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땐 마이크를 꺼라?

[10대 개혁의제 ②] 시위자 발목잡는 '집회금지법' 재개정되나

등록 2004.04.21 17:56수정 2004.04.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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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관심 끝에 새로 구성된 17대 국회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큽니다. 오마이뉴스는 17대 국회에 거는 네티즌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17대 국회, 이것만은 해결하라>를 집중기획으로 마련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 제하의 기획 기사에 이어 두번째 기사를 내보냅니다... 편집자 주)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여의도 국회앞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집시법 개악을 규탄하며 항의의 뜻으로 법전을 불태웠다.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여의도 국회앞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집시법 개악을 규탄하며 항의의 뜻으로 법전을 불태웠다.오마이뉴스 권우성
"7000여명 참가자들은 'X'자를 붙인 마스크를 쓰고 피켓을 든 채 침묵시위를 벌였다. 마이크를 잡은 발언자들은 여간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자칫하면 80데시벨이 넘기 때문이다. 징이나 꽹과리 등 풍물패 길놀이는커녕, 민중가요도 없어 더욱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사복을 입은 경찰이 집회장 안에 들어와 집회 진행에 대해 주최측 인사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애초 SOFA 개정을 위한 이날 집회는 용산 미군부대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군부대 앞은 집회 금지.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가 없는 지역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운좋게 찾았다고 해도 학교 앞은 행진이 안 된다. 서울 시내에만 2229개의 학교시설이 산재해있다. 하긴 어차피 대부분의 도로가 주요도로여서 행진은 애초부터 기대도 하기 어렵다.

주최 단체는 3달 전부터 이날 집회를 준비했지만 720시간, 즉 약 한달 전이 되어서야 집회를 신고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마지막까지 장소를 확정하지 못해 실무진들이 애를 태웠다."


이는 지난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집시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에 따른 '합법 집회'의 가상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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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특히 인권단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집시법 개정을 "사실상의 집회금지법"이라며 반대의 뜻을 피력해왔다. 집회와 시위를 강력한 무기로 삼아 자신의 뜻을 알리고 힘을 행사하는 사회단체나 노조에게 집시법 규정 강화는 헌법상 보장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사회단체들은 집시법 시행에 맞춰 지난 3월 '개악집시법 대응 연석회의(이하 '집시법연석회의')'를 꾸리고 공동의 대응을 모색해왔다. 아예 집회신고를 내지 않겠다는 단체에서부터 옛 집시법 대로 하겠다는 단체까지 대응 수위는 다르지만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새 집시법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는 데에는 한목소리다.


소리 죽이고 학교, 주요도로 피해 집회 개최?

앞의 '가상시나리오'가 이미 법 시행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도 '가상'인 것은 거의 모든 단체들이 기존 방식대로 집회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들은 "새 집시법으로는 집회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새 집시법은 소음규제, 학교 및 군부대 인근 집회금지, 주요도로 행진 금지 등의 조항을 신설했다. 문제는 이 조항들이 대규모 집회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신설된 집시법 12조 3항은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확성기 등의 사용으로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을 위반하는 소음을 발생시켜서는 아니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 기준을 위반할 경우 경찰은 기준 이하 소음 유지 또는 확성기 등의 사용중지·일시보관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지난 21일 열린 집시법연석회의의 '집시법 소음규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하고 있는 사이, 소음측정기는 86.1 데시벨을 기록했다.
지난 21일 열린 집시법연석회의의 '집시법 소음규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하고 있는 사이, 소음측정기는 86.1 데시벨을 기록했다.권박효원
문제는 이 '기준'이 80데시벨 수준이라는 것. 두 사람의 대화소리가 60데시벨임을 감안할 때, 확성기를 쓰면서 80데시벨 이하로 집회를 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육성으로만 집회를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지난 20일 열린 집시법연석회의 기자회견에서 소음측정기는 대부분 80데시벨 이상의 소음치를 기록했다. 마이크와 이동식 앰프시설만 사용한 결과다.

개정 집시법은 집회 금지장소도 대폭 확대했다.

11조에 따르면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공관,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이나, 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공관(행진은 제외),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기능을 침해할 우려 없는 경우 제외)' 100m 이내 장소가 집회금지다.

12조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주요도시의 주요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해 교통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이를 금지할 수 있다"고 정했다.

또한 18조에 따르면 "학교시설이나 군사시설 주변지역으로 집회 또는 시위로 인하여 학습권, 시설이나 군작전 수행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타인 주거지역이나 유사한 장소로서 집회 또는 시위로서 재산·사생활에 현저한 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경찰은 집회신고서를 접수한 후에도 주최단체에게 금지통고를 할 수 있다.

개정집시법은 야간집회도 금지하고 있다. 총선정국에서 '탄핵무효 촛불문화제'가 금지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이 행사를 주최한 범국민행동 집행부에 대한 경찰의 불구속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직장인들에게는 사실상 평일날 집회에 참가할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는 '황당한 법조항'이라는 지적이 많다.

"집회 개념상 장소 점거·소음 발생 당연, 헌법이 용인한 것"

새 집시법의 집회규제 조항들은 시민불편을 줄인다는 측면도 있다. 지난해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문제 해결, FTA 비준 반대 등의 문제로 서울 시내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졌고 몇몇 집회에서 격렬한 충돌이 발생한 터라 "집회가 너무 많아 불편하다"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집시법연석회의는 이에 대해 "집회 개념 자체가 '다수 군중이 모이고, 모인 사람들끼리 또는 주변 시민들에게 의사를 표시하는 것'인만큼 일정한 장소를 점거하고 소음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론을 펼친다. 헌법은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하는 순간 이미 소음발생 등의 용인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집시법연석회의는 집회에서의 '피해'가 단시간적이고 일시적이라고 설명한다.

소음의 경우, 환경부에서도 "'소음진동규제법'은 활동행위가 지속적이고 시설이 설치된 규제대상에 대해 개선조치하는 것으로 일시적으로 소음이 발생하는 집회시위에 적용하기 곤란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집시법연대회의는 "결국 새 집시법이 촛불대회 등 평화적이고 다양한 방식의 집회가 정착하는 이 시점에서 새 집시법은 불필요한 마찰을 불러 일으킨다. 이후 책임을 피하기 위해 주최단체를 드러내지 않는 게릴라성 시위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 3월 18일 탄핵무효를 촉구하는 광화문 촛불행사에 종로경찰서장 명의로 "야간 촛불집회는 집시법 상 허용되지 않는 미신고 집회입니다"라는 전단이 뿌려졌다.
지난 3월 18일 탄핵무효를 촉구하는 광화문 촛불행사에 종로경찰서장 명의로 "야간 촛불집회는 집시법 상 허용되지 않는 미신고 집회입니다"라는 전단이 뿌려졌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사회단체, 17대 국회에 집시법 재개정 요구

지난해 말 집시법 통과 당시 사회단체들은 적극적인 저항을 펼치지 못했다. 당시 국회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 FTA 비준, 의원 석방안 등 굵직굵직한 사회현안들이 한꺼번에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적 성향의 17대 국회 구성을 앞둔 지금, 시민사회단체는 다시 집시법 개정을 의제화시킬 움직임이다.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을위한범국민행동' 역시 5월초 대국민토론회에서 집시법 문제를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집시법연석회의는 이미 '불복종의 날' 제정, 서명운동 등을 계획하고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과 연계해 집시법 개정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이중 민주노동당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당 인권위원회 차원에서 인권단체들과 함께 현행 집시법에 대해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열린우리당 역시 지난해 말 집시법 개정에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어, 17대 국회에서 집시법 재개정 전망은 밝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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