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아니면 다 가출소녀인가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등록 2004.05.21 10:00수정 2004.05.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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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0대 비학생 청소년

10대 비학생 청소년 ⓒ 김윤섭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70세가 넘은 노장들로 이뤄진 밴드 이름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몇 해 전 우리나라를 다녀가기도 했던 이들의 곡은 특히 비오는 날에 들으면 좋다.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지연) ★★★★
- 사람들의 웃는 모습이 좋았다. 나도 언제쯤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그 나이에도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웠다(광희)★★★★☆
- 지루했다. 그러나 음악은 좋았다(경민)★★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 역에 내려 50m쯤 걸어가면 이렇게 수업을 하는 곳이 있다. 아니다. 이들에게 수업이라는 표현은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다. 씨앗, 별, 꿈틀, 민들레, 우주인 등 학교 이름들이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가. 성덕, 경동, 홍일, 명성 같은 학교 이름에 길든 사람들은 대안학교 이름인 별, 씨앗, 꿈틀 등이 어쩌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더욱이 청소년들의 쉼터인 ‘민들레 사랑방’과 ‘우주인’은 신비한 세계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이곳에 모인 탈학교 청소년들이 바로 영화를 본 뒤 그 느낌을 별로 달아 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일까. 경민이의 점수만 짜다. 그렇다고 딴죽을 거는 사람은 없다. 이 점수는 성적순위에 따라 매타작이 시작되는 학교 성적과 하등 관계가 없는, 느낌 그대로 별을 달아 주면 되는 것이다.

씨앗, 별, 꿈틀, 민들레, 우주인…

a 자퇴생은 곧 불량청소년이라는 시각은 편견일 뿐이다. 민들레 사랑방의 장난꾸러기 경보(오른쪽)와 경민이

자퇴생은 곧 불량청소년이라는 시각은 편견일 뿐이다. 민들레 사랑방의 장난꾸러기 경보(오른쪽)와 경민이 ⓒ 김윤섭

서울시 중구 수표동 서울시립청소년수련관 4층에 둥지를 튼 ‘민들레 사랑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곳에 모인 탈학교 청소년들의 표정이 밝다.


학교를 계속 다닌다면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중학교 2학년 때 자퇴를 결정한 정현(18)도, 전교생을 운동장으로 집합시킨 후 감쪽같이 소지품검사를 당했던 그날 배신감에 울었다던 종선(15세)도 분명 해맑은 소녀의 낯빛이다.

그러나 종선은 언니뻘 되는 정현과는 다른 입장에 놓여 있다. 의무교육으로 인해 자퇴가 불가능한 그는 수업일수 중 삼분의 일을 등교하지 않아야 퇴학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딘가 모르게 당돌해 보이는 종선. 그는 교육자 집안이나 다름없는 가정 출신이다. 아버지만 길을 달리했을 뿐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를 잘 다니던 종선이 2학년 2학기에 접어들어 자퇴를 선언하자 그의 아버지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영원히 청소년으로 머물 수 없는 6년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보면 잠깐 머물다 가는 정류장이거나 바람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종선은 통과의례나 다름없는 그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운동을 하고 있는데 수업시간이 지나도록 교실로 들여보내지 않은 적이 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시간에 소지품검사를 한 거 있지요. 그때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아세요? 선생님이 학생을 못 믿는데 학생들만 왜 선생님을 믿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학교와 선생님, 친구들과의 결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종선은 난생 처음 아버지의 손찌검을 맛보아야 했다. 넉넉잡아 3개월만 잘 다니면 사춘기의 바람도 잦아들 것이라는 아버지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종선에 비하면 현정은 아버지와 불편한 관계를 좁혀 보고자 노력을 많이 한 편이다. 빈둥거리며 지내던 그가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하자 식구들은 놀라워했다. 그러나 잔뜩 희망을 안고 들어간 고등학교는 그가 보기에 출구와 퇴로마저 막혀 버린 경쟁이 전부였다.

a 서울 동대문의 한 패션타운에서 청소년들이 또래의 공연을 보고 있다.

서울 동대문의 한 패션타운에서 청소년들이 또래의 공연을 보고 있다. ⓒ 김윤섭

아니나 다를까.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마저 자퇴로 이어지자 현정은 무엇보다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교복을 입지 않은 청소년 신분이라는 것이 그랬다. 함께 온 청소년의 말마따나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반응이 어떠했던가.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이 너 임신한 거 아니냐였다. 교감선생님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너 혹시 성폭력 당한 것 아니냐며 추궁해오지 않았던가. 이처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학생 신분이 아니라는 사실은 무슨 전과기록처럼 부정적인 시각이 뒤따른다.

학생?... 학생 아닌데요

피자가게와 신문배달을 거쳐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다. 승용차를 몰고 오는 어른들마다 나이를 묻고, 학교를 묻고, 휴대전화 번호를 물었다. 그러고는 명함을 내밀며 전화하라고 했다. 좋은 친구가 되어 주겠다며.

현정은 그때마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이 싫었다. 교복 한 벌로 세상 모든 것이 흰눈처럼 가려질 수 있고, 교복 한 벌로 세상의 모든 잣대가 사라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정은 알고 있었다. 성적 순위로 돌아가는 교실 안의 냉혹한 현실을.

“세상의 초점이 학생이냐 아니냐에 맞춰져 있다 보니 공원을 산책하는 일도 겁이 났어요. 그날은 슬리퍼를 끌고 산책을 나갔는데 재수 없게 순찰 중이던 경찰관과 마주치지 않았겠어요. 그 경찰관도 그랬어요. 다른 어른들처럼 순서 하나 틀리지 않고 나이를 묻더니 어느 학교 다니냐며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학교에 안 다닌다고 하자 ‘쯩’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가출소녀로 단정해버렸어요. 이런 일은 아마 탈학교 청소년으로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거예요. 개나 소나 청소년이 밤에 돌아다니면 가출로 단정해 버리잖아요.”

그랬다. ‘민들레 사랑방’ 친구들을 만나기 전 대구의 ‘우주인’ 탈학교 청소년들도 현정이처럼 ‘쯩’이라는 한마디에 목소리를 높인 적 있다. 구미에서 열차를 타고 찾아오는, 중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다는 효주(18)가 그 주인공이다
.
“아침잠이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자퇴를 한 건 아니에요. 교복을 입으면 괜히 우울해지고 기가 죽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효주는 부모님의 열린 사고 덕에 집을 떠났다가도 돌아올 역이 있었다. 하지만 집을 나서는 그 순간만큼은 각오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개 탈학교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로 채워지는 주유소에서 효주는 서울의 현정이가 그랬던 것처럼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오는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막돼먹은 아이 취급은 고사하고 복구마저 불가능한 불량소녀로 낙인찍힌 경우도 허다했다.

억울하고 화가 나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탈학교 청소년에, 나이마저 어린 터라 손에 쥐는 돈마저 착취를 당해야 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은 시간당 2500원씩 주어졌으나 자신이 받는 액수는 시간당 1500원이 전부였다. 학년으로 나이를 계산하고, 나이로 학년을 계산하는 세상의 고정된 틀이 그에겐 진절머리 나도록 싫었다.

허울뿐인 청소년증

교복을 입고 있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받아야 하는 사회의 냉대와 수모는 나날이 늘어갔다. 그나마 자퇴는 아름다운 이름에 속했다. 문제아를 시작으로 불량소녀, 날라리에 이르면 거기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다. 문제는 ‘쯩’이었다.

“집 나온 아이쯤으로 보는 건 그래도 웃어넘길 수 있었어요. 학교를 안 다닌다고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 눈이 어떻게 바뀌는지 아세요? 대번에 내가 천박한 사람으로 변하고 몸 파는 아이 취급을 당하고 말아요. 그뿐인 줄 아세요. 우리나라는 쯩이 없으면 한발자국도 다닐 수 없어요.”

학생증도, 주민등록증도 없는 효주는 그래서 운전면허증을 땄다. 원동기 면허증이다. 누군가 ‘쯩’을 요구할 때 빈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얼마나 불안하고 치욕스러웠던가. 하지만 최근에 발급된 청소년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버스를 탈 때마다 교통카드와 청소년증을 동시에 내밀어야 하는 이중의 번거로움도 그렇거니와 지하철을 탈 때면 청소년증은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때문에 효주는 운송수단 중 시내버스 외에는 할인혜택이 전무하다시피 한 청소년증이 되레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탈학교 청소년에서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으로 변모해 '우주인'을 드나드는 우지혜(20세·전문대학 재학 중)씨의 당찬 목소리도 들려온다. 모든 것이 공부(성적)로 답이 내려지는 게 싫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한 그는 버스를 탈 때마다 운전기사와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땐 심각했거든요. 아무튼 어른요금 600원은 죽어도 내기 싫었어요. 학교를 다니지 않을 뿐이지 공부를 안 한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런 차별이 싫었어요. 실업학교 학생들을 한번 보세요. 3학년이 되면 실업학교 학생들은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취업을 해서 돈을 벌어요. 그런데도 그 학생들은 교복을 입지 않고도 할인혜택을 받잖아요.”

문제아로 낙인찍혀 엄마와 함께 찾아간 학교에서 담임선생으로부터 다른 학생들한테 악영향을 끼친다는 수모까지 받은 지혜씨는 지금은 탈학교 청소년 우주인을 거쳐 운영위원 우주인으로 성장했다. 이제 그는 참정권 문제까지 들춰냈다.

“선거 때마다 화가 났어요. 열여덟 살이면 세상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고 간섭할 권리가 있는 나이 아닌가요? 실업학교 학생들은 3학년 때 취업을 나가면 봉급도 타고 세금도 내잖아요. 그런데 왜 세금까지 내는 사람들한테 투표권을 안 주는 거죠?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돌아가잖아요.”

a 대구의 우주인 회원들이 경북대 잔디밭에 모여 운영진 회의를 하고 있다.

대구의 우주인 회원들이 경북대 잔디밭에 모여 운영진 회의를 하고 있다. ⓒ 김윤섭


마침 우주인을 찾아간 날, 세 개의 안건(탈학교 실태조사, 총선 토론, 다큐멘터리 제작)을 놓고 운영진 회의가 있었다. 특히 얼마 남지 않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신영희(소장)씨의 열정이 돋보였다. 누구보다 탈학교 문제에 대해 피부로 겪어 본 청소년들이 그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듯 ‘우리가 주인이다’를 줄인 우주인은 소장과 사무국장, 운영위원이 따로 없다. 학교 밖에서 길을 찾고, 함께 모여 소통을 이루어 내는 과정에서 보이듯 여러 갈래의 길에서 저마다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우주인의 문을 연 배경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세상이 와도 누군가에게 해야 할 일이 놓여질 거라고 생각해요. 대안학교처럼 우주인에 모델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상담을 해 보면 대개 학교가 갑갑하거나 장벽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하는데 어른들의 세계라고 해서 이와 다를까요. 그래서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그와 같은 눈으로 탈학교 청소년들을 보아 달라고요. 개성이 좀 강할 따름이지 우주인에 드나드는 탈학교 청소년들은 다른 청소년들과 다른 점이 없거든요.”

듣고 보니 반문할 여지가 없다. 후쿠오카 켄세이는 <즐거운 불편>이라는 저서에서 정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들은 뭔가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는,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세대도 부추김 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치에 자신감이 없고, 숫자나 성적, 세속적인 평가와 같은 구체적인 형태로 증명해 보이지 못하면 자아가 흔들려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이 말은 곧 소통의 문제와 맥이 닿아 있기도 하다. 집 안에 있든 집 밖에 있든, 학교 안에 있든 학교 밖에 있든 우리는 모두 자식의 부모이고 부모의 자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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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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