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승용이를 '구경거리'로 만들었나

[취재후기] <조선> 기자의 반박문을 반박한다

등록 2004.06.02 16:00수정 2004.06.0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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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일자 조선닷컴 기사. 조선일보는 '오마이뉴스'의 매체비평에 대해 "결식아동보다 공무원들 편을 드느냐"고 비판했다.

1일자 조선닷컴 기사. 조선일보는 '오마이뉴스'의 매체비평에 대해 "결식아동보다 공무원들 편을 드느냐"고 비판했다. ⓒ 조선닷컴


명분이 좋다면 사실 왜곡도 합리화될 수 있는가.

지난 1일 오마이뉴스가 <조선일보>의 '30만 우리 아이들이 굶고 있다'는 제하의 기획기사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우선 <조선일보>의 '오보'였다. 언론이라면 기본적으로 사실 보도를 생명처럼 중시해야 한다.

평소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철거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 등 이른바 우리 사회의 소외·약자계층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온 <오마이뉴스>가 굶주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도와주자는 <조선일보> 기획기사의 취지 자체를 문제삼고 나선 것은 아니다.

오마이뉴스가 "'보도 나간 후 부끄러워 다닐 수가 없다'-<조선> '굶는 아이들'서 과장·왜곡 말썽" 제하의 기사를 내보낸 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독자들 가운데는 "결식아동을 돕자는 데 웬 딴지냐", "끼니를 잇기 어려운 가정이 있는 것은 사실 아니냐" "반대를 위한 반대다" 등의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조선일보>의 오보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분명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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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보도가 나간 후 조선일보의 반응도 격렬했다. 해당 기사를 취재한 <조선일보> 기자는 1일 전화를 걸어와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 기자는 당일 반박 기사를 통해서도 "(오마이뉴스의 보도는) 악의적으로 기사를 급조한 것"이라며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라고 쓴 바 있다.

오마이뉴스가 주목한 건 조선일보의 '오보'


'배고픈 아이들' 시리즈 중 하나인 '30만 우리 아이들이 굶고 있다'는 기사에 대해 처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곳은 <오마이뉴스>가 아니라 사진 속 주인공인 이승용(7·가명)군을 평소 도와온 '사근동 봉사회'였다. 봉사회의 한 관계자는 <조선일보> 기사가 나온 27일 당일 <조선닷컴>에 글을 올려 "이승용 가정에 대한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 관계자는 "아이가 굶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 동사무소와 봉사회, 인근 교회 등의 지원내역을 상세히 밝힌 뒤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받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고 있는 저희들을 굶고 있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파렴치범으로 매도한 그 기사내용으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짓밟힌 느낌을 받게 하오니 정정 보도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취재에 나서게 된 계기는 이 봉사회 관계자의 문제제기와 그 외 기사제보란에 쏟아진 유사한 내용을 인지하고서다. <조선일보>의 보도대로 국내에 30만에 이르는 결식아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실상이 과장되거나 왜곡됐다면 이를 올바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초 <조선일보>가 승용군 관련 내용을 사실대로 보도했다면 그 충격파는 적었을지 몰라도 보도로 인한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오마이뉴스>가 취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27일자 조선일보 1면에 커다랗게 실린 충격적인 사진 때문이었다.

설사 승용군 가족의 상황이 <조선일보>의 보도와 같다고 할지라도,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한 가족의 비참함만을 부각시킨다는 것은 언론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어려운 한 가정을 온 국민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보도 태도에는 더더욱 동의할 수가 없었다.

한 가정을 온 국민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조선일보>

본격 현장취재에 나선 지난달 31일, 기자는 승용군 할머니 정 아무개씨와 봉사회 회장 등을 만나면서 <조선일보>의 보도로 인한 '상처'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초행길에 승용군의 집을 찾기 위해 동사무소 직원과 함께 찾아간(<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마치 동사무소 직원이 기자를 불러 데리고 간 것처럼 표현했다) 정씨 할머니 집은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배고파'라는 글씨도 페인트로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마침 집에 있던 정 할머니는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마자 취재요청을 한사코 거부했다. "할 말도 없다"고 운을 뗀 정씨 할머니는 질문을 회피하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들어가면서 할머니는 "철없는 애가 사달라고 해서…. 돈이 없어서 안 사줬더니 물감으로 벽에 낙서를 하고…. 그런 것까지 크게 내고…"라며 <조선일보>의 보도를 원망했다.

기자가 뒤를 따르자 다시 돌아나온 할머니는 "부끄럽고 창피해서 밖에 나다닐 수가 없다"고 반쯤 울먹인 뒤 다시 "죽고 싶어도 새끼들 때문에 죽을 수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 할머니의 말은 기자의 질문과는 상관없는 '혼잣말'이었다.

정 할머니의 거부로 기자가 길게,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는 "<오마이뉴스>가 할머니를 5분∼10분 정도밖에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사실확인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가 정 할머니와 충분히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은 다름아닌 <조선일보>의 보도로 인해 할머니가 언론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겨우 10분 정도밖에 대화가 이뤄지지 못했고, 현장에 갔으면서도 할머니의 거부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 집을 나온 기자는 인근 교회의 한 관계자로부터 <조선일보> 보도 이후 정 할머니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정 할머니가 "의도와는 달리 기사가 나와서 당황스럽다, 성도들이나 목사님 뵙기에도 민망스럽다"는 심경을 밝혔다고 전했다.

상처를 입은 이는 비단 정 할머니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승용군을 도와온 적십자봉사회와 인근 교회의 성도들,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치 이웃의 결식아동을 버려 둔 듯한 죄인이 된 것 같다"고 호소했다. <조선일보> 기사가 결과적으로 가족에게도, 후원자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긴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사회적 약자를 외면했나

<조선닷컴>은 1일 취재기자의 글을 통해 "<오마이뉴스>는 약자인 '배고픈 아이들'이 아니라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공무원의 입장에서 이들을 옹호하는 듯한 기사를 작성했다"고 비난했다. 사회적 약자인 결식아동을 외면하고, 강자인 공무원들의 편을 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역시 전형적이고 도식적인 이분법적 규정이다.

<조선일보>가 27일 기사를 내보내고 바로 당일 사근동 봉사회 관계자가 기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강자 : 약자'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은 이미 깨어졌다. <오마이뉴스>가 현장에서 만난 결식아동 가정과 봉사회원,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은 대부분 <조선일보>의 보도태도에 대해 공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식아동 가정을 자신의 편에 편입시키려는 <조선닷컴>의 의도가 도식적인 이분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조선닷컴>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조선닷컴>은 1일자 반박기사에서 "<오마이뉴스>는 현재 이스탄불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신문협회 행사에 이례적으로 9명이나 기자단을 파견했다"며 "국내 언론사가 해외에서 열리는 행사에 8박 9일 일정으로 이처럼 대규모 인력을 파견한 예는 드물다"고 비판했다.

<조선닷컴>은 또 "덩치가 커지면서 <오마이뉴스>는 약자나 낮은 곳보다는 강자에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세계신문협회 행사에 9명을 파견한 것을 두고 사회적 강자의 편에 선 것인 양 비판하고 나섰는데 대체 이스탄불 행사참가와 이번 기사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한마디로 치졸하기 짝이 없는 보도태도인 셈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역시 '오보'다. 이스탄불 행사에 참석한 <오마이뉴스> 관계자는 모두 9명이지만, 이들이 모두 '취재 기자단'은 아니다. 오연호 대표는 주최측의 초청을 받아 참석했고, 3명은 뉴스게릴라이며, 실제로 행사 취재에 나선 사람은 취재, 사진, 동영상 기자 각 1명씩 총 3명이다. <조선일보>는 이마저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에 묻고 싶다.

'조선일보는 그간 과연 약자의 편에 서 왔는가.'

일제의 폭압통치로 동족들이 신음할 때 <조선일보>는 어디에 서 있었으며, 80년 5월 무고한 광주시민들이 '폭도'로 몰려 피를 흘리면서 아스팔트 위에서 쓰러져갈 때는 과연 어디에 서서 누구를 대변했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2년전 여름 효순이·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꽃다운 목숨을 잃었을 때 그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반미'로 매도하고, 거대 야당이 획책한 '의회쿠데타'를 정당한 절차였다고 강변했던 <조선일보>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조선일보>가 그동안 외면해온 '무지랭이'들이 과연 우리 사회의 강자였던가. 반대로 그간 <조선일보>가 대변해온 재벌기업, 보수 정치권, 사학재단, 거대 종교기관, 우익단체 등이 과연 우리 사회의 약자였던가.

이에 대한 <조선일보>의 대답이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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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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