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원, 자연을 품은 아름다운 정원

[여행지에서 쓰는 엽서 22] 희원과 호암미술관

등록 2004.05.19 22:18수정 2004.05.2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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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미술관에 가기전 순박한 얼굴의 석인들을 먼저 만났습니다.

미술관에 가기전 순박한 얼굴의 석인들을 먼저 만났습니다. ⓒ 구동관

완연한 봄날, 호암미술관에 갔다. 오래전부터 찾고 싶었던 곳이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바쁜 발걸음을 하얀꽃들이 불러 세운다. 살랑거리는 손짓을 따라가니 석인들이 늘어선 호숫가다. 석인을 보면 당연히 무덤이 떠오른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무덤의 분위기 때문에 어린시절에는 그 석인들이 무서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석인들, 호수가 산책길에 조금 비켜 서 있는 그 석인들은 순박한 얼굴 그 자체다

a 전통정원 희원으로 들어가는 보현문 입니다.

전통정원 희원으로 들어가는 보현문 입니다. ⓒ 구동관

석인들의 미소를 간직한 채 '희원'을 찾았다. 한국 전통 정원의 요소를 충분히 살려 만든 정원이라는 '희원'을 지나야만 미술관으로 갈 수 있다. 물론 미술관에만 볼일이 있다면 희원을 통하지 않는 길도 있다. 하지만 내가 미술관을 찾은 목적의 반은 '희원'을 둘어보는데 있다. 미술관을 둘러싼 정원이 '희원'이고, 그 정원의 중심 건물이 미술관인 셈이다.


a 대나무 정원인 죽림에는 지금은 매화나무가 있습니다.

대나무 정원인 죽림에는 지금은 매화나무가 있습니다. ⓒ 구동관

'희원'을 들어가는 문은 덕수궁의 유현문을 본따서 지은 보화문이다. 그 문을 지나면 죽림, 간정, 소원을 지나 주정으로 아름다운 길들이 이어진다. 그중 죽림은 원래 대나무를 심어 가꾼 정원이지만 지금은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기온이 맞지 않아 시든 대나무를 매화로 바꿔 심은 것이다. 소원은 400여 평의 작은 정원이며, 연못의 모습이 풍덩 빠져 있는 주정은 1200평 쯤 된다.

a 소원의 모습입니다.

소원의 모습입니다. ⓒ 구동관

'희원'에서는 자연의 모든 요소가 정원이다. 물이며 돌, 풀과 나무들 심지어는 파란 하늘까지 정원의 소품이며, 그 자체가 정원이다. 그런 요소들을 적당한 자리에 두고, 그 요소들의 눈치를 살펴 표나지 않게, 그게 힘들다면 약간의 표만 나도록 건물을 세운 것이 우리 집들이 아니었을까?

a 정원들마다 언덕에 층계를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은 화계가 있습니다.

정원들마다 언덕에 층계를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은 화계가 있습니다. ⓒ 구동관

'희원'을 둘러보며 감탄하는 것은 자연을 대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다. 감춘 듯 하나 조금씩 마음을 열며 보여주는 다양한 소품, 언덕을 나눠 계단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은 화계, 물이 졸졸 흘러 들어 작은 연못을 이루게 하고 그곳에 그림자가 어릴 정도의 위치에 정자를 만든 것, 먼 산과 호수까지 정원으로 끌어 들여 조화를 만든 것은 자연과 친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을 구도이다.

a 주정입니다. 연못에 미술관이 아른거립니다.

주정입니다. 연못에 미술관이 아른거립니다. ⓒ 구동관

미술관에서 아름다운 작품들을 돌아보며 느낀 것도 정원에서 느낀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보와 보물이 100점이 넘고 '교과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작품'이 모여 있을 정도로 귀중한 작품들이 많은 미술관의 전시품 중에도 가끔은 삐뚤고, 가끔은 구부정한 모습들이 보였다. 그런 작품들에는 억지로 틀에 맞추어 정형화한 것들보다 더 귀한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a 양대는 파란 잔디가 있는 곳입니다. 미술관 본관 바로 앞에 위치합니다.

양대는 파란 잔디가 있는 곳입니다. 미술관 본관 바로 앞에 위치합니다. ⓒ 구동관

미술관여행을 마치고 뒤돌아 나오는 길. 미술관 앞쪽의 양대와 조화를 위해 만들었다는 월대에서 시작된 계류가 노래 소리처럼 흐르고 있다. 오랜 세월을 지낸 흔적으로 푸른 이끼를 두르고 서 있는 나무와 바위 틈으로 봄 꽃 향기가 스쳐간다.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a 후원에 철쭉이 지고 있었습니다.

후원에 철쭉이 지고 있었습니다. ⓒ 구동관



a 주정에서 양대로 오르내리는 돌 계단입니다.

주정에서 양대로 오르내리는 돌 계단입니다. ⓒ 구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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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홈페이지 초록별 가족의 여행(www.sinnanda.com) 운영자 입니다. 가족여행에 대한 정보제공으로 좀 다 많은 분들이 편한 가족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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