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김영완-정몽헌은 서로 통했다 (하)

[집중추적] 현대 비자금과 '특사' 박지원의 진실 ③

등록 2004.06.09 18:43수정 2004.06.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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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완씨는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에서 정몽헌 회장을 알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제가 어릴 때 이웃동네에 살아 (저는 종로구 통의동. 정몽헌은 옆동네인 청운동) 서로 안면은 있었지만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89년 말경 정몽헌이 현대전자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인공위성 등 방위산업에 참여하려고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근무하던 S 장군(85년경 무기중개업을 할 때 알게 되었음)을 통해 알게 되어 그후 사업도 함께 추진하는 등 가깝게 지냈으며, 그때 이익치 회장도 같이 소개받아서 알게 되었습니다."

김영완-정몽헌, 92년 중국 인민해방군과 합작으로 건설업 지분 참여 '동업'

김씨의 주장은 무기중개업을 할 때부터 알고 지낸 S장군(전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정몽헌-이익치 회장을 같이 소개받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 회장과 김씨는 중앙고 선후배 관계이다.

김씨의 자술서에 따르면, 김씨는 89년 말경에 알게된 정 회장에게 자문을 해주거나 미 휴즈사와 중개를 해주는 식으로 도움을 주었다. 또 92년 경에는 김씨가 중국에서 인민해방군과 합작으로 건설업을 하려는 것을 알게된 정 회장이 정주영 회장의 승낙을 받아 지분(현대건설 40%, 인민해방군 40%, 김영완 20%) 참여로 사업을 추진해 조인식까지 마칠 만큼 두 사람 사이는 '동업자'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정주영 회장의 대선 출마를 이유로 김영삼 대통령에게 밉보여 정부에서 현대건설의 중국 진출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94년 합작사업의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다가 98년경 현대에서 대북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김씨는 정몽헌 회장에게 연락해 다시 친하게 지냈는데, 사석에서는 정 회장을 "형"이라고도 호칭하고,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정 회장님"으로 호칭했으며, 주로 아침 시간에 정 회장 사무실로 가서 만났다고 한다.


한편 김영완씨는 97년 말∼98년 초에 대학(고려대) 선배이자 안기부 차장을 지낸 오정소씨의 소개로 당시 박지원 당선자대변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박지원씨는 검찰 조사에서 한 호텔 커피숍에서 우연히 '김영삼 정부 시절 장관급 인사'(오정소 전 국가보훈처장)를 만나 김씨를 소개받았다고 진술했으나, 김씨의 진술에 따르면 '우연'이 아니었다. 김씨는 "오정소 선배에게 '박지원을 알면 소개시켜 달라'고 하였더니, 오정소가 박지원을 잘 안다면서 박지원을 불러내 소개를 해주어 알게 되었다"고 자술서에서 진술했다.


김씨는 박지원 장관을 정몽헌 회장에게 소개해준 경위에 대해서는 평소 카지노 사업에 관심이 있던 차에 99년경 현대가 금강산유람선에 카지노사업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정 회장에게 "형, 그것 내가 해야지 무슨 소리야"라고 했더니, 정 회장이 정부에서 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고 고민을 토로해 정 회장에게 박 장관을 소개했다고 진술했다.

검찰, "이익치를 믿지 말라"면서 이익치 진술에 의존한 자가당착

그런데도 검찰은 이처럼 중요한 정 회장의 앞서의 진술과 김영완이 밝힌 정 회장과의 관계 등을 배제한 채 이익치 회장의 진술에 힘을 실어주는 '편들기 수사'로 일관한 흔적이 짙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6월 25일 대북송금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후 이날 저녁 기자들과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이익치씨를 믿지 마라. 진술을 몇 번 번복했다. 물론 그 중에 일관하는 소명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을 방어하려는 일정한 선이 있었다."

따라서 특검은 물론 특검 수사결과를 인계받은 대검 중수부도 '이익치를 믿지 말라'고 경계하면서도 아무런 물증 없이 사실상 거의 전적으로 이익치 회장과 해외 도피중인 김영완씨의 진술에 의존해 박지원 장관을 구속한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미스터리의 인물인 김영완과 이익치의 관계 중에서도 가장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2000년 3월 8일 싱가포르 예비접촉에서부터 두 차례의 예비회담을 거쳐 4월 8일 베이징에서 박지원 장관과 송호경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기까지 네차례에 걸친 비밀접촉의 현장에는 늘 전직 무기중개상이자 로비스트인 김영완씨가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두 사람은 싱가포르에 가기 전에 홍콩을 거쳐 함께 간 사실까지 일치한다. 이런 점들은 김영완-이익치 두 사람의 관계가 보통 사이가 아님을 증명하는 또 다른 중요한 착안점이다.

알다시피 남북정상회담 예비회담은 극비의 보안을 요하는 사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임동원 국가정보원장과 의논해서 노출되기 쉬운 박재규 통일부장관 대신에 박지원 문광부장관을 '대북특사'로 내세워 국정원의 보좌를 받아 수행비서 한 사람만을 대동한 채로 싱가포르, 상하이, 베이징 등 제3국에서 비밀협상을 한 것이다. 당시 협상장에는 박 장관과 김보현 대북전략국장(현 대북 3차장), 그리고 서훈 단장(현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장) 등 세 명만 들어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김영완씨는 극비를 요하는 이 회담장 주변에 늘 있었다. 그리고 회담장 주변에 늘 김영완씨가 있었다는 사실은 박지원 장관의 법정 진술로 불거지게 된다. 물론 그전까지 김씨의 존재는 이익치 회장은 물론 정몽헌 회장조차도 입을 다물고 있던 사안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정몽헌 회장은 김영완의 존재가 특검의 계좌추적을 통해 불거진 뒤에도 검찰에서까지 김영완의 남북정상회담 예비회담 동행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정몽헌 회장은 8월 4일 새벽에 투신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받은 8월 1일 재판과 역시 8월 2일 대검 중수부 남기춘 검사로부터 받은 마지막 조사에서도 예비회담장 주변에서 김영완씨를 본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다. 그리고 8월 4일 새벽에 정 회장은 계동 현대사옥 12층에서 이 모든 미스터리를 안고서 몸을 던졌다.

문: 피의자는 2000년 3월8일부터 같은 해 4월8일까지 사이에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싱가포르, 홍콩, 북경 등에서 수 차례에 걸쳐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박지원을 만났을 것인데, 그때 김영완이 박지원과 동행하거나 김영완을 본 사실이 있는가요.

답: 저는 그때 김영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김영완 "정 회장의 요청으로 준비회담에 간 것이지 박 장관이 요청한 적 없다"

반면에 이익치 회장은 "김영완씨가 박지원 장관을 수행하기 위해 동행하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박지원 장관은 8월 19일자 피의자신문조서(제1회)에서 "김영완이 정몽헌 회장과 함께 온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인물이 현대-북한 사이를 오가며 처음 남북정상회담의 다리를 놓은 재일총련계 2세 기업인 요시다 다케시(吉田猛·55) 신(新)일본산업 사장이다.

"앞서 진술한 바와 같이 싱가포르 예비접촉 일정이 잡히기 전에 롯데호텔 객실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로 정몽헌 회장, 이익치 회장과 같이 일본인 요시다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 김영완도 같이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정상회담 개최문제로 정 회장 일행을 만나는 자리에 김영완도 같이 나왔던 것을 보았는데 동인이 정상회담 개최문제로 남북 당국자간 접촉을 하는데도 정 회장 일행과 같이 있는 것을 보고 김영완이 정 회장과 같이 온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박 장관은 8월 21일자 제2회 신문조서에서도 "정 회장의 연락을 받고 롯데호텔 객실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정 회장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 정 회장이 김영완과 이익치, 그리고 요시다를 데리고 나와서 요시다를 소개해주었고, 요시다는 북측의 고위층과 친분이 있어서 북측에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된 의사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고 진술했다. 박 장관은 또 김영완이 그 자리에 참석한 이유에 대해서는 "현대에서 데리고 나왔기 때문에 김영완도 현대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일원으로 생각하였다"고 진술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사자의 해명이다. 김영완씨는 8월 29일 변호인을 통해 제출한 '자술서'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준비회담에 동행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2000년 2월 하순 아침 무렵 정 회장의 사무실에서 정 회장을 만났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정 회장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3월 초순경에 싱가포르에서 북한사람들을 만날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 회장이 해외에서 저에게 전화를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에게 싱가포르로 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제가 그와같이 싱가포르나 상하이, 또는 베이징에 가게 된 것은 정 회장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지, 박 장관으로부터는 그러한 요청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익치 회장은 요시다씨나 김영완과의 만남은 물론 롯데호텔 객실 모임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박 장관은 "롯데호텔 객실에서 정몽헌 회장, 이익치 회장, 김영완과 일본인 요시다와 성명불상 통역인을 처음 만나서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던 것"이라며 "롯데호텔 객실에서 요시다를 만난 사실을 임동원 원장에게는 말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영완-이익치 출입국기록,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는 것처럼 완전일치

a 4인의 출입국 현황. 이익치-김영완 2인의 출입국 기록은 바늘에 실 가듯이 일치한다.

4인의 출입국 현황. 이익치-김영완 2인의 출입국 기록은 바늘에 실 가듯이 일치한다.

이에 대해 임동원 국정원장은 필자에게 "박 장관이 2000년 2월경에 요시다를 만난 사실을 말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출입국조회 상으로도 요시다 신일본산업 사장은 2월초에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영완·박지원·이익치·정몽헌 4인의 당시 출입국기록을 보면 누구와 누가 서로 통(通)했는지가 드러난다.

2000년 3월초부터 4월 중순까지 4인의 출입국 행적은 엇비슷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김영완-이익치 두 사람은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는 것처럼 출입국기록이 완전히 일치한다. 그 때문에 김씨가 현대의 경협사업에 참여할 목적으로 정 회장 또는 이 회장을 수행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정 회장이 특검에서 "김씨를 통해 금강산관광 카지노사업 승인 등을 박 전 장관에게 부탁했다"고 진술한 것도 그만큼 김씨가 현대의 대북사업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특검팀 관계자는 당시 "시간 여유가 없어 150억원의 추적에만 집중하다 보니 김씨가 박 전 장관 혹은 정 회장과 동행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원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박지원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부분을 유죄로 인정함에 있어서 김영완씨가 작성한 진술서 기재내용을 신빙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정몽헌·이익치·김영완 3인의 각 진술이 일치하기 때문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3인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찬찬히 톺아보면 이익치·김영완 두 사람은 정몽헌 회장을 상대로 '공모'를 할 만큼 서로 통하는 사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진술은 신빙성을 갖기가 어렵다. 또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정몽헌 회장의 진술 또한 자신의 범죄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 사람은 서로 '제로섬 게임'을 하는 당사자들이었다. 따라서 서로 '짜고 치는' 두 사람과 그 두 사람에게 이용당한 다른 한 사람 등 3인의 진술이 일치하는 것만으로 박지원 피고인에 대한 유죄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대검 중수부와 이익치의 '플리 바기닝' 의혹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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