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집, 개방되던 날

[참관기]인천가톨릭대학교 지난 2일 제41회 성소주일 행사 열려

등록 2004.05.02 23:54수정 2004.05.0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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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운동장에서 열린 미사

대운동장에서 열린 미사 ⓒ 지용민

제41회 '성소주일'을 맞이해 지난 2일 경기도 강화군에 위치한 인천가톨릭대학교(96년 설립)로 향했다. 이곳은 평소 엄격한 학칙과 규율을 바탕으로 사제를 양성하는 곳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은 자유롭지 못하다. 1년에 한 번 성당은 물론, 기숙사까지 개방하는 날이 바로 '성소주일'이다.

대운동장에서 열리는 10시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 경기, 서울 등지에서 몰려든 3000여명의 신자들은 간간이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관광버스 등을 이용해 학교로 모여들었다. 인천교구 최기산 주교의 집전으로 진행된 미사의 주제는 '너는 내 사람이다'였다.

재학생 아들을 보러 온 부모에서부터, 성당출신 학사(신학대학교 재학생들을 일컫는 표현)를 보기 위해 온 아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문객들이 운동장 미사에 참여했다.

미사가 끝난 뒤, 사람들은 교정 곳곳을 둘러봤다. 교육관, 기숙사, 성당, 식당 등 어느 한 곳도 신기하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신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 학교측은 이례적으로 방문객들의 자유로운 관람을 위해 이곳을 전면 개방했다.

신학생들은 3학년까지는 2인 1실, 4학년부터 대학원생까지는 1인 1실을 사용한다. 이 학교의 규율은 대단히 엄격해, 오후 7시부터는 '묵언'을 수행해야 한다. 말을 하면 안 된다. 각 방마다 연결돼 있는 인터넷도 7시부터는 단절된다. 오후까지의 수업을 고려한다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제한돼 있는 셈이다.

이제 막 입학한 1학년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임의로 사용할 수 없다. 외부와의 유일한 소통 수단은 '편지'. 이 때문에 1학년들의 편지함에는 갖가지 사연을 담은 편지들이 수북히 쌓인다. 반면 고학년이 되면 이메일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빈 편지함이 못내 섭섭한 신학생들 중에는 '정기간행물'을 신청해 위안을 삼기도 한다고.

신학생들이 그린 '신학생들의 하루'

이날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프로그램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신학생들의 1년 생활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신학생의 하루'와 연극 '크리스마스 죽이기'가 있었다.


신학생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하루'를 표현했을까. 궁금함도 잠시, 동영상에 담긴 그들 하루의 중심에는 기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성당에서 혼자 하는 기도와 신학생들이 단체로 교정을 거닐며 기도하는 '로사리오(묵주기도)'가 여러 장면 담겨 있었다. 10분 남짓 상영된 이 영상물이 끝난 뒤 불이 켜졌을 때, 눈물을 흘리는 아주머니에서부터 졸다가 깬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반응은 다양했다.

이들이 준비한 연극의 인기는 대강당이 초만원을 기록할 정도로 대단했다. 재학생 8명이 출연한 이 연극은 '마귀들이 신자의 믿음을 뺏는다'는 내용으로 가난한 사람에게는 돈을 주고, 병든 자들에게는 병을 고쳐주는 대가로 '예수를 팝니다'는 약속을 받아낸다는 얘기였다.


돈과 건강 때문에 예수를 팔았던 신자들이 나중에 마귀들을 다시 찾아와 '예수 없이는 못 살겠으니 예수를 돌려 달라'고 말하는 지극히 신앙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삽니다'라고 외치는 마귀들에게 어린 방청객들이 매우 큰 호응을 보여 극의 전개가 잠시 끊어지기도 했다.

연극은 오후 3시에 끝이 났다. 이 무렵,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교정 곳곳에서는 신학생들이 옷과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날씨 탓에 지나는 사람들이 쳐다만 볼 뿐,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성소주일을 맞이해 가톨릭대학교 개방 시간은 오후 3시 30분까지였다. 방문객들은 서둘러 기념 촬영을 하며, 짧은 개방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방문객들이 학교를 빠져나가면, 재학생들은 오후 4시부터 교정을 깨끗이 청소한다. 그리고 또 다시 7시부터 묵언에 들어갈 것이다.

a 신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 방문이 활짝 열렸다. 주인이 없어도 맘대로 들어가 볼 수 있었으며, 방문객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신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 방문이 활짝 열렸다. 주인이 없어도 맘대로 들어가 볼 수 있었으며, 방문객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 지용민


a 수녀님들이 나와 젊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한 여학생이 수녀복 장식에 얼굴을 대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수녀님들이 나와 젊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한 여학생이 수녀복 장식에 얼굴을 대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지용민


a 방문객들의 관심을 끈 4중주. 흰색 옷을 입고 바이올린을 켜는 분은 가톨릭대에서 영어회화를 강의하는 신부님.

방문객들의 관심을 끈 4중주. 흰색 옷을 입고 바이올린을 켜는 분은 가톨릭대에서 영어회화를 강의하는 신부님. ⓒ 지용민


a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 한 연극 공연.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 한 연극 공연. ⓒ 지용민


a 신학생들이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성전 내부.

신학생들이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성전 내부. ⓒ 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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