여전히 붉은 저녁놀이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으나 바그다드의 어느 곳에도 불빛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도, 전기도, 전화도, 차도, 시장도, 식당도, 병원도….


아무 것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바그다드의 밤. 알파나 호텔에서 국제이라크평화팀 리더인 캐시에게 한국에서 마취제를 가지고 왔다고 하자 프랑스 의사 한 명을 소개해주었습니다. 프랑스인 닥터 자크.

다음날 아침 그를 알파나 호텔 로비에서 만났습니다. 의사 가운은커녕 면바지에 흰 티셔츠 차림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는, 백발에 안경을 끼고 아인슈타인보다 조금 더 뚱뚱한 몸집에 온화한 인상을 가진 평범한 할아버지였습니다.

한국에서부터 마취제 몇 박스를 가져왔다고, 분쟁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고, 그러나 이 약을 꼭 필요한 곳에 나누어주고 싶다는 제 서툰 설명을 들은 그는 저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며칠 동안 자기와 같이 다닐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와 함께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사담 정형외과. 병원 입구에서 병원 기자재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서 있던 이들이 자크가 나타나자 환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한 사람의 의사가 총을 들고서 약을 약탈해 가는 사람들로부터 병원을 지키며, 폭격 속에서 죽어 가는 이들을 치료했다는 이 병원. 그가 목숨을 걸고 병원을 지키자 떠났던 의사들이 한두 명씩 돌아와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었습니다.

자크 할아버지는 그날도 그 다음날도 바그다드에 있는, 문을 연 병원을 함께 찾아다니며 마취제 샘플을 보여 주었습니다. 3일째 되던 날 아침에 찾아간 이시칸 아동병원. 한 아이가 고성을 지르며 울부짖는 가운데 마취제 없이 아이의 찢어진 이마를 꿰매느라 젊은 의사는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자크가 그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도와 주어도 되겠냐고. 자크가 아이의 이마를 가만히 만지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자크는 바늘을 들고 몇 번의 손놀림으로 아이의 상처를 꿰매 주었습니다. 어느 곳에서건 한순간도 의사로서의 일을 쉬지 않는 그. 수술을 마치거나 누군가를 돕고 나면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그. 그의 얼굴에서 저는 처음으로 직업인 의사가 아니라 치유자 의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온 저는 물이 안 나와 씻지도 못한 채 로비에 앉아 이라크 챠이를 마시며 처음으로 그에게 살아 온 여정을 물었습니다.


1967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한 그해, 그는 베트남에서 다른 의사와 함께 하루에 150건의 수술을 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의사가 필요한 때는 전쟁 중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후 그는 37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쟁터와 분쟁 지역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해서 자기 별명이 '전쟁 의사'랍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를 창립해 두 번이나 의장을 지내기도 했고, 1980년대에는 '언덕 위의 의사회'에서, 그리고 AMI라는 국제의료지원기구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의약품을 가져와 필요한 곳에 무사히 전달하고 나면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전쟁 의사가 필요한 건,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전쟁 중일 때뿐이에요. 이라크엔 이미 의사들이 충분히 많이 있어요. 그들의 속도로 그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넉넉히 이 혼란을 극복할 거예요. 그들을 믿어야 해요."

그의 오른손엔 검지가 없습니다. 전쟁터에서 수술을 하는 중에 총에 맞아 손가락을 잘라냈다고 합니다. 정형외과 의사가 오른손 검지를 잃는다는 것은 피아니스트가 손가락을 잃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자크는 이틀 후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5월 3일. 3주 동안 조사와 약품 전달을 마치고, 1000km에 이르는 이라크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돌아보니 낯선 사람입니다. 그는 프랑스 기자라며 닥터 자크에게서 제 이야기를 들었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는 그에게 자크에 대해 물었습니다.

"닥터 자크는 프랑스에서 살아 있는 것 자체를 기적으로 여기는 존경받는 의사예요. 지난 이라크 전쟁 기간 프랑스의 모든 언론에서 그의 이야기가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고요."

그는 이야기를 마치고 위성전화를 꺼내 파리로 전화를 걸어 주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자크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괜찮으냐고, 이제 돌아가는 길이냐고, 언젠가 또 보게 될 거라고. 조심하라고, 자크 할아버지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저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래요. 사는 동안, 평화 운동을 위해 죽음이 있는 곳으로 가는 이 걸음을 걷는 동안, 단 사흘 그와 함께 바그다드 시내를 걸으며 그에게 배운 평화의 길을 저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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