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청 상엿소리 고발 논란

"합법집회라도 피해는 안 줘야"... "집회의 자유 침해"

등록 2004.05.22 16:59수정 2004.05.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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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가 청사 앞 시위대의 상엿소리를 경찰에 고발함으로써 합법적 시위에 허용된 표현의 영역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발단은 광주시청 정문 앞에서 해고된 광주시립예술단 노조원과 광주전남 환경위생 노조원들이 복직 등을 요구하며 시위에 돌입하면서부터.

지난 1일부터 시위에 들어간 노조원들은 두 대의 승합차 지붕에 설치된 총 8개의 확성기를 통해 운동가요 등을 시청사를 향해 내보냈다. 특히 업무시간 동안 청사를 강타하는 상엿소리로 인해 시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해왔다.

광주시 "부득이하게 고발할 수밖에 없었다"

a 광주시청사를 향해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운동가요와  상엿소리 등을 쏟아내는 확성기. 시위대는 승합차위에 설치된 8개의 확성기 중 4개를 사용한다.

광주시청사를 향해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운동가요와 상엿소리 등을 쏟아내는 확성기. 시위대는 승합차위에 설치된 8개의 확성기 중 4개를 사용한다. ⓒ 오마이뉴스 이승후

실제 광주시 공무원들은 연일 계속되는 상엿소리에 "퇴근후 집에서도 환청에 시달리는 등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 "너무도 오랫동안 들리는 곡소리 때문에 어느 순간 확 돌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등 내부게시판을 통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광주시 총무과 관계자는 "공무원들도 사람인지라 지속되는 소음공해로 인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민원인에게 친절히 대응하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며 "부득이하게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혐의로 고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학교, 상가 등에서도 소음공해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도 많이 제기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합법적 집회를 탄압하거나 노조원들을 처벌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 집회는 보장하지만 확성기를 이용한 장송곡은 자제해 달라는 게 시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시공무원 직장협의회(대표 박종호)도 확성기를 이용한 장송곡 시위 자제 요청을 주요 골자로 지난 13일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 공공연맹에 협조공문을 보내는 한편, 21일에는 전남지방경찰청과 광주서부경찰서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광주시는 소음공해 혐의 입증을 위해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에 소음측정을 의뢰해 80∼90dB(데시벨)의 소음도를 확보한 상태.

시위대 "상엿소리는 공무원들의 죽은 양심을 부활시키려는 퍼포먼스"


a 광주시청사 현관앞에 '죄명 : 시민위한 예술을 꿈꾼 죄'라고 적힌 칼을 목에 차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광주시립예술단 노조원. 청사진입을 막기위해 두 명의 경비원이 현관을 지키고 있다.

광주시청사 현관앞에 '죄명 : 시민위한 예술을 꿈꾼 죄'라고 적힌 칼을 목에 차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광주시립예술단 노조원. 청사진입을 막기위해 두 명의 경비원이 현관을 지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후

광주시의 형사고발에도 불구하고 해고 노조원들은 상엿소리를 계속 틀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박근태 전국문화예술노조 광주시립예술단지부 사무국장은 "우리는 정식으로 집회신고를 한 만큼 합법적 집회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확성기를 통해 틀어대는 상엿소리가 "퍼포먼스의 일환"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박 사무국장은 "우리가 장송곡을 트는 이유는 광주시의 문화행정과 문화마인드가 죽은 데 대한 슬픔의 표시다"며 "누구 하나 우리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나온 직원이 없을 정도로 죽어버린 공무원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부활시키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다"고 주장했다.

박 사무국장은 "광주시 담당자가 성실한 대화를 제기해오면 상엿소리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며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이어 "그러나 (광주시가) 아무런 대화도 제기하지 않고 지금처럼 형사고발 등 무성의한 대응을 계속한다면 우리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집시법에 소음규제수치 없어 형사처벌 여부 논란 일 듯

지난 1월 개정된 집시법에는 확성기 사용제한 규정이 있다. 집시법 제12조의3에는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을 위반하는 소음을 발생시켜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음규정 위반시 관할경찰서장은 1차 사용중지 명령에 이어 확성기의 일시보관을 집행하도록 돼있다.

문제는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의 기준치가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즉 소음기준치가 확정된 상태였다면 개정집시법에 의거 확성기를 압수해 가면 그만이지만, 기준치가 없어 개정집시법을 적용하지 못해 합법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가 형사고발 당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

광주시 관계자도 이 부분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소음기준이 언제 정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극심한 소음공해로 인한 피해를 계속 감수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형사고발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또한 시위대가 상엿소리를 트는 것을 퍼포먼스라고 주장함에 따라 향후 법집행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논란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집시법에 소음규제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없지만, 대법원판례는 80dB(데시벨)로 한정을 하고 있다"며 "실제 2002년 3월 대전시청 앞에서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장송곡을 틀어놓고 집회를 한 시위대에 대해 대전지검에서 업무방해로 사법 처리한 전례도 있다"며 평화적 집회는 보장하지만 업무방해에는 단호히 대처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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