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에펠탑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에펠탑이 있는 풍경

등록 2004.05.07 15:15수정 2004.05.0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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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오는 날 걸어가 봤던 에펠탑

비오는 날 걸어가 봤던 에펠탑 ⓒ 조미영

파리 여행을 할 때 참 많이 걸었던 기억이 있다. 말로만 듣던 세느 강변도 질리게 구경하고, 대로변에서 볼 수 없는 골목마다의 정취도 차곡차곡 담아두었다. 이로 인해 우리 나라에 비해 갑절로 비싼 교통요금도 줄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소르본 대학에서 퐁피두센터까지, 오페라 거리에서 샹제리제 거리까지 꼭꼭 밟으며 걸어 다녔다.

하루는 루브르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데 비가 내렸다. 몽롱한 저녁 안개비와 와인을 마셔 가벼운 취기까지 겹치니 마냥 좋아져 강 건너로 보이는 에펠탑까지 내리 걸어가 자정을 맞았던 일도 있다.


에펠탑은 파리 시내의 웬만한 곳에서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세느강을 기준으로 에펠탑이 어느 쪽에 보이느냐에 따라 방향을 정한다. 뚜벅이인 나에게 훌륭한 이정표인 셈이다. 에펠탑의 북쪽으로는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다. 해발 130m높이의 몽마르뜨 언덕 위에 세워진 이 성당의 하얀 돔 지붕은 파리의 쾌청한 날씨와 잘 어울려 멀리서도 눈부시게 빛난다.

파리는 유럽에서도 꽤 복잡하고 번화한 도시다. 다른 도시에 비해 규모가 큰 건물이 많다. 그에 비해 가만히 둘러보면 건물끼리 조화를 잘 이루는 듯하다. 유독 도드라지거나 눈에 거슬리는 것은 많지 않다. 아마도 전통과 미를 중요시하는 프랑스인들의 깐깐함 덕분이리라.

a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는 몽마르트 언덕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는 몽마르트 언덕 ⓒ 조미영

에펠탑, 몽파르나스 타워, 퐁피두센터 건립 당시 수많은 지식인들과 시민들의 항의가 줄을 이었던 것에서도 그들의 기질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고초를 겪고 탄생한 건축물은 파리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제 식자들의 반발은 지나친 기우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건축물을 선례를 들어 새로운 건축을 시도한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최고(最高) 최대(最大)'를 내세우며 건축물과 조형물 등을 자꾸만 키워 나간다. 만약 반대 의견이라도 내비치려 하면 방패막이처럼 에펠탑의 사례를 거론하며 '랜드마크'로의 성공을 확신한다. 여기서 '어떻게? 왜?'에 대한 고민과 배려는 철저히 외면되는 것 같다.

a 개선문에서 본 에펠탑이 있는 풍경

개선문에서 본 에펠탑이 있는 풍경 ⓒ 조미영


a 개선문에서 파리 전경

개선문에서 파리 전경 ⓒ 조미영


a 개선문에서 본 몽마르트 언덕 풍경

개선문에서 본 몽마르트 언덕 풍경 ⓒ 조미영

그럼 온갖 비난을 받던 320m 넘는 철 구조물이 파리의 상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우선 파리는 대체로 평평하다. 강을 제외하고는 산이나 고갯길 같은 특이한 지형이 없다. 그래서 유독 파리 시내를 한 눈에 내다 볼 수 있는 몽마르뜨 언덕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건축 당시의 시기로 볼 때 에펠탑은 북쪽의 몽마르뜨 언덕과 거의 대각선으로 도시 중심부에서 꽤 거리가 있는 서남부에 위치해 도심의 어떤 건축물과도 상충되지 않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 즉 에펠탑으로 인해 가려지거나 방해받을 자연 경치가 없게 한 것이다. 이 엄청난 조형물은 자칫 흉물이 될 수 있었음에도 적정한 지형의 알맞은 자리에 묵묵히 위치한 덕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여러 우려와 달리, 오히려 에펠탑은 사람들에게 산이나 언덕처럼 올라가 멀리서 도시를 조망할 수 있게 했고, 방향을 알려주는 구심점도 돼 주었다. 또 각종 전파 안테나를 에펠탑에 설치하는 조건으로 해체의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물론 56층의 몽파르나스 타워는 예외로 치고 싶다. 파리 남쪽의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멀리서 이를 볼 때면 멀쑥하게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말뚝을 박아놓은 듯 어색하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 사람이 꼭대기 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잠시 눈의 호사를 느낄 뿐이다.

a 막대기 같은 건물이 바로 몽파르나스 타워다

막대기 같은 건물이 바로 몽파르나스 타워다 ⓒ 조미영


a 퐁피두 센터에서 보는 에펠탑이 있는 풍경

퐁피두 센터에서 보는 에펠탑이 있는 풍경 ⓒ 조미영


a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는 몽마르트 언덕 주변은 유흥가가 많다!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는 몽마르트 언덕 주변은 유흥가가 많다! ⓒ 조미영

그럼 우리는 어떠한가? 건축가와 그 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빼 놓고는 전혀 쓸모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도시를 꽉 메워간다. 주변경치나 자연환경과는 전혀 상관없고 문화적 가치는 생각할 바도 아니라는 듯. "내 아파트가 최고 높이로 지어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된다면 경제적 가치는 배가된다"는 빠른 셈이 여타의 기능을 다 잠재워 버린다. 이러다 사적을 제외한 대부분이 빌딩으로 채워 질 지도 모른다. 그 안에 덩그러니 남게 되는 남대문과 경복궁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남의 땅을 밟고 서 있는 듯 어색하고 초라해 보일 것이다.

또한 고층 아파트에 살지 않는 한 평소에 남산과 북한산 등은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좋은 전망권을 따라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이 건물 이외의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경관이 돼 버렸다. 몇몇 사람들만을 위한 산과 강이 되는 셈. 그리고 수많은 몇 십 층의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는데 무엇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말인지, 건물이 건물을 막고 선 현실을 보라. 어떤 건물도 이정표가 될 수 없다.

a 에펠탑과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이는 풍경

에펠탑과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이는 풍경 ⓒ 조미영

문득 한강이 가로지르는 서울과 세느강이 가로지르는 파리의 지도를 보며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많이 다르다. 프랑스의 그들은 텅빈 대지에 구조물을 인위적으로 세우면서도 많은 망설임과 고민을 하고 낮은 언덕마저 최고의 효과를 위해 유지하는데 반해 우리는 천연으로 주어진 랜드마크인 사방의 산들마저 뿌리치고 곳곳에 인공물을 세운다. 그러면서 어느 누구도 그 건물들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의 진정한 랜드마크인 '자연'과 함께 나누는 어울림의 문화를 찾아가자! 많은 이들이 같이 공유하는 아름다운 경치의 도시는 그 곳에 살고 있는 이와 그 곳을 방문하는 이들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a 세느강변에서 보는 에펠탑 풍경

세느강변에서 보는 에펠탑 풍경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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