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댕이쳐진 '꼬진' 핸드폰과 디지털 격차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분투기(2)

등록 2004.05.24 04:43수정 2004.05.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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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직장 선배에게 중학교 다니는 딸애의 핸드폰을 사줘야 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고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핸드폰 사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핸드폰이 벌써 고장났느냐"고 했더니, 이 선배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딸애가 지 핸드폰은 카메라도 안되는 '꼬진' 거라서 가지고 다니기 챙피하다고 하길래 그래도 고장날 때까지 써야하지 않느냐 타일렀더니 얼마 안되서 망가졌다고 사달라고 하더라고."

그 선배는 우연히 딸방을 들어가다가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는데, 바로 딸애가 그 문제의 핸드폰을 바닥에다 수도 없이 내동댕이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고장 안나는게 신기할 정도 아닌가?

결국 그 선배는 견디다 못해 딸애의 핸드폰을 딸애가 고집하는 제조사의 최고가품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참 자식 키우기 어렵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과연 그 아이가 자기 뜻대로 최신 핸드폰을 가졌다면 그 핸드폰으로 무엇을 할까? 기본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 말고도 카메라로 이것저것 찍어 배경화면도 꾸미고 친구들과 서로 보며 즐기고, 64화음 벨소리와 통화 연결음 다운받아 자주자주 교체하면 그 뿐이다.

좀 더 센스 있는 친구라면 찍은 동영상과 사진들을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전송하거나 아니면 USB로 연결하여 인터넷 카페에다 올리는 정도일 것이다.

그 정도라면 굳이 최신의 고가의 핸드폰을 살 필요가 있을까? 고가의 핸드폰의 기능이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MP3 청취문제, 카메라 화소 차이, 그리고 디자인일 터이다. MP3라면 요즘 다기능의 MP3 플레이어가 많기 때문에 핸드폰의 경우 기능이 떨어져 그렇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폰 카메라의 경우도 가장 최신기종의 화소라고 해보았자 디지털 카메라에 못미치는 200만 화소가 겨우 넘는 실정이라, 그 정도로 작품사진을 찍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간단하게 친구들과 사진 찍기에는 최신기종의 핸드폰 카메라가 그리 필요치 않아 보인다. 굳이 선명도를 따지는 작품사진이 아닌 일반 인물사진이나 스냅사진의 경우 인터넷에 올리는 사진은 72DPI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 청소년 모두가 이런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최신기종의 컴퓨터와 디지털 격차


굳이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나라 사람에 비해 유독 새것을 좋아하는 성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지난 기사 '나의 질기디 질긴 PC 잔혹사'란 글을 <오마이뉴스>에 처음 올리기 전에는 시대 환경을 모르는 궁상맞고 뒤처진 사고의 글이라고 비난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잠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아날로그적 세대라 할 수 있는 내가 그 글을 올린 이유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에 대해 너무 민감히 느끼는 대다수 아날로그 세대의 소비자들의 심리 때문이다.

뒤처지지 않겠다는 심리에서 이왕이면 가장 최신모델만을 고집하다보니 아직 쓸만한 PC나 핸드폰 등의 디지털 기기가 폐기물로 버려지는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이는 낭비 뿐만이 아니라 자연 보호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최신기종의 PC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결국 디지털 격차를 느끼고 안느끼고의 문제를 컴퓨터탓으로만 돌려서는 안될 것 같다. 왜냐하면 컴퓨터는 빈 깡통이기 때문이다. 빈 깡통 속에 사용자가 어떠한 프로그램과 기능을 설치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PC는 천양지차의 특성을 지니게 되고 신기하게도 결국 주인의 성향과 개성대로 어느덧 닮아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최신 모델의 메이커 PC를 구입했더라도 그 PC를 쓰는 주인이 바이러스 덩어리인 출처가 불분명한 동영상이나 다운시켜 보고 온라인 고스톱 게임 등이나 간혹하고 그만 두는 식으로, 기초적인 관리조차 하지않고 내버려두면 PC 또한 얼마 못가 단순화된 고물 PC가 되어 먼지가 쌓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인은 또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컴퓨터가 고물이라 속도도 느리고 작동도 에러가 나니 빨리 새것을 구입해야 되겠다.'

그렇지만 저기종의 중고 조립식 PC를 얻었거나 산 사람이더라도 그 때 그 때 스스로의 간절한 필요에 따라 필요한 부품을 직접 구입하여 조립, 장착하고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고 관리해주면 PC 또한 주인을 닮아서 고장도 잘 안나고 작동에러도 없이 주인이 기대하는 최선의 효과를 틀림없이 얻게 해준다.

과연 누가 디지털 격차에 대해 현명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일까? 판단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르지만 여기서 잊어서는 안될 것이 한가지 있다. 컴퓨터는 깡통에 불과하지만 사용자의 애정과 진지함이 들어간 깡통은 더 이상 깡통이 아닌 한치의 오차없는 유용하고 정확한 도구로 재탄생하여 주인과 함께 숨쉬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깡통에 불과한 PC를 가장 PC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최신부품이나 기술, 하루가 다르게 약간의 기능만 첨가시킨 새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체들이 아니라 그 기술과 부품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다.

정신없이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바로 인간 스스로의 정리된 의지와 선택이 무척이나 필요한 세상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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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기디 질긴 나의 PC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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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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