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기디 질긴 나의 PC 잔혹사

10년 넘게 사용한 노트북과 4년 쓴 펜티엄 컴퓨터

등록 2004.05.12 01:53수정 2004.05.1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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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직도 잘 작동되는  나의 고물 노트북 컴퓨터

아직도 잘 작동되는 나의 고물 노트북 컴퓨터 ⓒ 김정은

아침부터 컴퓨터 전원의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순간 눈 앞이 깜깜해졌다. 펜티엄 Ⅳ로 업그레이드 한후 2년동안 별 문제없이 잘 써왔는데 "이제 이 물건이 또 돈달라고 아우성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원연결 부위가 망가져서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해야 한단다. 이제 그만 바꿀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 조심스런 제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정말 질기디 질긴 나와 PC와의 인연이 아닐수 없다.


8비트 애플컴퓨터에서부터 펜티엄 Ⅳ까지

내가 맨처음 컴퓨터를 접하게 된 건 오빠방에 놓여진 8비트 애플 컴퓨터였다. 간단한 BASIC 프로그램으로 연산 실습을 하던 오빠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8비트 PC로도 보석글과 같은 워드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었고, 전자출판의 초기모델인 전산사식이 사용되긴 했지만 폰트의 크기가 정확히 식별할 수 있게 인쇄가 가능한 워드 프로세서의 본격적인 시작은 16비트 컴퓨터부터라고 할 수 있다.

PC를 통해 자유자재로 커서를 움직이고 지우고 저장할 수 있는 그 편리함에 신기해하던 어느 날, 우연히 하드도 없어 A 드라이브로 부팅해야 하는 한물 간 초기 16비트 고물 PC를 5만원에 구입하는 기회가 생겼다. 아래한글 초기버전을 설치하고 그 당시 행망 워드용 프로그램인 하나 워드를 깔아 변환하면서 사용한지 1년여쯤 되었을까?

그 후부터 나는 종이와 연필보다 PC가 더욱 편해졌고 PC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중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93년 당시 큰 맘 먹고 2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삼성 노트북 486PC를 구입했다.


비록 워드나 로터스같은 스프레드시트 혹은 D-base나 E2와 같은 통계 프로그램도 DOS 기반 프로그램이 주라서 윈도 3.1을 구동하는 마우스 볼이 불편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14400bps의 외장형 모뎀에다가 명함관리 프로그램과 칼라 액정화면을 갖춘 내 노트북 PC는 당시만 해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그후부터 회사 동료들 중 사비로 노트북을 구입하는 붐이 일기까지 했을까.

노트북 구입 직후 그즈음 나는 하이텔에 가입해 PC통신을 시작했다. 바로 내앞에 신천지가 펼쳐졌다고나 할까? 그 후부터 노트북 컴퓨터는 한날 한시도 내 책상에서 떠난 적이 없었지만 전혀 다른 환경의 인터넷시대가 급속하게 열리면서 쓸모없는 뒷방마님으로 전락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나의 동지와 다름없는 노트북을 폐기처분해버리고 최신 펜티엄급 노트북을 구입하자니 괜히 정든 노트북 PC를 배반하는 것같아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비교적 새로 나온 물건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믾지만 일단 한번 정든 물건에 대해서는 사망선고를 받을 때까지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성격이 정든 노트북의 퇴출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결국 생각다 못해 2001년 나는 기존의 노트북 컴퓨터는 사무실에서 워드용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대신 집에다 새로운 펜티엄급 데스크탑 PC를 따로 구입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대신 ADSL 모뎀에 PC 카메라와 스캐너까지 설치했다. 내친 김에 자체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게 되었다.

물론 기존 노트북의 워드로 작업한 파일을 집으로 돌아와 HTML로 변환하는 식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이 노트북은 원고를 쓰거나 일정관리를 하거나 용량 큰 그림 파일을 저장해서 이동할 수 있는 착탈식 하드의 용도로서의 소임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 구입한 PC 또한 윈도우 XP 운영체제로 바뀌면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아니, 지금이 어느 땐데..

때는 2002년 가을, 모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 실습실은 한마디로 최신 PC의 전시장이었다. 그러나 PC만 갖다놓았을 뿐 프로그램이라든가 세부적인 면에서 아직 미숙한 상태여서 자연스럽게 시스템 구축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그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그사람들의 한마디가 그동안 둔하게 잠자고 있던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아니 지금이 어느 땐데 아직도 윈도우98을 사용하나. 그런 고물을 버려야되는데…."

그사람 말대로라면 나는 버려야 될 PC를 아직도 별 불편없이 2대나 사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윈도우 98도 그런데 윈도우 3.1 도스체제라니. 결국 나는 이말에 충격받아 강의료를 탁탁 털어 지금의 펜티엄 Ⅳ 컴퓨터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하였다.

그 후 용량상의 문제로 하드용량을 늘리는 등 약간의 변화를 겪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별 문제없이 꿋꿋하게 써오던 컴퓨터였다. 그런데 그동안 별 불평없이 지내오던 PC도 더 이상 못견디겠다며 또다시 바꿔달라고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2003년 봄에 구입한 디지털 카메라도 좋은 것으로 바꿔달라는 무언의 시위인지 지난 번 여행중 메모리카드 하나가 망가져 버렸다.

참 잔인한 5월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는 쓸만하다고 애써 자위해본다. 망가진 전원연결부위는 다시 부품을 교체하면 될 것이고 망가진 메모리 카드 또한 AS가 안된다면 용산 가서 중고로 하나 더 구입하면 되는 소모품 아닌가?

언젠가 액정화면이 갑자기 꺼져버린 고물 노트북 PC를 고치려고 AS센터를 갔을 때 그 곳 기사가 한 얘기가 떠오른다.

"살살 쓰면 한 5년은 더 쓸 수 있겠지요?"라는 나의 말에 기막혀 하며 "지금까지 사용하신 것도 기록입니다. 그런데 윈도 3.1 기반에서 무엇을 어떻게 쓰시려고요."

비록 당시 그 사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빙긋 미소만 지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래한글 2.5에서 작업한 파일이 변환가능할 때까지, 아답터가 제기능을 못하고 액정화면이 부서질 때까지 사용할 겁니다. 비록 워드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못하지만 공간 적게 차지하지, 이동 간편하지 얼마나 좋습니까? 이 노트북은 나의 잔혹한 PC 편력을 증명해주는 소중한 보물이자 애인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연인이랍니다."

나의 연인인 고물 PC들에게 경배를. 지금 나는 이 순간에도 수리를 의뢰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PC 대신 예전의 그 고물 노트북 컴퓨터로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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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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