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뿌리를 내린 양 고구마 순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박도
짐도 풀기 전에 텃밭부터 갔다. 그새 시들시들하던 고구마 순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고추도 콩도 파릇파릇하다.
옥수수도 한 자는 더 자랐다. 시금치, 상추, 열무, 배추도 모두 솎아먹을 만큼 자랐다. 순간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옆집 노씨가 그랬다. 농사꾼들은 자기가 심은 작물이 자라는 걸 보면 마냥 즐겁다고. 그래서 농사를 짓는단다.
애써 가꾼 배추나 무가 제 값을 못 받고 때로는 판로가 없어서 밭에서 썩어도 이듬해 다시 씨를 부리는 것은 파릇파릇한 그 새싹을 보고자 함이라고.
얼른 옷을 갈아입고 상추 쑥갓 열무를 솎아서 아내에게 갖다 줬더니 이내 점심 밥상에 겉절이로 만들어 밥상에 올렸다. 겉절이 나물을 양푼에 가득 넣고 비벼먹자 맛이 아주 고소했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보다 맛이 있네요."
아내는 몇 번이나 말했다.
"우리의 땀방울이 스민 거라서 그럴거요."
화학비료도 농약도 치지 않은 무공해 남새들이다.
뒷산 뻐꾸기가 인사를 한다.
“먼 길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잘들 있었니?”
그런데 울안의 노란 꽃창포가 아쉽게도 그새 절정의 순간이 지나서 이미 지고 있었다. 그 곁의 붓꽃만은 다행히 활짝 핀 채 주인을 반겨 맞았다.
저에게 작물이 자라는 기쁨을 주신 토지의 신이여, 곡식의 신이여! 감사합니다. 이런 기쁨이 이 산골에 있음을 미처 몰랐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