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마실 것은 가져와도 좋아요"

뉴질랜드에서 우리 문화를 다시 생각한다(19) : 식당문화

등록 2004.05.27 07:37수정 2004.05.2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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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수적인 감각이라는 입맛도 국제화가 되어서인지 요즘은 한국에서도 색다른 외국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입맛이 완전 토종이라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살 때 우리가 즐겨 다녔던 식당은 한정식 전문이나 보리밥집, 쌈밥집 등 거의 한국 음식점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 한국 음식점이 거의 모든 동네에 한두 개가 있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세계 각국에서 건너온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는 다민족ㆍ 다문화 도시이기에, 한국 식당이라고 해도 그 운영 방식과 문화는 한국과 조금 다르다. 한국 식당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단지 한국 교민들만으로 국한되지는 않기 때문에, 식당주인도 순한국식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이다.

1. BYO : 자기가 마실 것은 들고 와도 좋다

a 뉴질랜드의 식당들은 출입문에 영업시간과 휴무일 및 BYO 표시를 많이 해둔다.

뉴질랜드의 식당들은 출입문에 영업시간과 휴무일 및 BYO 표시를 많이 해둔다. ⓒ 정철용

이곳 뉴질랜드의 식당문화가 한국과는 다른 점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BYO이다. 이것은 ‘Bring Your Own’이라는 말의 약자인데, 자기가 마실 음료수를 직접 가져와서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조금 고급스러운 식당은 BYOW(Bring Your Own Wine)이라고 써놓아 고객이 직접 가져 와서 마실 수 있는 음료를 포도주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이 같은 표시가 붙어 있는 식당에서는 음료수나 술을 전혀 팔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식당이 음료수를 별도로 판매한다. 주류 판매 허가까지 취득한 식당의 경우에는 포도주를 비롯한 여러 가지 술도 별도로 판매한다.

이렇게 고객이 자기가 마실 음료수나 술을 직접 가져와서 마실 수 있도록 허용하는 BYO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음식의 차이와 그에 따라 발생된 음식에 대한 개념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음식은 마실(飮) 것과 먹을(食) 것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밥과 국이 함께 오르고, 찌개와 탕처럼 건더기뿐만 아니라 국물 역시 매우 중요한 음식의 요소가 된다. 이처럼 한국의 음식에는 마실 것과 먹을 것이 함께 들어가 있기에 별도로 음료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별도로 음료수를 주문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에 서양의 음식(food)은 고체, 액체의 구분이 명확해서 서로 섞이지 않는다. 서양식 국수인 스파게티에는 국물이 없으며 식초에 절인 피클은 그 건더기만을 취하고 국물은 먹지 않는다. 따라서 서양 음식에는 별도로 음료수를 필요로 한다. 이곳 뉴질랜드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음식을 주문받을 때 마실 것을 꼭 물어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 뉴질랜드의 대부분의 식당에서 BYO가 허용되는 것은 이처럼 음식을 먹을 때 늘 음료수를 함께 마시는 식습관 때문이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음료수가 사람마다 다르고 포도주라고 해도 그 맛이 각각 다르니 아예 손님이 직접 자기가 마실 음료수와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마시도록 허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라면 식당 주인의 눈치가 보여서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2. takeaway : 배달은 없다, 직접 와서 가져가라

이곳 뉴질랜드의 식당에서 BYO와 함께 흔히 눈에 띄는 말은 takeaway 라는 단어이다. 이 말은 주문한 음식을 식당 안에서 먹지 않고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먹을 수 있도록 포장해 준다는 뜻이다. ‘스타 벅스’ 같은 커피숍이나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을 하면 반드시 물어보는 말이기도 한 이 단어는 이곳의 대부분의 식당들에서도 자주 쓰인다.

이 역시 서양의 음식은 한국의 음식과는 달리 고형식(固形食)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문화이다. 쉽게 포장해서 운반할 수 있고 또한 휴대하기 간편하니 굳이 사람들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점심시간 무렵에 공원이나 바닷가에 가보면, 햇볕을 쬐거나 또는 자동차 안에서 음악을 틀어 놓은 채 takeaway로 근처 식당에서 가져온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takeaway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기에 어디든 앉아서 먹으면 그곳이 식당이 되고, 사람들도 그러한 모습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예 takeaway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있어서, 그런 곳에는 앉아서 먹을 식탁조차도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작정하고 여럿이 어울려서 소풍삼아 먹는 것이 아니라면 바깥에서 먹는 식사는 왠지 궁상맞고 초라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takeaway 대신 배달문화가 더 잘 발달되어 있다. 여기서는 피자 이외에는 배달이 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온갖 음식들이 모두 배달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배달의 기수'가 철가방으로 배달하는 대표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자장면, 탕수육 등 중화요리도 여기서는 배달이 안 된다. 한국에서는 바쁘고 귀찮을 때 전화 한 통화로 음식 배달을 부탁해서 한 끼를 때울 수 있지만, 여기서는 피자를 제외하고는 배달은 없다. 식당에 직접 가서 먹거나 아니면 takeaway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인건비가 비싸고 한국처럼 주택가와 상가가 함께 있거나 인접해 있지가 않으니 이곳의 식당들은 배달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다. 이곳 뉴질랜드의 takeaway 문화는 이러한 배달문화의 공백을 채워주는 것이겠지만, takeaway의 경우 배달의 기수는 바로 손님 자신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배달문화와는 그 서비스의 방향이 상반된다.

3. 좌석 배정 : 손님 맘대로? 아니 주인 맘대로!

또한 식당 좌석을 선택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도 주목해야 될 점이다. 한국에서는 예약석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를 골라 마음대로 앉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식당에 들어서면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이 안내를 해줄 때까지 손님은 기다려야 하고, 안내를 받고 배정받은 좌석이 마음에 안 들 경우에도 손님은 자기 마음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먼저 말한 다음에 옮겨야 한다.

뉴질랜드의 이러한 식당문화는 어찌 보면 ‘고객은 왕’이라는 모토와는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객은 서비스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좌석 안내와 배정을 하는 것까지도 서비스의 일종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곳 식당의 영업시간은 점심 시간대와 저녁 시간대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도 한국의 식당과는 다른 점이다. 보통 점심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이고 저녁시간은 오후 5시 30분에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점심과 저녁시간 사이인 오후 3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는 아예 식당 문을 걸어 잠근다.

그 시간에는 보통 출입문에 걸어두는 영업안내 표지판을 ‘closed' 쪽으로 돌려놓는다. 따라서 여차해서 점심시간을 놓친 경우에는 식당에서 식사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에는 할 수 없이 시간 가리지 않고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식당 문화가 한국과는 다르다 보니, 이곳 오클랜드에서 영업하고 있는 많은 한국식당들도 이곳의 식당 문화를 따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곳에 사는 많은 한국 교민들은 한국식 식당문화에 더 익숙해서인지 BYO와 takeaway를 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아직 채 정리가 안 되어 빈 그릇과 음식 찌꺼기가 식탁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도, 창가의 좋은 자리라고 종업원의 안내를 무시하고 기어코 앉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그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외국에 이민와서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문화 적응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그게 우리의 몸에 밴 생활문화와 관련된 경우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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