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앙수사부 영욕의 세월 24년

수사기능 존폐 논란 거세...어떤 결론 나올까

등록 2004.06.15 19:44수정 2004.06.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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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과 10층에 중수부 사무실이 있는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7층과 10층에 중수부 사무실이 있는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권우성
대검 중수부 수사기능 존폐 논란이 거세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14일 "중수부 수사 지탄받으면 내 목 먼저 치겠다"면서 법무부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15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검찰총장 임기제 수사권 독립 위한 것이지 강한 발언권 행사하라고 준 것 아니"라고 송 총장을 강하게 질책했다. 강금실 법무부장관도 이와 관련 16일 오전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사실 지난 99년에도 중수부의 수사기능 폐지 움직임이 진행됐다. 99년 3월 25일 당시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과천 청사에서 열린 국정보고회의에서 '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고 대검 중앙수사부의 업무는 각 지검 특수부로 이관하도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검찰총장 직속으로 '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들어 정치인, 고위공직자, 대형경제사건, 검찰내부 비리 수사를 전담토록 하고 이를 위해 관련법을 개정해 그해 8월 공식출범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보고는 보고로만 끝났다. '공직자비리수사처'가 중수부의 '간판 바꿔달기'에 불과하다는 검찰과 사정 흐름이 강화될 것을 우려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중수부라는 엄청난 칼을 스스로 놓고 싶지 않았던 정권의 뜻이 합쳐져 결국 유야무야된 것이다.

5년 전에도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 대통령 업무보고 있어

5년이 지난 현재 유사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공약사항으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공비처) 신설을 내세웠다. 검찰총장 직속이 아닌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설치하겠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나, 대검 중수부의 수사기능을 없애겠다는 대목에서는 일치한다.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붕괴의 위기까지 갔던 한나라당도 공비처 신설에는 논란이 있으나 대검 중수부 수사기능 이관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검사들은 "건수로는 1∼2%도 안 되는 사건들이 검찰 전체를 욕먹게 했다"는 얘기를 곧잘 한다. 이 '1∼2%도 안 되는 사건'의 대부분을 맡아온 기관이 대검 중앙수사부다. 대검 중수부는 대검 조직 중 직접 수사기능을 가진 유일한 부서다. 형사부, 공안부 등 일선 청의 해당부서를 지휘, 감독하는 데 비해 '검찰청 사무기구 규정' 6조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사건의 수사'규정에 따라 총장의 직할부대로 활동해왔다.

권력의 입장에서는 중수부라는 칼은 매우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총장과 중수부장만 장악하면 검찰권의 자의적 행사가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권한분산 시도는 이에 대한 반발이 그 기조가 됐다.


현재 중수부의 효시는 61년의 대검 중앙수사국. 중앙수사국은 62년에 수사국으로 이름을 바꾼 뒤 73년에 특별수사부로 개편됐고, 81년 4월 중앙수사부가 됐다. 24년째인 현재 중수부는 1·2·3과와 수사기획관실·특별수사지원과·컴퓨터수사과 등이 있다. 범죄정보과는 중수부 직속이었으나 대검차장 산하로 바뀌었다.

국가적 사건 처리 도맡아…권력에 휘둘린 때도 많아

현재 박상길 부장이 24대째인 역대 중수부장의 면면과 수사내용은 화려함을 넘어선다.

지난 3월 8일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권우성
1대-이종남(법무장관), 2대-김두희(검찰총장, 법무장관), 3대-한영석(법제처장), 4대-김경희(부산고검장), 5대-강원일(국민고충처리위원장, 파업유도 사건 특별검사), 6대-박종철(검찰총장), 7대-최명부(대구고검장), 8대-신건(국정원장), 9대-송종의(법제처장), 10대-정성진(국민대 총장), 11대-김태정(검찰총장, 법무장관), 12대-이원성(대검차장), 13대-안강민(서울지검장), 14대-최병국(인천지검장, 현 국회의원), 15대-심재륜(부산고검장), 16대-박순용(검찰총장), 17대-이명재(검찰총장), 18대-이종찬(서울고검장), 19대-신광옥(민정수석), 20대-김대웅(광주고검장), 21대-유창종(서울지검장), 22대-김종빈(대검차장, 현 서울고검장), 23대-안대희(현 부산고검장).

이들은 대부분 승승장구했다.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에 영전한 뒤 고검장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역대중수부장 중 5명이 검찰총장에 올랐고 2명이 법무장관이 됐다.

정치적으로 중대한 판단이 필요하거나, 나라를 뒤흔들만한 중대사들을 처리해왔다. 그야말로 신문 1면에 나올 만한 사건들은 이들의 몫이었다. 1대 이종남 부장 시절에는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사건, 2대 김두희 부장 시절에는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 사건과 영동개발사건을 처리했고, 3대 한영석 부장 시절인 85년에는 금강 상수도 등 정부공사 발주 비리사건을 수사했다.

6대 박종철 부장 때는 5공비리 수사를 맡아 장세동, 이학봉, 차규헌씨 등 관련자 47명을 구속했고, 7대 최명부 부장 시절엔 수서 비리사건을 맡아 이태섭 의원 등 국회의원 5명과 장병조 전 청와대비서관 등을 구속했다.11대 김태정 부장은 동화은행장 비자금사건, 율곡비리, 군 인사비리 사건을 처리했고, 12대 이원성 부장은 이형구 전 노동장관을 수뢰혐의로 구속시켰다.

13대 안강민 부장은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전직 대통령을 헌정사상 처음으로 구속하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등 재벌총수 7명을 법정에 세워 중수부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4대 최병국 부장은 한보 1차수사를 지휘하면서 정태수 한보총회장을 구속했고, 15대 심재륜 부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구속에 성공해 '국민의 중수부장'이라는 칭호를 얻기로 했다. 김종빈 부장은 '이용호 게이트' 재수사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 차남 홍업씨를 구속했고, 안대희 부장은 지난 1년간 검찰사상 처음으로 대선자금에 대한 전면수사를 벌여 '안짱'이라는 별칭과 함께 국민적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수사기능 폐지, 대통령령만 바꾸면 가능

그러나 권력에 무력한 때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이다. 당시 중수부의 함승희 검사(16대 의원)는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수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정태수 한보그룹회장의 뇌물고리를 확인했으나, 검찰수뇌부 압력으로 중단했다. 2년 뒤에야 검찰은 여론의 압력으로 수사를 재개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국가적인 사안에는 여전히 대검 중수부가 필요하다"는 송광수 검찰총장의 노력이 순탄하지는 않아 보인다. 검찰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아졌고, 대통령령인 '검찰청사무기구에 관한 규정'만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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