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법정에 서는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6월 중순 2건 심리 개시...관련사건 판결 일시 중지될 듯

등록 2004.06.04 17:15수정 2004.06.0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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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본관 전경.
대법원 본관 전경.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사회적 논쟁이 돼온 '양심적 병역거부'가 마침내 대법원 법정에 선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와 관련해 상고심에 계류중인 2건의 사건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대법원이 지난 69년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건에 대해 병역법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후 35년만이다.

손지호 대법원 공보관은 4일 오후 '양심적 병역거부'문제와 관련해 "대법원에 현재 계류 중인 2건의 사건을 최대한 신속히 처리하겠다"며 "이미 기초 검토에 착수했고, 늦어도 6월 중순에는 본격적인 심리를 개시해 결론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대법원 1부(주심 조무제 대법관)와 3부(윤재식 대법관)에 각각 여호와의 증인 윤아무개씨와 최아무개씨의 상고사건이 배당돼 있다.

손 공보관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로 인한 국민의 법적 불안을 조속히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 처리와는 무관하게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다음 달 중에도 대법원 판결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의 신속처리 방침에 따라 현재 전국 각 법원에 계류중인 관련 사건은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심리가 중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대법원이 지난 69년의 판결을 깨고 판례변경을 할지 주목된다. 대법원 재판부중 1인이라도 판례변경 의견을 낼 경우 대법관 13인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에서 사건을 다루게 되며, 이 중 7명이 찬성하면 판례변경이 가능하다.


헌재 2년 4개월째 위헌법률 심판 사건 계류상태

지난달 21일 서울 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 입대를 거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3명에게 법원 대법원 판례를 깨고 무죄를 선고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해 논란이 됐고, 서울 동부지법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관련 사건에 대한 선고를 미루겠다고 밝혔다.


현재 헌법재판소에는 2002년 1월 29일 당시 박시환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1단독 부장판사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모(21)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한 바 있다. 당시 이씨는 "대체복무를 통한 양심실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병역법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2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판결을 미루고 있어 비난을 받고 있다.

당시 박 부장판사는 "헌법상 규정된 병역의 의무와 기본권인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가 충돌할 경우 양자는 적절히 조화·병존해야 한다"며 "병역거부자에 대한 예외 없는 처벌을 규정한 현행 병역법 제 88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손 공보관은 "법령해석으로 문제이기 때문에 헌재 심판과는 관계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헌법재판소 계류사건과는 별개로 조속히 법원의 법령해석을 통일시켜 하급심의 혼란을 막겠다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는지가 쟁점

최종적인 법률해석권을 가진 대법원은 종교 또는 양심에 따른 입영거부가 병역법에 규정된 입영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한다. 이 때문에 위헌법률 심판권을 갖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병역법조항이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에 위반되는 것인지를 가리는 것과는 별개다.

현재 병역법 88조 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 또는 소집 일로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경과해도 입영 또는 소집에 불응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 또는 양심을 이유로 입영 또는 소집에 불응한 경우 위 88조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 것인지가 대법원 판결의 쟁점이다.

관련 대법원 판례

대법원은 지난 61년 9월(사건번호 61도406) '군에 입대하라는 현역병증서를 받은 후 종교상의 이유로 입대할 수 없다는 취지를 서면화하여 검찰청에 출두하고 법의 처단을 받겠다고 의사표시를 한' 사건에 대해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를 확정했다.

69년 7월(69도934)에도 그리스도인의 소위 "양심상의 결정"은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한 양심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며 '여호와의 증인'신자에 대해 병역법 위반을 인정했다. 군 형법의 '항명죄'가 적용된 경우도 있다. 입대 후 신병훈련과정에 집총을 거부한 사건에 대해 지난 92년 9월(92도1534) 항명죄를 적용했다.

이같은 판례들이 있어 대법원이 이전과 다른 결정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 반응]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심리, '환영' '우려' 교차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 거부' 심리에 대해 법조계 인사들은 '환영'과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최근 하급심의 판결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서둘러 정리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만, 헌재 판결과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갑배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는 "대법원이 혼란을 막기 위해 빠른 결정을 내린다는 입장은 환영한다"며 "다만 (대법원이) 법률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에 헌재의 결정을 기다린 후 판결하는 것이 순서상 맞지 않겠나"라고 제안했다.

이어 김 법제이사는 "위헌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의 판결결과가 헌재의 결정과 배치될 수 있다"며 "대법원의 결정과 헌재의 결정이 같다면 혼란을 수습하는데 이보다 좋을 수 없지만, 만약 다르다면 또다른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석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대법원이 기존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거나, 하급심 판결이 분분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고 본 것 같다"며 "(대법원이) 신속하게 결정하겠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전환적인 판결이 내려진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두고봐야 한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회장은 "헌재가 아직 위헌 여부 판결을 내리지 않는 상태에서 기존 판결에 대해 '유죄'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리거나 한다면 헌재의 결정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2년 전 헌법재판소에 병역법 제88조 1항의 위헌심판을 제청한 박시환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신중히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중구난방으로 여러 가지 판결이 나오는 것에 대해 대법원이 문제의식을 갖고 결론을 내려주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법리상으로는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박 변호사는 "대법원의 입장정리는 헌재의 판단 이후로 미뤄져야 하지 않겠나"라는 신중한 입장도 동시에 전했다. / 유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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