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왜 1년 6개월간 김영완을 안잡나

[집중추적] 박지원사건의 진실 ④ - 플리 바겐 의혹(상)

등록 2004.09.20 15:30수정 2004.10.2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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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해 7월 대북송금 사건 첫공판에 출석하는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

지난해 7월 대북송금 사건 첫공판에 출석하는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a 78년 고려대 졸업당시 김영완씨의 졸업앨범 사진.

78년 고려대 졸업당시 김영완씨의 졸업앨범 사진.

검찰이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의 150억원 수수 혐의를 공소 제기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의 유력한 증인인 김영완·이익치씨와 면책을 대가로 '모종의 거래'를 한 의혹이 있다는 증언이 제기되었다.

지난해 3월 대북송금 특검이 활동을 개시하기 전에 미국으로 도피한 전직 무기거래상 김영완씨의 측근인사이자 사업파트너인 O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에 도피중인 김씨가 지난해 7∼8월 경 검찰 관계자와 수 차례 전화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으며 김씨가 한때는 귀국해서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수사팀이 만류해 귀국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O씨의 증언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이 사건은 원점에서부터 재수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도 '플리 바겐' 의한 진술은 증거로 채택되기 힘들다는 취지의 판례 제시

지난해 7∼8월경 당시 대북송금 특검(송두환 특별검사)로부터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한 대검 중수부가 이와 관련 미국에 도피한 김영완씨에 대해 수사에 협조할 경우 불구속 수사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정하고 김씨측과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박지원 전 장관을 구속하기 위한 이른바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이란?
대법원, "플리 바겐에 의한 진술은 증거로 채택되기 힘들다"

플리 바겐(Plea Bargain) 혹은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으로 표현하는 이 '사전형량조정제도'는 검찰이 수사편의상 주요 관련자 또는 피의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거나 증언을 하는 대가로 협상을 통해 형량을 경감하거나 조정하는 것으로 주로 미국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전형량조정제도를 법적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지만 검찰의 기소에 대한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이와 유사한 형태의 수사가 종종 행해지고 있다. 뇌물공여죄나 마약범죄 등과 같이 자백이 필수적이거나 당사자의 제보가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하는 범죄의 수사과정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플리 바겐은 피의자의 약점을 잡아 제3자의 수사단서나 범죄 관련 진술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인 수사기법이라는 비판이 높으며, 대법원도 플리 바겐에 의한 진술은 증거로 채택되기 힘들다는 취지의 판례를 제시한 바 있다. 왜냐하면 플리 바기닝은 자백으로만 처벌케 해 피의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강제적인 허위자백 유발로 무고한 피해자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플리 바겐 의혹이 검찰의 공소유지를 핵심적으로 뒷받침하는 김영완씨의 측근인사로부터 제기됨에 따라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플리 바겐에 의한 진술은 증거로 채택되기 힘들다는 취지의 판례를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최근 2심까지 유죄선고가 내려진 박지원씨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혐의 사건은 파기 환송되어 원점에서부터 재수사해야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에서 박지원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는 김영완씨가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뿐인데 재판부가 검찰의 플리 바기닝을 인정할 경우 그 증거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럴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피고인 박씨측에서 검찰 수사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이나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재정신청(裁定申請) 등의 구제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게 된다.


김영완은 '박지원 비자금 관리인'이 아니라 '이익치 혹은 정몽헌 비자금 관리인'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현대 비자금 수수 의혹 사건의 핵심 쟁점은 현대측이 2000년 4월 7일 시중은행의 현대건설 계좌에서 현금 150억원을 인출해 당일 이를 서울 농협 종로지점에서 1억원 짜리 무기명 CD(양도성예금증서) 150장으로 교환해 두었다가 '4월 중순 어느 날'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이 이를 박지원 장관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은 검찰에서 "김영완씨로부터 요청을 받고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통해 150억원을 박지원 장관에게 주었다"는 요지로 진술했다. 이익치 회장 또한 "무기명 CD 150장을 박지원 장관에게 건넸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검찰은 현대측이 이익치 전 회장에게 건넨 문제의 CD(150억원) 가운데 일부가 김영완씨를 통해 '돈 세탁'된 사실을 계좌추적을 통해 확인했다.

a 해외 도피중인 김영완씨가 지난해 8월 해외에서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

해외 도피중인 김영완씨가 지난해 8월 해외에서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

지난해 3월 미국으로 도피한 김영완씨 또한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보낸 '자술서'에서 자신이 CD 150장을 받아 이를 관리했고 그 일부(30억원 가량)를 박 장관에게 주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검찰은 박 장관이 김씨를 통해 현대측에 돈을 요구하자 김씨로부터 요청을 받은 정몽헌 회장이 이익치 회장을 시켜 박 장관에게 돈을 전달했고 박 장관은 이를 다시 김씨에게 맡겨 '돈세탁'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박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박 장관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익치 회장이 중간에서 '착복'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종의 '배달사고'인데, 이는 이익치 회장이 김영완씨와 함께 짜고서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돈을 빼낼 경우에만 가능한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박 장관의 주장은 이익치-김영완의 공모(共謀)를 전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취재팀은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영완·박지원·이익치·정몽헌 4인의 친소관계를 따져 김영완씨는 박지원 장관보다 이익치-정몽헌 회장측과 더 가까운 사이였음을 입증하는 "이익치-김영완-정몽헌은 서로 통했다" 제하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검찰은 김영완씨를 '박지원 장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규정한 반면에 취재팀은 이를 근거로 김씨를 '이익치 혹은 정몽헌 회장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판단한 것이다.

'죄 없는' 김영완씨는 왜 입건조차 안되었는데 변호사를 선임해 대비했을까

그런데 이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영완씨가 왜 1년6개월 동안이나 귀국하지 않고 있는지 그 이유를 짚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를테면 해외도피중인 김영완씨가 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지난해 8월 이후 이용성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를 통해 대검 중수부에 제출한 자술서 기재내용과 공소사실대로 김씨가 박 장관의 부탁을 받고 CD 150장(150억원)을 단순히 보관관리하고 있었다면 김씨에게는 아무런 형사책임이 없다할 것이다. 그럼에도 '죄 없는' 김씨는 대북송금 특검 수사가 개시되기 직전인 지난해 3월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현재까지 특별한 사유 없이 귀국하지 않고 있다.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반면에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과 달리 문제의 '이름표 없는 CD 150장'이 이익치-김영완 두 사람의 공모에 의하거나 정몽헌 회장이 회사에서 빼돌린 비자금이라면 이익치·정몽헌 회장은 업무상횡령죄를 범한 것이 되고 김씨는 범죄행위에 가담한 '공범'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 경우라면 '죄 있는' 김씨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완벽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결국 검찰의 수사결과대로라면 김영완씨는 150억원과 관련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처자식 등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미국으로 출국해 그곳에서 변호인을 선임해 자술서를 제출하는 등 검찰수사에 협조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박지원씨 사건 관련 1·2심 재판에는 박씨측이 증인으로 채택한 사실을 알면서도 특별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a 해외 도피중인 김영완씨가 자신의 민사사건을 수행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위임장.

해외 도피중인 김영완씨가 자신의 민사사건을 수행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위임장.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죄 없는' 김씨가 박지원씨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전부터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들을 자신의 변호인으로 선임해 대비해온 점이다. 김씨는 지난해 3월20일 출국한 이후 수사기관에서 자신을 피의자로 입건한 사실조차 없는데도 변호인을 복수로 선임하고 검사장 출신의 거물급 변호사를 자신이 있는 미국으로까지 불러서 중수부 수사팀의 동향을 탐문하고 대책을 논의한 것이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사실은 김씨가 이 사건과는 별도로 S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십여 건의 민사소송을 위임하면서 해외에서 국내 재산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영완씨는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4건의 민사소송을 S변호사에게 위임해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두 서울남부지법 관할인 4건의 구체적인 내역은 ▲서울남부지법 2003 가단65210(장○환씨) 사건 ▲2003 가단76463(권○현씨) 사건 ▲2003 가단79554(최○혜씨) 사건 ▲2004 가합34467(김영완씨가 한국증권금융을 상대로 낸 증권금융채권 상환금청구) 사건이다.

김영완, 해외 도피중에도 10여건 소송 위임 수행해 30여억원 찾아가기도

김씨는 이밖에도 서울중앙지법 계류중인 ▲매매대금 청구사건 ▲손해배상 청구사건 2건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변호인을 통해 소송을 수행하는 등 총 10여건의 민·형사 소송을 해외에서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테면 해외체류중인 김씨가 지난 5월7일 한국증권금융을 상대로 서울남부지법에 소를 제기한 증권금융채권 상환금청구 사건의 경우, 김씨는 소장(訴狀)에서 자신의 주소지를 "서울 종로구 평창동 443-9"로 표기하고 있고, 이 사건을 포함한 4건의 소송 모두 소송위임장 위임란과 수취인란에 같은 주소를 표기하고 있다.

(이 소송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김씨는 2002년 3월 이른바 '떼강도' 사건으로 90억원대의 채권을 도난 당한 뒤에 같은 해 9월 법원의 결정으로 37억3천만원의 증권금융채권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김씨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국내 지인을 통해 32억2천만원의 채권 상환금을 찾아갔다.

이 시기는 김씨의 귀국 여부를 놓고 검찰과 박 장관 변호인간에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김씨는 남은 채권 가운데 2억2천만원의 채권상환금을 추가 청구했으나 한국증권금융측이 "다른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며 지급을 거부하자 그 와중에도 해외에서 소송을 낸 것이다.)

그리고 그후에도 김씨는 6월5일 법원으로부터 답변서 부본과 준비명령을 송달받고, 6월8일경 준비서면을 제출했으며 7월21일에는 법원으로부터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조서등본을 송달 받는다. 김씨는 검찰이 소재를 파악알 수 없는 해외에 체류하면서도 멀쩡하게 소송 관련 서류를 전달받아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a 김영완 vs 장O환 사건 관련 김영완씨의 서명. 다른 위임장 서명과 다르다.

김영완 vs 장O환 사건 관련 김영완씨의 서명. 다른 위임장 서명과 다르다.

그런데도 검찰과 1·2심 재판부는 모두 "김영완씨의 소재 탐지가 되지 않고 있다"고 전제하고, 김씨가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에서 "건강상태와 가족들의 신변문제로 한국 법정에 직접 출석하여 진술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궐석증언이 불가피한 사유로 인정하고 김씨의 자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지난해 8월27일 작성한 1차 진술서와 11월10일 작성한 2차 진술서 및 자필 진술서를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제출하면서도 자신의 건강상태 등을 입증할 그 흔한 진단서같은 증빙서류조차 첨부하지 않았다. 또 각각의 진술서와 앞서의 위임장과 수취인 주소 등에 기재된 서명과 필적이 육안으로 보기에도 각기 달라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인지조차 의심스런 상황이다.

그런데도 1·2심 재판부는 김씨의 민사소송 대리인인 S변호사에게 김씨의 소재를 탐문하는 연락도 취해보지 않은 채 막연히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김씨가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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