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차별 해소 미루는 것은 죄악

[10대개혁의제⑦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동당 진출로 더 큰 기대

등록 2004.04.25 15:55수정 2004.04.26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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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관심 끝에 새로 구성된 17대 국회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큽니다. 오마이뉴스는 17대 국회에 거는 네티즌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17대 국회, 이것만은 해결하라>를 집중기획으로 마련했습니다. 아래는 그 일곱 번째로 17대 국회가 처리해야할 시급한 과제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대한 전망을 다뤘습니다... 편집자 주)

작년 11월 12일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노무현정권 규탄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고 이용석씨 조합원의 영정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
작년 11월 12일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노무현정권 규탄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고 이용석씨 조합원의 영정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오마이뉴스 권우성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국회의사당을 청소하느라 바쁜 손을 놀리고 있는 박아무개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국회가 용역 계약을 맺고있는 청소업체에 소속되어 작년 5월부터 국회 청소일을 해오고 있지만 적은 임금에 아파도 해고당할까봐 쉬지도 못한다.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처지라 퇴직금은 물론 4대 보험 혜택도 없다.

“기자양반한테 내 처지 늘어놓아도 뭐 바뀌는 것 있겠어? 괜히 (업체로부터) 불이익이나 받을지 모르지.”

박씨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이미 체념했다는 투의 말을 남기고 남은 구역 청소를 해야한다면 자리를 떴다. 현재 국회에는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된 김씨와 같은 비정규직을 제외하더라도 직접 고용된 비정규직의 노동자 규모가 6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국정감사 인턴, 도서관 일용직, 행정 보조, 조경 업무 등에 종사하고 있다. 평균 월급은 100만원 정도에 불과하고 특히 일용직의 경우 일한 날 수에 따라 임금을 받기 때문에 받는 일거리가 없는 날을 감안하면 받는 돈은 더 줄어든다.

억대가 넘는 연봉과 각종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들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쥐꼬리만한 월급이 손에 쥐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17대 국회의 개원을 기다리고 여의도의 이중적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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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에 비정한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비정규직에 비정한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 등 법적보호 장치가 가장 허술하기로 두 손가락 안에 꼽힌다.

작년 11월 노동부가 세계은행 그룹이 발표한 ‘노동자 고용과 해고’ 보고서를 기초로 각국의 고용관련법 등을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OECD 29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비정규직의 고용과 해고가 쉬운 국가로 분류됐다. 한국의 비정규직 고용규제 지수는 33(수치가 높을수록 규제법안이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으로 OECD 평균보다 한참 낮은 수치를 보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한 비정규직의 문제는 더 이상 해결을 미룰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2003년 말에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이용석씨가, 2004년 벽두에는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박일수씨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약속하며 집권한 노무현 정부 1년동안 벌어진 일이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며 분신한 고 이용석씨의 영결식 모습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며 분신한 고 이용석씨의 영결식 모습오마이뉴스 이승훈
"비정규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것"

"노예문서 같은 비정규직 관리세칙을 파기하고 고용안정을 외치는 우리의 요구는 당연하며 마땅히 쟁취해야 한다. 파업을 준비하며 사쪽의 많은 부당 노동행위들을 보면서 우리의 싸움이 얼마나 힘들까 가슴이 미어온다” - 고 이용석씨 유서중에서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어차피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신분이 한점 부끄럽지 않다. 노동자신분에 보람과 긍지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며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차별과 멸시, 박탈감, 착취에서 오는 분노...” -고 박일수씨 유서 중에서


민주노총 금속연맹이 지난 6일 내놓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차별과 노동탄압 사례집’에도 고 박일수씨가 겪었던 것과 같은 하청노동자들의 차별받는 현실이 생생히 담겨있다.

H사 하청노동자인 김아무개씨는 주야 맞교대에 잔업특근 철야 다 채워서 월 400시간 일해서 받는 임금이 세금 떼고 나면 87만원이 전부였다. 그가 받은 시급은 2350원으로 법정 최저시급 2510원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은 것이다.

또 다른 하청노동자 이아무개씨는 야간근무를 하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려고 조퇴를 신청했지만 관리자가 끝내 이를 받아주지 않아 결국 현장에서 쓰러졌다. 그는 병원에 옮겨져 신경성 대장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비정규직 차별 17대 국회에서는 해소될까

작년 12월 6일 열린 `2003년 전국민중대회` 모습
작년 12월 6일 열린 `2003년 전국민중대회` 모습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부는 비등해진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비난 여론 속에 비정규직보호법의 입법에 나서기로 했다. 노동부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마련,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해소와 남용규제를 위한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노동부 안에는 임금과 근로조건 등에 관한 불합리한 차별금지 원칙이 명시된다.

열린우리당도 당정협의를 통해 노동부가 마련한 입법안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 보호법을 10대 민생우선법안에 포함시켜 우선 처리키로 했다.

유련 열린우리당 전문위원은 “실질적인 차별 해소를 위해서는 임금,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노동차별규제위원회를 설치해서 노동현장에서 차별여부를 심의하고 시정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은 우선 ‘비정규직 차별실태 조사특위’를 국회에 설치할 것을 제안했고 17대 국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시정에 역점을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동당이 보기에는 현재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추진 중인 비정규직 보호입법도 부족한 점 투성이다. 민주노동당은 총선공약으로 ▲파견근로 금지 ▲탈법적 하도급을 통한 채용금지 ▲임시직의 경우 1년 후 정규직 전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등을 내놓은 상태다.

박창규 민주노동당 정책부장은 “사실상 사용자들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파견근로자 보호에 등에 관한 법률은 폐지하고 정부가 나서서 공공성을 강화한 고용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며 “근로기준법의 개정을 통해서 동일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경우 노동조건의 차별을 금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17대 국회에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또 정규직 차별 해소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이미 형성됐다. 문제는 입법기관인 국회의 관심과 의지다.

조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그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막강한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행정부보다 더 비정규직 문제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며 “앞으로 법안의 내용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텐데 국회가 의지를 가지고 공청회도 열고 전문가 의견도 수렴하는 등 의회의 본래 기능을 회복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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